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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4:01-13 온 땅을 흔드시는 심판과 가지 끝에 남기신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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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을 향한 심판의 환상입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고 지면을 뒤집어엎으시니, 제사장과 백성, 상전과 종,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의 구별이 한꺼번에 무너집니다(1-3절). 땅이 이렇게 시들어 가는 까닭은 그 주민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4-6절). 저주가 땅을 삼키자 포도나무가 쇠잔하고 소고와 수금의 기쁨이 그치며, 거리에는 포도주를 찾는 부르짖음만 남습니다(7-12절). 그러나 본문은 완전한 소멸로 닫히지 않습니다. 감람나무를 흔든 뒤 가지 끝에 몇 알이 남고 포도를 거둔 뒤에도 주울 것이 남듯, 그 철저한 심판 가운데서도 남는 것이 있음을 말하며 끝맺습니다(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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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24장부터 27장까지를 흔히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부릅니다. 앞선 13장부터 23장까지가 바벨론과 모압과 다메섹과 애굽과 두로처럼 이름을 가진 민족들을 하나씩 불러 세워 심판을 선고했다면, 24장은 그 이름표를 모두 걷어냅니다. 여기에는 표제어가 없습니다. "…에 관한 경고"라는 익숙한 머리말이 사라지고, 대신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라는 한 문장이 곧바로 터져 나옵니다. 김필회 교수에 따르면 표제어가 등장하지 않는 24장 1절은 27장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단락의 시작이며, 이 단락의 시점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넘어 우주적이고 종말론적입니다. 예언자의 시선이 한 나라의 흥망에서 온 세계의 운명으로, 그리고 파국 너머 새롭게 시작되는 미래로 옮겨 간 것입니다.

# 그래서 24장에는 연대도, 왕의 이름도, 전쟁의 지명도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심판의 방식조차 설명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오직 심판하시는 분과 심판받는 땅만을 마주 세웁니다. 이것은 이사야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필연적인 도착점이기도 합니다. 앗수르를 도끼로 쓰시고 바벨론을 무너뜨리시며 두로의 교만한 영화를 욕되게 하신 그분이, 결국 온 우주의 왕이시라는 사실이 여기서 남김없이 드러납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종말론적 대사건들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주의 왕이심을 강조하여 보여준다고 정리합니다. 24장 전체는 크게 1-13절과 14-23절로 나뉘고, 오늘 우리가 읽는 앞부분은 다시 1-3절과 4-13절로 갈라집니다.

# 한 가지 더 눈여겨볼 것은 심판의 이유입니다. 5절은 땅의 주민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라고 고발합니다. 그런데 율법과 율례와 언약은 본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들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여기서 예언자가 이스라엘을 고발할 때 쓰던 시내산 언약 파기의 언어를 유비적으로 빌려 와 온 세상 주민들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방 백성에게 시내산에서 돌판이 주어진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과 악을, 정의와 불의를, 공정과 불법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의 자의식 안에 놓여 있습니다. 신학의 언어로 하면 일반은총입니다. 창조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기본 의지를 짓밟은 자리에서 땅은 저주에 넘겨집니다. 노아의 언약(창 9:16)과 시내산 언약이 겹쳐지면서, 심판은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온 인류의 문제가 됩니다.

# 문학적으로 오늘 본문은 소리의 지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1절에서 3절까지는 여호와의 동사들이 굉음처럼 쏟아지고, 4절에서 6절까지는 땅이 마르며 내는 신음이 들리며, 7절에서 9절까지는 소고와 수금과 노랫소리가 하나씩 꺼집니다. 10절에서 12절까지는 거리에서 포도주를 찾는 부르짖음만 남고, 마침내 13절에 이르면 모든 소리가 잦아든 밭에서 장대가 감람나무 가지를 때리는 소리 하나만 남습니다. 시끄러움에서 고요로, 잔치에서 폐허로 내려가는 이 하강의 구조가 본문의 정서를 만듭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고요의 바닥에서 예언자는 남은 몇 알을 봅니다. 24장의 뒷부분(14-23절)에서 터져 나올 찬양의 소리는 이 고요를 지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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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3 지면을 뒤집어엎으시는 손

