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5:01-17 선지자의 독려와 하나님의 눈 아래 재개된 성전 건축, 그리고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 언약의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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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공사가 중단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리오 왕 이년에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성전 건축을 독려했습니다. 이에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가 힘을 얻어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재개 소식을 들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그 동료들이 즉시 현장에 와서 건축 명령의 출처와 지도자들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장로들을 지키셨기에, 관리들은 왕에게 보고하여 답을 받을 때까지 공사를 강제로 멈추지 못했습니다. 유다 장로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하나님의 종이며, 과거 조상의 죄로 성전이 멸망했지만,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고, 세스바살이 기초를 놓았음을 상세히 보고하며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닷드내는 이 보고 내용을 다리오 왕에게 서신으로 보내 바벨론 국고에서 고레스의 칙령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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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말씀의 불씨: 좌절을 깨고 재개된 거룩한 사명
하나님은 인간의 무기력과 좌절 속에 멈춰 선 당신의 일을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독려하시어, 포기된 소명을 반드시 재개하도록 이끌고 성취하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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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공사가 다리오 왕 이년까지 중단된 상황에서,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예언하며 성전 건축을 독려했습니다. 이 말씀에 힘입어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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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및 영적 의의: 말씀의 카이로스(적기) 성전 공사는 이전에 왕의 조서로 인해 중단되었고, 이는 백성들의 사기를 꺾고 성전 재건에 대한 희망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 이년이라는 구체적인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말씀의 불씨를 보내셨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유일한 동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해진 예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은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며, 말씀은 좌절과 낙심의 시간을 깨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 : 총독 스룹바벨(정치 지도자)과 대제사장 예수아(종교 지도자)의 동역은 이 공동체가 신앙의 일치성을 강조하며, 무너진 예배와 국가의 회복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시작을 염두에 두었음을 보여줍니다. 지도자들이 성전 재건이라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말씀에 반응하고 먼저 행동할 때, 멈춰 섰던 공동체의 사명이 다시 활력을 얻게 됩니다.
느헤미야 역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비전을 품고 기도를 시작했으며, 외부의 방해에 직면했을 때도 힘을 얻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리더십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간절히 의지하고, 말씀에 반응하여 행동함으로써 역사를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권력이나 방해로도 완전히 꺾이지 않으며, 인내의 시간은 더 큰 역사를 위한 연단과 준비의 기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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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나 공동체의 사역에서 오랜 기간 중단된 일이 있다면, 우리는 환경이나 상황을 탓하며 순종을 미루는 불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종종 불신앙에 대한 변명일 뿐입니다. 좌절과 무기력의 상황에서 '언젠가'의 각오가 아니라, '오늘' 당장 성령에 사로잡혀 말씀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고, 그것이 우리의 사역을 다시 시작하고 지속하게 하는 유일한 동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영적 무기력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구체적인 순종의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도 중단된 영적 습관(예배, 기도)을 선지자의 말씀처럼 단호히 재개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매몰되지 않고, 말씀의 능력을 붙들고 지도자들의 솔선수범과 함께 거룩한 사명을 묵묵히 이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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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절 하나님의 감시: 위기 속에서 보호하시는 주님의 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선한 일을 할 때 세상 권력의 감시와 위협에 직면하게 하시지만, 당신의 전능한 눈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시고 대적들의 발을 묶어두시어, 당신의 사역이 강제로 중단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신실한 파수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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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이 재개되자, 유프라테스 강 서편의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이 즉시 현장에 나아와 유다 백성들에게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은 성전 건축을 책임진 지도자들의 이름까지 왕에게 보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의 눈이 유다 장로들을 감찰하므로" (또는 '그들의 하나님의 눈이 장로들 위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공사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결국 보고서가 왕에게 올라가고 답이 올 때까지 공사는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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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눈 : 성전 공사는 이전의 금지 조서(4장)로 인해 법적으로 정지된 상태였으므로, 닷드내 총독의 조사는 당연한 행정 절차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정치적 상황을 영적 해석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대적들의 눈이 성전 재건을 감시하고 방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눈이 더욱 강력하게 유다 장로들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눈'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능동적인 보호와 통제를 의미합니다. 심지어 총독이라는 세속 권력마저도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호 아래에서는 공사를 강제로 중단시킬 수 없었습니다.
