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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6:01-22 잠잠함이 대답이 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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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 십사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합니다(1절). 남은 것이 예루살렘 하나뿐인 자리에서 산헤립은 라기스에서 랍사게를 보내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세웁니다(2-3절). 랍사게는 두 번 연설합니다. 먼저 협상단을 향해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며 애굽도 여호와도 의지가 되지 못한다고 조롱하고(4-10절), 이어 유다 방언으로 성 위의 백성에게 직접 외쳐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선동하다가 마침내 여호와를 열국의 신들 가운데 하나로 끌어내립니다(11-20절). 그러나 백성은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고, 세 관리는 옷을 찢고 왕에게 나아갑니다(21-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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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36장은 이사야서 전체의 지형이 한 번 크게 바뀌는 자리입니다. 34-35장에서 우리는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나는 광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36장 첫 절에서 그 환상은 갑자기 접히고, 우리는 주전 701년 유다 땅의 흙먼지 위로 내려섭니다. 데이비드 젝맨은 이 대목의 문체와 분위기 변화를 두고 "실로 놀랍다"고 말합니다.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던 시가 멈추고, 성문 앞에 진을 친 거대한 군대의 산문이 시작됩니다. 이사야서는 여기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 환상을 믿는다는 것이, 오늘 이 흙먼지 속에서는 무엇을 뜻하는가.

# 김필회 교수에 따르면, 산헤립(주전 705-681년)은 아버지 사르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초기의 혼란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왕위 계승의 틈을 타 므로닥발라단이 엘람의 지원을 받아 바벨론을 점령했고, 그 틈에 유다 왕 히스기야도 주변 나라들을 규합해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산헤립은 바벨론과 동쪽 산악 지대를 평정한 후 시리아-팔레스티나로 원정을 떠나 엘드게에서 애굽과 에디오피아 연합군을 무찌르고, 애굽으로 가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유다로 방향을 돌립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중요한 성읍이 모두 점령당했습니다. 산헤립 자신의 기록은 이때 히스기야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만들었다고 자랑합니다. 1절의 짧은 한 줄 뒤에는 그런 폐허가 깔려 있습니다.

# 랍사게라는 이름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직분의 이름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를 '헌작 시종대관(獻酌侍從大官)', 곧 궁궐에서 술을 관장하는 직분으로 설명합니다. 고위직은 아니지만 왕을 지척에서 보필하기에 때로 특수 임무를 위임받아 파견되었고, 훗날 페르시아 왕궁의 술 맡은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파견된 것도 같은 자리입니다. 이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의미심장합니다.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2절)은 일찍이 이사야가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아하스 왕을 만나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전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7:3-4). 같은 자리에서 아버지 아하스는 앗수르를 붙잡았고, 이제 아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붙잡습니다. 이사야서는 한 세대 사이에 갈린 두 개의 신앙을 같은 흙 위에 나란히 세워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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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무너진 성읍들 한가운데 남은 성