하나님은 온 땅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기에 온 땅을 심판하실 권세를 홀로 가지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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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보라"라는 한 마디로 시작합니다. 무엇인가를 눈앞에 끌어다 놓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 개의 동사가 잇따라 쏟아집니다.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뒤집어엎으시고, 흩으시리니. 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 한 분이십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사 24:1). 이어 2절은 여섯 쌍의 대조를 나열합니다. 백성과 제사장, 종과 상전, 여종과 여주인, 사는 자와 파는 자,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 여섯 쌍이 모두 "같을 것이며"라는 한 마디로 묶입니다. 그리고 3절은 1절을 다시 받아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라고 못 박습니다. 시작도 여호와이시고, 마무리하는 서명도 여호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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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의 여섯 쌍을 자세히 보면 순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맨 앞에 놓인 것은 제사장과 백성입니다. 종교적 특권이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그다음 다섯 쌍은 모두 사회경제적 신분에 관한 것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정치적 권위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제사장을 제일 먼저, 그리고 압도적으로 사회경제적 영역에 속한 계급을 언급하고 있음이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어 놓은 선들, 곧 성전 안뜰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자와 바깥뜰에 서야 하는 자, 돈을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를 가르던 그 선들이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 한꺼번에 지워집니다. 여기서 "같을 것이며"는 평등의 회복이 아니라 특권의 무용지물화입니다. 재산이 있는 부자나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나 모두 똑같이 비참한 형편에 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3절 전반절은 히브리어로 읽으면 같은 자음이 겹쳐 울리는 소리를 냅니다. 히보크 티보크 웨히보즈 티보즈. 절대부정사를 덧붙여 파괴가 얼마나 완전하고 철저한지를 소리로까지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이 모든 굉음 위에 도장을 찍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이것은 재난 보도가 아니라 말씀의 성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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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기 앞에서 본능적으로 안전한 자리를 찾습니다. 조금 더 높은 자리, 조금 더 두꺼운 지갑, 조금 더 든든한 인맥이면 이 파도를 넘을 수 있으리라 계산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계산의 뿌리를 흔듭니다. 여호와께서 지면을 뒤집어엎으실 때 살아남는 층은 따로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는 연조, 맡고 있는 직분, 헌금의 액수, 봉사의 이력이 우리를 심판의 저울에서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본문은 제사장을 맨 앞에 세웁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이 순서를 잊지 않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강단에 선 목회자가 먼저 자신을 저울에 올리고, 직분자가 먼저 무릎을 꿇으며, 오래된 성도가 먼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교회 말입니다. 뒤집어엎으시는 손이 두려운 것은 그 손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붙들고 있던 것이 그만큼 허술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은근히 기대고 있던 안전장치 하나를 정직하게 이름 붙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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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4-6 땅이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하나님은 사람의 죄가 땅의 신음이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 책임을 반드시 물으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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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은 다시 땅으로 돌아옵니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사 24:4). '슬퍼하다'로 옮긴 히브리어는 '마르다'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문맥이 메마름을 말하고 있으니 땅이 말라 간다고 읽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4절 끝자락에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가 붙어 있는 것도 눈에 띕니다. 심판이 특히 높은 자들에게 집중된다는 뜻입니다. 5절은 그 이유를 밝힙니다.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사 24:5). 그리고 6절이 결과를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사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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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절의 표현은 놀랍습니다. 땅이 더럽혀진 것은 땅의 잘못이 아니라 "그 주민 아래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이 밟고 선 자리가 사람 때문에 병듭니다. 죄는 개인의 마음속에서만 곪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흙과 물과 공기에까지 배어듭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스라엘이 시내산 언약을 깨뜨린 결과로 가나안 땅이 저주를 받은 것처럼, 세상 사람들도 창조 안에 내재한 하나님의 기본 의지를 무시함으로써 땅을 저주에 넘겨준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다는 고발은 형식상 모순처럼 들립니다. 노아의 언약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일방적 언약이어서 사람이 깨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언약이 아무 책임도 요구하지 않는 백지수표가 아니라 법과 규정의 준수를 포함하는 언약임을 함축합니다. 아무에게도 돌판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무 책임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6절의 '정죄함을 당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아샴은 '죄를 짓다'만이 아니라 '죄의 대가로서의 벌을 짊어지다'를 뜻합니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죄지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파괴해 버리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6절은 저주가 땅을 '삼켰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죄가 사람을 먹어 치웁니다. 훗날 사도 바울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고 쓴 그 탄식의 뿌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탄식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온 땅의 저주를 자기 몸에 짊어지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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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구절만큼 우리 시대에 정직하게 읽히는 본문도 드뭅니다. 여름마다 길어지는 폭염과 잦아지는 물난리, 갯벌이 사라지고 어장이 북상하는 남해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땅이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다'는 문장을 더는 은유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초점은 환경 통계가 아니라 언약 파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새겨 넣으신 질서, 곧 약한 자를 짓밟지 말라는 질서, 이웃의 몫을 빼앗지 말라는 질서, 이자를 받는 자가 이자를 내는 자를 삼키지 말라는 질서를 우리가 얼마나 오래 못 본 척해 왔는가를 묻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가 사는 이 도시에도 굴뚝과 갯벌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배당 안에서만 경건하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소비와 편의의 논리에 그대로 흡수된다면, 우리도 땅을 더럽히는 주민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사는 자리를 조금 덜 병들게 하는 선택 하나를 실제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아 보여도 그것이 언약을 기억하는 몸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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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9 노래가 그치고 포도주가 쓰게 되는 날

