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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5:20-27 므깃도의 바람 소리

신앙이란 나의 확신 안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낯선 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겸허한 여정이다.

*

삶은 때로 견고한 성채를 닮아갑니다. 우리는 경험과 신념, 그리고 ‘옳음’에 대한 확신으로 벽을 쌓아 올립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느끼고, 우리가 정한 질서에 따라 세상을 재단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Gadamer)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입견’(Vorurteil)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그 선입견이 세상을 향한 창이 아니라 세상을 가로막는 벽이 될 때 비극은 시작됩니다.

역대하 35장은 우리에게 그런 비극적 영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시야. 그는 유다의 가장 선한 왕 중 하나였습니다. 율법책을 발견하고, 성전을 정화하며, 온 마음을 다해 유월절을 지켰던 사람.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충실하려 애썼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 안에서 가장 옳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굽의 왕 느고가 므깃도 평원으로 군대를 이끌고 옵니다.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가던 이방의 왕입니다. 요시야는 신앙의 순수성, 혹은 민족적 자존심으로 그를 막아섭니다. 바로 그때, 가장 뜻밖의 순간에, 가장 뜻밖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그대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셨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마시오.” (대하 35:21, 쉬운성경)

생각해 봅니다. 요시야의 귀에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평생을 이방 신상과 싸워 온 그에게, 이교도 왕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그저 모독이거나, 전쟁을 피하려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평생 쌓아 올린 신앙의 성채가 너무나 견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변장하고(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신념을 향해 돌진했지만, 그 길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므깃도는 어디입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 안의 하나님’만을 고집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익숙한 찬송과 설교 안에서만 주님의 음성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순종적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때로 우리의 신념 체계 저 너머에서, 우리가 ‘이방인’이라 낙인찍은 이들의 입을 통해, 심지어 신앙에 회의를 품은 이들의 정직한 질문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요시야의 죽음은 단순한 ‘불순종의 대가’라는 도덕적 교훈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이 이야기는 공포의 기록일 뿐, 은혜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예레미야가 그를 위해 애가를 지었고, 모든 백성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기록합니다(24-25절). 이 깊은 애도와 탄식이야말로, 연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고함과 비극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정죄하기보다, 먼저 우리를 위해 슬퍼하시는 분입니다.

신앙은 ‘내가 옳다’는 확신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허함으로 낯선 음성을 향해 귀를 여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견고한 성문을 열고, 저 므깃도의 바람 소리, 어쩌면 나를 반대하는 저 ‘느고’의 목소리에도 실려오는 하나님의 숨결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 겸손한 ‘들음’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마저 끌어안고 우시는 그 크신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역대하 35:20-27 불순종을 끌어안는 은총 :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

*

주님의 평안이 광양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요즘처럼 속절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딛고 선 자리가 어디인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지, 문득 망연해질 때가 많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묻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분주한 ‘점-시간’ 속에서, 우리는 삶의 충만함을 잃고 헛헛한 느낌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완벽한 실패 속에서도 역사를 멈추지 않고 다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우리 삶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우리가 묵상하려는 구약성경 역대하 35장 20절에서 27절의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 아픈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율법을 잘 지키고 종교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왕,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던 왕이었으나, 므깃도에서 애굽 왕 느고와의 전투를 피하라는 경고(느고는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명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를 무시하고 전쟁에 나섰다가 화살을 맞고 죽습니다.

이 대목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선한 의지와 경건한 열심이 때로는 파국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왜일까요?. 요시야는 유다를 지키려는 애국심과 정의감으로 무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느고의 말을 허투루 여기고 자신의 판단에 의지했습니다. 선한 일에 대한 확신이 오히려 주변의 목소리를 닫게 만드는 독선으로 변질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기며 자기 확신과 자아라는 울타리에 갇혀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옳음'이나 '앎'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타자와 소통할 여지는 줄어들고, 이윽고 그것이 폭력으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요시야의 행위는 비록 종교적 게으름 때문은 아니었을지언정,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는 인간적인 욕망과 지혜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오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결말 속에서 우리는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연민과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의 죽음은 국가적인 재앙이었고, 예레미야 선지자까지도 그를 위해 애가(哀歌)를 지어 부를 정도로 큰 슬픔이었습니다. 성경은 왕의 잘못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지만, 그의 죽음과 매장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며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우리의 삶 역시 종종 실패와 잘못으로 점철됩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마음의 칠정(喜怒哀樂愛惡欲) 속에서 방황합니다. 마치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처절히 깨닫는 욥의 탄식처럼, 우리는 연약하고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의 이 연약함모호함하나님의 은총이 당도하는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히브리어로 '헤세드'라 불리는 그 인애(仁愛)는 우리의 완벽한 수행이나 성실함에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의 어리석음과 불순종을 보면서도 당신의 뜻을 저버린 백성들을 안타까워하시고, 마치 찢어진 곳을 잇고, 황폐한 땅에 비를 내리듯, 우리 삶에 개입하십니다.

요시야의 비극은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비극의 후렴구로 울려 퍼지는 깊은 슬픔과 애가는, 그 실패조차 끌어안고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암시합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에 회의를 느끼시거나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해야만 한다'는 명령은 우리를 짓누르기 쉽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를 내신 하나님의 소명이 곧 행복 혹은 기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때로는 흙탕물처럼 느껴지고, 가시밭 같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거두어 영원한 참으로 엮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행위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자기를 비우고, 고통받는 이웃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그들과 연민과 연대하는 삶을 통해 사랑의 레가토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비틀거릴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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