하나님은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 마지막 한 자리를 남겨 두시고, 바로 거기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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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1절). 성경은 이 참담한 사실을 한 문장으로 지나갑니다. 이어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섭니다(2절). 히스기야는 세 사람을 내보냅니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 서기관 셉나, 사관 요아입니다(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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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견고한 성'이 무너졌다면 남은 것은 예루살렘 한 곳뿐입니다. 히스기야가 의지하던 성벽과 동맹과 병거가 차례로 사라지고, 이제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필회 교수에 따르면 랍사게가 거느리고 온 '대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한 전투 병력이라기보다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파견부대나 호위병에 가깝습니다. 곧 앗수르는 칼을 쓰기 전에 먼저 말을 씁니다. 흥미롭게도 히스기야가 내보낸 세 사람 중 엘리아김과 셉나는 이사야 22장에 이미 등장한 인물입니다. 셉나는 자기를 위해 높은 곳에 무덤을 파던 자로 몰락이 선고되었고(22:15-19), 엘리아김은 하나님께서 "내 종"이라 부르시며 그 자리에 세우신 사람입니다(22:20). 심판받은 사람과 세움받은 사람이 같은 성벽 위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언제나 그렇게 뒤섞인 무리입니다. 그런데 신약은 그 남은 한 자리를 '남은 자'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마침내 그 남은 자리에 홀로 서신 한 분, 모든 것을 잃고 성 밖에서 조롱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히 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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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무너진 것의 개수로 신앙을 계산합니다. 견고한 성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하나님이 그만큼 멀어지셨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본문은 정반대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 무너지고 한 자리가 남았을 때 비로소 그 한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물어집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무엇이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는 마지막 한 자리, 곧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 자신을 붙잡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서 무너진 성읍의 목록을 세는 대신, 아직 남아 있는 그 한 자리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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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0절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에 기대어 서 있는지를 원수의 입을 통해서라도 물으시고, 그 물음으로 우리를 참된 신뢰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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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사게의 첫 번째 연설은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4절). 그는 히스기야의 계략과 용맹이 "입술에 붙은 말뿐"이라 조롱하고(5절),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여서 의지하면 손이 찔릴 뿐이라고 말합니다(6절). 이어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대답을 미리 가로막으며, 산당과 제단을 헐어 버린 히스기야를 그 신이 어찌 도우시겠느냐고 비꼽니다(7절). 말 이천 필을 주어도 탈 자를 내지 못하리라는 내기를 걸고(8-9절), 마지막으로 자신의 침공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주장합니다(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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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설의 무서움은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김필회 교수는 애굽에 관한 랍사게의 주장이 이사야의 선포와 사실상 일치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사야도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불렀고(30:7), 군마와 병거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화를 선언했습니다(31:1). 여호와의 뜻을 따라 올라왔다는 10절의 주장조차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로 삼으신다는 이사야의 메시지와 겉모습이 닮았습니다(10:5). 원수는 우리가 이미 들었던 말씀을 그대로 되돌려 주며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목적이 다릅니다. 이사야는 헛된 의지를 벗겨 참된 신뢰로 데려가려 했고, 랍사게는 모든 의지를 벗겨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려 했습니다. 젝맨이 지적하듯 그의 말은 역설로 가득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계속 던지셨던 바로 그 질문 -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 을 제 입으로 되풀이하면서도, 그 질문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끝내 알지 못합니다. 참된 신뢰는 의지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오직 여호와만을 붙드는 것입니다(사 12:2;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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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같은 질문이 여러 목소리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통장 잔고가 묻고, 진단서가 묻고, 자녀의 성적표가 묻습니다. 네가 믿는 그것이 무엇이냐. 그 질문이 원수의 입에서 나왔다고 해서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원수의 입을 빌려서라도 우리 신앙의 실제 기반을 드러내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가 헐어 버려야 할 산당은 없는지, 우리가 실은 상한 갈대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벗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벗겨진 자리에 남는 분이 우리의 진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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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0절 여호와를 열국의 신들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은 사람의 말이 아무리 그분을 끌어내리려 해도 결코 열국의 신들 가운데 하나가 되실 수 없는, 홀로 살아 계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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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단은 아람 방언으로 말해 달라고 청합니다.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1절). 랍사게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도리어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칩니다(12-13절). 그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하고(14-15절), 항복하면 각각 자기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시게 해 주겠다고 회유합니다(16-17절).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집니다.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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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회 교수는 이 대목에서 대결의 상대가 바뀌는 것을 주목합니다. 15절까지는 산헤립과 히스기야의 대결이었지만, 18-20절에 이르러 산헤립과 여호와의 대결로 바뀝니다. 랍사게의 모독을 통해 여호와께서 친히 전쟁의 당사자가 되신 것입니다. 16-17절의 회유는 더 교묘합니다.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는 문자적으로 '나와 함께 축복을 만들자'는 뜻이며, 산헤립을 축복의 수여자로 세우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올리셨듯, 산헤립은 자신이 풍요가 약속된 새 땅으로 이끌겠다고 말합니다. 곧 그는 여호와의 자리에 자기를 앉힙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실상 유배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세상의 회유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언어를 흉내 내지만, 끝에는 고향을 잃게 만듭니다. 그리고 18-20절에서 산헤립은 거듭 '내 손에서'를 강조하며 자기 신의 이름조차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내세웁니다. 사람이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오를 때,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이미 응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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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도 여호와를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진열하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종교란 다 비슷한 것 아니냐고, 그중에 효험 있는 것을 고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때 우리가 다투어야 할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그 다툼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세상의 언어가 하나님을 상품 진열대에 올려놓으려 할 때,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먼저 그분 앞에 무릎 꿇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삶으로 드러나는 증언이 논쟁보다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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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2절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을 때 친히 변호자가 되어 주시며, 침묵하는 자리에서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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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21절). 세 관리는 자기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 랍사게의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22절). 그리고 이어지는 37장에서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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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침묵은 무기력이 아니라 명령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김필회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랍사게를 통해 앗수르 왕이 여호와의 권위에 도전했기에, 응답은 반드시 여호와께로부터 나와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대답하는 순간 그 싸움은 사람의 싸움이 되어 버립니다.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이 싸움을 하나님께 넘겨 드렸습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애도의 표시이지만 동시에 자기 힘을 내려놓았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37장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고, 마침내 산헤립은 자기 땅으로 돌아가 죽습니다. 신약의 빛에서 보면 이 침묵은 더 깊어집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잠잠하시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니라"(막 14:61) 하셨고, 빌라도가 놀랄 만큼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마 27:14). 침묵하신 그분을 하나님께서 사흘 만에 일으켜 대답하셨습니다. 우리의 침묵이 무덤이 아니라 부활의 전날 밤이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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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즉시 대답하고 싶어집니다. 해명하고, 반박하고, 증거를 내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서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가장 깊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다만 그 침묵은 체념이 아니라 이송이어야 합니다. 내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사건을 옮겨 드리는 침묵이어야 합니다. 광양사랑의교회의 성도들이 오늘 어떤 조롱과 오해 앞에 서 있든, 먼저 옷을 찢고 주님의 전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답은 우리가 아니라 그분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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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주님,

모든 견고한 성이 무너진 자리에

마지막 한 자리를 남겨 두신 하나님,

잃은 것을 세느라 지친 저희 눈을 들어

아직 남아 있는 그 한 자리를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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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는 그것이 무엇이냐 물으실 때

저희 손에 쥔 상한 갈대 지팡이를

스스로 내려놓게 하시고,

벗겨진 자리에 남으시는 주님만이

저희의 참된 의지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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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주님을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진열하려 할 때에도

저희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먼저 무릎을 꿇게 하시고,

저희의 삶이 논쟁보다 강한 증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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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말 앞에서 잠잠할 수 있게 하시고,

그 침묵이 체념이 아니라

주님께 사건을 옮겨 드리는 이송이 되게 하소서.

옷을 찢고 주님의 전으로 올라가는

저희의 발걸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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