리더십과 공의 : 유다의 장로들(족장들)은 느헤미야 시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도자들로 상황을 피하지 않고 직면했습니다. 대적들은 유다인들의 성전 건축을 '반역'으로 몰아 왕의 국고 손실을 주장했지만, 하나님의 눈 아래 있는 백성들은 공의로운 절차(왕에게 보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주님은 넘어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붙들어 주시며, 짓눌린 사람은 누구든지 일으켜 세우신다"고 찬양합니다. 또한 시편 147편은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의 능력이나 연약함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과 인자하심(헤세드)을 신뢰하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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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방해나 경쟁 속에서 좌절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으며 세상 권력의 위협은 결코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설 수 없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나의 정직한 행동이 부당한 감시나 공식적인 조사에 직면할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하나님의 눈앞에 있음을 기억하고 진실함으로 응답하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됨을 기억하고, 결과에 쫓기지 않고 과정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느헤미야처럼 외부의 위협에 직면할 때, 겸손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단순하고 실제적인 계획으로 난관을 돌파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우리 위에 있다는 확신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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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7절 언약의 입증: 역사와 공의로 굳건해진 믿음의 변증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과거의 불순종을 회개하고 언약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역사 기록의 증거와 세속 왕의 권위를 통해 당신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성취하도록 이끄시는 공의로운 언약의 성취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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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드내 총독은 다리오 왕에게 보낸 서신에 유다 장로들의 답변을 상세히 보고했습니다. 장로들은 자신들이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며, 성전은 과거 이스라엘의 큰 왕이 지었으나, 조상들이 하나님을 격노케 하여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했다고 인정했습니다(11-12절). 그러나 이어서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하나님이 조서를 내려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고,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갔던 금은 기명까지 총독 세스바살에게 돌려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13-16절). 장로들은 세스바살이 기초를 놓았으며, 그 때부터 지금까지 건축하고 있으나 아직 마치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16절). 닷드내는 이 칙령의 진위 여부를 바벨론 왕의 국고에서 조사하여 왕의 뜻을 알려줄 것을 요청하며 서신을 마무리했습니다(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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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성의 확보 : 유다 장로들의 답변은 역사적인 진실과 신앙적 정당성을 모두 확보하는 뛰어난 변증이었습니다. 첫째, 신학적 겸손 - 그들은 멸망의 원인이 하나님의 진노와 조상의 죄 때문이었음을 숨기지 않고 인정했습니다. 이는 회복된 공동체가 징계의 교훈을 잊지 않고, 회개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법적 권위 - 그들은 현재의 건축이 사적인 행동이 아니라 고레스 왕의 공식 칙령에 근거한 합법적인 계승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고레스의 칙령을 부연하고 세스바살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건축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그들이 '유다 장로들'이라는 용어 대신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세속적인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셋째, 공의로운 요구 - 닷드내가 왕에게 국고에 조사를 요청한 행위는 이 문제가 인간의 감정이나 시기심(4:4-5)이 아닌 국가의 공적 기록을 통해 해결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속 왕의 시스템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확인하고 성취하십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 3:15, 유사 내용 제시)는 가르침을 받습니다. 유다 장로들처럼, 우리의 신앙과 행동도 객관적인 진리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세상의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역시 안식일 논쟁에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임을 드러내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참된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야 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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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백성된 우리는 진실이 왜곡되고 부당한 모함에 직면할 때, 감정적인 분노로 반응하기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변증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추상적인 감정으로 포장하기보다, 말씀과 역사에 근거한 객관적인 진리로 무장하여 세상의 공의로운 시스템에 호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신앙적 행동의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성경적 지식과 논리적 사고를 갖추어야 합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비판을 받을 때, 나의 이익을 변호하기 전에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다'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윤리적 기준을 통해 우리의 행동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조롱과 비난 앞에서 과거의 잘못(조상의 죄)을 회개하며 겸손히 공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말씀의 능력을 회복하고 성전 재건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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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
저희의 삶이 세상의 지속적인 방해와 훼방으로 인해
좌절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무기력함에 빠져 성전 건축을 멈추고
자기 집 일에만 몰두했던 유다 백성들처럼,
저희도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잠시 뒤로했던
저희의 영적 나태함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
선지자의 말씀이 다리오 왕 이년에 좌절을 깨뜨렸듯이,
저희에게도 말씀의 불씨를 보내시어 멈춰 선 사명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닷드내 총독의 감시와 위협이 저희를 억누를지라도,
당신의 전능한 눈이 저희를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저희의 믿음을 감정적인 확신으로 포장하지 않고,
역사적 진리와 공의의 말씀에 굳건히 세우게 하소서.
세상의 비난 앞에서 '천지의 하나님의 종'으로서
겸손하고 지혜롭게 응답하는 담대한 용기를 주십시오.
저희의 과거의 허물을 인정하고 현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히 지속됨을 증거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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