창세기 50:15-26 애굽의 관을 뚫고 피어나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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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힘의 논리에 따라 앙갚음을 두려워하는 제국의 비정한 아비투스를 벗어던지고, 세상의 낡은 질서에 물든 우리 세계관을 해체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는 거룩한 영적 혁명을 통해, 우리의 악한 의도조차 선으로 뒤바꾸어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총 속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내어 맡기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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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청신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며 대지 위에 선명하고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계절입니다. 빛이 강렬해질수록 그늘 또한 짙어지듯, 우리네 인생도 성취와 평안의 이면에 지우기 힘든 두려움과 불안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의 그늘 아래서 마음을 졸이고 계신 분들, 그리고 모순 가득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신앙의 길에서 짙은 회의를 느끼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두려움조차 넉넉히 덮어 안으시는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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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요셉의 형들은 깊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그들은 급기야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며 스스로를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그들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애굽, 곧 제국의 억압적인 아비투스입니다. 형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요셉에게 가했던 잔혹한 폭력의 기억에 갇혀 있었습니다. 권력을 쥔 자는 반드시 약자를 짓밟고 복수한다는 제국의 수직적 지배 논리 외에는 다른 관계 맺기의 방식을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용서와 은혜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동등한 형제로서의 샬롬을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국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한 참담한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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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형들의 엎드림 앞에서 요셉은 통곡합니다. 형들이 여전히 은혜를 모른 채 공포의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이 너무도 가슴 아팠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두려워 떠는 형들을 향해 위대한 신앙의 선언을 터뜨립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심판자라는 수직적 권력의 보좌에 앉기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관통해 온 고난을 인간의 악의로 해석하지 않고, 뭇 생명을 살려내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서사 속으로 온전히 통합해 냅니다. 폭력과 악의마저도 기어코 선으로 뒤바꾸어 내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은총을 신뢰했기에, 그는 가해자인 형들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다정한 생명의 부양자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신앙이란 "내 삶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라고 하는 얘기"를 깨닫는 과정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악을 앙갚음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형제들을 살리는 넉넉한 선물로 기꺼이 내어주며 산산조각 났던 평화를 온전히 회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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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보복과 두려움이라는 세상의 낡은 관성을 끊어내고, 십자가의 용서와 자비로 우리 영혼을 새롭게 빚어내는 거룩한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우리가 몸담은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알게 모르게 세속적인 아비투스가 우리 몸에 학습됩니다. 힘이 없으면 짓밟힌다는 두려움, 선제공격하지 않으면 당한다는 적의가 우리 영혼을 잠식합니다. 그러나 참된 묵상이란 단지 성경 지식을 쌓는 죽은 공부가 아닙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세계관과 가치관을 혁신하고 우리 존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시는 평생 여정입니다. 세상의 폭력적인 룰에 젖어 두려워하던 우리가 말씀의 빛 아래 고요히 머물 때, 우리를 옥죄던 제국의 아비투스는 무너져 내리고 비로소 내게 상처 준 이웃마저 품어 안는 그리스도의 너른 마음으로 우리의 내면이 새롭게 번역되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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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마지막 장면, 요셉은 애굽에서 입관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겉보기에는 제국의 무덤에 갇힌 초라한 죽음 같지만,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애굽의 영광에 취하지 않고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돌보시고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며 거룩한 미래를 선포했습니다. 애굽의 관조차 하나님의 약속을 가둘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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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기나긴 겨울을 견뎌내는 나뭇가지 끝의 겨울눈과 같습니다.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겨울눈은 살아남기 위해 여러 겹의 단단하고 끈적이는 비늘로 자신의 여린 속살을 꽁꽁 동여맵니다. 세상의 논리는 그 단단한 껍질을 깨기 위해 더 강한 억압과 힘을 가하라고 부추기지만, 물리적인 힘은 도리어 생명을 짓이기고 파괴할 뿐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정원사이신 하나님은 폭력으로 우리를 열어젖히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다사로운 은총의 봄볕을 우리 영혼에 소리 없이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가 두려움의 껍질을 스스로 깨려 발버둥 치는 대신 주님의 따스한 빛 앞에 우리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우리를 옥죄던 그 굳은 비늘들은 거짓말처럼 스르르 벗겨지고 마침내 꽁꽁 숨어있던 연초록의 잎사귀들이 피어나 온 세상을 보듬는 가장 아름답고 넉넉한 생명의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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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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