성자 예수님은 잔치의 기쁨이 끊어진 자리에 참 포도나무로 오셔서 새 포도주를 부어 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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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부터 심판의 풍경이 갑자기 구체적이 됩니다.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사 24:7). 4절에서 땅을 두고 쓰던 '마르다'와 '쇠하다'가 그대로 포도밭으로 옮겨 옵니다. 8절은 소리를 지웁니다.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사 24:8). 손북도 멎고 수금도 멎고 흥겨운 함성도 끊어집니다. 9절은 마지막 남은 위로마저 거둡니다.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사 24:9). 마실 수는 있으나 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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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와 음악은 성경에서 잔치의 언어입니다. 추수의 기쁨이 있고, 그 기쁨을 나누는 노래가 있고, 노래를 받쳐 주는 손북과 수금이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은 이 세 겹을 한꺼번에 거두어 갑니다. 김필회 교수는 결실이 없기에 사람들이 손북과 수금을 치며 기뻐 흥겹게 떠들어대는 일이 없어졌다고, 포도주도 끊겼고 음악도 멎었다고 정리합니다. 특히 9절이 뼈아픕니다. 술이 아예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있는데 쓴 것입니다. 축제에 기쁨을 더해 주던 술을 이제는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마십니다. 같은 잔인데 마시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삶의 기쁨을 잃어버린 자에게는 어떤 단맛도 쓴맛이 됩니다. 이것이 심판의 가장 깊은 층입니다. 하나님은 잔치의 도구를 빼앗기 전에 잔치의 마음을 먼저 거두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자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훗날 가나의 혼인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한 분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며 잔치를 다시 여셨습니다. "너는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두었도다"(요 2:10). 이사야 24장이 거두어 간 잔을 요한복음 2장이 다시 채웁니다. 노래가 그친 땅에 참 포도나무로 오신 분이 계시기에, 우리의 탄식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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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사라진 삶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입니다. 출근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예배당에 앉습니다. 그런데 아무 맛이 없습니다. 찬송을 부르는데 소리만 나오고, 좋은 소식을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신호입니다. 어딘가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물길이 막혔다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대개 자극을 늘려 해결하려 합니다. 더 센 것, 더 자극적인 것, 더 바쁜 일정으로 빈자리를 덮습니다. 그러나 독주는 더 쓸 뿐입니다. 오늘 필요한 것은 자극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서로의 기쁨을 물어 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요즘 무엇이 힘드냐고 묻는 것도 좋지만, 요즘 무엇이 기쁘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그 물음에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는 지체가 있다면, 거기가 바로 우리가 함께 무릎 꿇어야 할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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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0-13 혼돈의 성읍과 가지 끝에 남은 것

