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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29-50:14 막벨라의 순례자, 워터마크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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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죽음마저 기술과 자본으로 통제하려는 제국의 오만한 지배 질서에 동화되기를 단호히 거부하고, 조급한 정답을 좇지 않고 묵묵히 시간을 들여 하나님의 이야기에 내 운명을 거는 치열한 영적 체류를 통해, 한낱 티끌로 돌아갈 우리의 연약한 육신조차 거룩한 언약의 품으로 끌어안으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은혜에 온전히 잇대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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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하루가 다르게 그 푸르름의 농도를 더해가며 맹렬하게 생명의 절정을 노래하는 눈부신 초여름입니다. 만물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피어나는 이 화사한 계절의 한복판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언젠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인간 존재의 서늘한 소멸과 유한함을 조용히 응시하게 됩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일상의 고단한 무게를 견디며 진리의 길을 찾고 계신 분들, 그리고 내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삶의 모순 속에서 회의하며 서성이는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죽음조차 영원한 생명으로 덮어 안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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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했던 147년의 생애를 마감하며 야곱은 아들들에게 엄숙히 유언합니다. "나를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게 하라.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장사하라"(창 49:29). 총리인 요셉은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을 맞추고, 애굽의 의원들을 시켜 향 재료로 아버지의 몸을 미라로 만듭니다. 미라를 만드는 데 사십 일, 애굽 사람들이 애곡하는 데 칠십 일이 걸렸습니다.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제국은 죽음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막대한 부와 기술을 동원해 육신을 영구히 보존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이 사후 세계에까지 이어지기를 탐망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권력 덕분에 얼마든지 애굽의 가장 화려한 왕실 묘역에 안치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오만한 영생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는 제국의 중심이 아니라, 척박한 가나안 땅 막벨라 굴, 곧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부여잡고 살았던 조상들의 자리에 자신을 눕혀 달라고 명합니다. 죽음을 부정하려는 제국의 기술에 영혼을 팔지 않고, 스스로 유한한 티끌임을 기꺼이 인정하며 하나님의 섭리 안으로 몸을 던지는 위대한 신앙적 저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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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시신을 메고 가나안으로 향하는 장례 행렬을 보십시오. 바로의 신하들과 애굽의 원로들, 병거와 기병이 호위하는 어마어마한 행렬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다드 타작 마당에 이르러 이레 동안 크게 통곡하자, 가나안 백성들조차 그곳을 '아벨미스라임', 곧 '애굽 사람들의 애통'이라 불렀습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억압적인 체제는 사람들에게서 애통해하는 능력을 빼앗아버린다고 통찰했습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제국은 약자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정치적 체면을 내려놓고 방성대곡했고, 그 눈물은 애굽의 권력자들과 가나안의 원주민들까지 한마음으로 슬퍼하게 만드는 수평적 일치를 이끌어 냈습니다. 경쟁과 착취로 메말라 있던 사람들의 가슴에 다른 이의 죽음을 슬퍼할 줄 아는 연민의 샘이 터진 것입니다. 누군가의 상실 앞에서 함께 흘려주는 눈물이야말로, 무너진 세상을 꿰매는 가장 거룩한 샬롬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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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제국의 거짓된 영원함에 속지 않고 이웃과 연대하는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거룩한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묵상이란 내 입맛에 맞는 정답을 조급하게 얻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답에 재빨리 도달하는 일이 아닌 시간을 묵묵히 들이는 일이며, 때로는 어떤 기술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으며 위로만 받으려 하지만, 참된 묵상은 나에게 불리하게 성경을 읽는 고통을 감내하며 하나님의 생각으로 내 생각을 교정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미라로 보존되는 애굽의 이야기가 아니라 썩어 흙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이야기에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내어 맡겼듯, 묵상은 매일의 일상에서 제국의 서사를 거절하고 십자가의 좁은 길에 내 삶의 닻을 내리는 치열하고도 눈부신 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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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유한한 신앙 여정은 한 장의 종이 깊숙한 곳에 감춰진 투명한 워터마크와 같습니다. 화려한 제국은 종이의 겉면에 값비싼 금박을 입히고 성공의 바코드를 화려하게 인쇄하여 그것이 인생의 가치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그 요란한 겉그림에 시선을 빼앗기면, 우리는 내 종이가 남들보다 낡고 구겨졌다며 짙은 열등감과 허무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참된 가치를 보증하는 장인의 표식은 겉면에 그려진 잉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화려한 조명과 소음을 잠시 등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맹렬하고도 순결한 빛을 향해 우리 영혼의 종이를 가만히 비추어 올릴 때,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종이 속 깊은 곳에서 세상의 어떤 권력으로도 지워내거나 조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 영원한 언약의 백성'이라는 가장 뚜렷하고 고귀한 은혜의 무늬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우리의 찢긴 존재를 넉넉히 덮어 안아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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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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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XBCDEiM-P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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