성령 하나님은 무너진 성읍의 폐허 위에서도 남은 자를 붙드시고 새 언약의 백성으로 세우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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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에 성읍이 등장합니다.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사 24:10). 11절과 12절이 그 성읍 안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사 24:11-12). 그리고 13절에서 시선이 갑자기 넓어집니다.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사 24:13). 성읍의 폐허를 클로즈업하던 화면이 단번에 온 세계의 밭으로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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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을 당한 성읍'은 히브리어로 '혼돈의 성읍'으로 옮기는 편이 낫습니다. 여기 쓰인 단어 토후는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정복된 태초의 혼돈을 가리키던 바로 그 말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표현이 마치 태초의 혼돈이 다시 밀려 들어온 성읍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말 같다고 봅니다. 질서의 세계가 다시 무질서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 이것이 심판의 정체입니다. 그러니 10절 후반절의 "집마다 닫혀서"는 사람들이 숨으려고 문을 잠근 것이 아니라 폐허가 되어 들어갈 길 자체가 막혔다는 뜻입니다. 문은 닫힌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자리에서 13절이 놓입니다. 감람나무를 흔든다는 것은 수확의 마지막 동작입니다. 장대로 가지를 두들겨 열매를 털고 나면, 손이 닿지 않는 가장 높은 가지 끝에는 언제나 몇 알이 남습니다. 포도를 거둔 뒤에도 이삭처럼 남은 송이가 있습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표상이 민족들 가운데 있을 여호와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할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극히 일부만이 그 심판을 견뎌 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이 그림은 일차적으로 철저함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읽으면, 남은 몇 알은 언제나 다음 계절의 씨앗이었습니다. 이사야서는 처음부터 스알야숩, 곧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이름을 안고 걸어온 책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그 남은 자의 자리에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흔들고 남은 것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여도, 그 가지 끝을 붙드시는 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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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도 흔들림의 계절이 옵니다. 오래 쌓아 온 것이 하루아침에 털려 나가고, 익숙하던 문이 닫히고, 들어갈 길이 없어진 것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남은 것이 너무 적다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남은 것의 크기를 세지 않고 남기신 분을 바라보게 합니다. 가지 끝의 몇 알은 농부가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일부러 남겨 두게 한 몫이었습니다. 감람나무를 떨 때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 두라고 하신 말씀(신 24:20)이 바로 그것입니다. 남은 것은 부스러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하신 은혜의 몫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흔들린 뒤에 남은 것으로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 잃은 것 같은 지체에게 남아 있는 한 가지를 찾아 이름 붙여 주십시오. 그 한 가지가 다음 계절의 열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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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 땅을 지으시고 온 땅을 심판하시는 주님

저희가 붙들고 있던 안전한 자리들이

주님의 손 앞에서 얼마나 가벼운지를 봅니다

제사장이 먼저 저울에 오르는 그 순서를 기억하게 하시고

직분과 연조 뒤에 숨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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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다 하신 말씀 앞에

저희의 삶이 밟고 선 자리를 돌아봅니다

돌판을 받지 않았어도 아는 것이 있고

아는 만큼 책임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저희가 사는 이 도시를 조금 덜 병들게 하는

작은 순종을 오늘 시작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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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그치고 포도주가 쓰게 된 자리에서

주님을 찾습니다

자극으로 빈자리를 덮으려 하지 않게 하시고

가나의 혼인집에 새 포도주를 부으신 주님께서

저희의 마른 잔에도 기쁨을 채워 주옵소서

서로의 기쁨을 물어 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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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이 다시 밀려온 것 같은 시간에도

가지 끝에 남기신 몇 알을 보게 하옵소서

남은 것의 크기를 세지 않고

남기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저희에게 남겨 주신 그 몫으로

다음 계절의 열매를 준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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