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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22-30 문지방에 놓인 두 손, 침묵을 깨고 말하라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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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아 노인의 집에서 레위인 일행이 마음을 즐겁게 하던 밤, 성읍의 불량배들이 집을 에워싸자 노인은 자기 딸과 손님의 첩을 대신 내어 주겠다고 합니다(22-24절). 결국 첩이 문밖으로 끌려 나가 밤새도록 폭력을 당하고, 동틀 무렵 그 집 문 앞에 쓰러집니다(25-26절). 아침에 길을 떠나려던 레위인은 두 손을 문지방에 올린 채 엎드러진 여인에게 일어나라 떠나가자 말할 뿐이고, 대답이 없자 그를 나귀에 싣고 돌아갑니다(27-28절). 그는 여인의 몸을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내고, 이를 본 이들은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고 합니다(29-30절).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이 밤은 왕이 없던 시대가 가장 약한 이에게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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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기 19장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17장부터 이어지는 사사기의 마지막 부록은 두 이야기로 짜여 있습니다. 첫째 이야기가 미가의 신상과 단 지파의 이주를 통해 예배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 주었다면, 둘째 이야기는 한 레위인과 그의 첩을 통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두 이야기 모두 레위인이 등장하고 베들레헴과 에브라임 산지를 오갑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지파가 타락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이 이 시대의 병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해 줍니다.

# 앞 대목에서 레위인은 친정으로 돌아간 첩을 데리러 베들레헴에 갔고, 장인의 거듭된 만류 끝에 해가 기울 무렵 길을 나섰습니다. 종은 가까운 여부스에서 쉬자고 했지만 그는 이방 사람의 성읍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베냐민 땅 기브아까지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방인의 성은 위험하고 동족의 성은 안전하리라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기브아의 넓은 거리에서 그들을 맞아 준 사람은 없었고, 밭에서 돌아오던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만이 그들을 집으로 들였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나그네를 집에 들이는 일은 그 사람의 목숨을 맡는 일이었고, 문을 닫는 순간 집주인은 손님을 지킬 책임을 졌습니다.

#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밤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지도 않으시고, 누구도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교훈을 뽑아내려 하거나 아예 눈을 돌리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사사기 화자는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선정적인 묘사 없이 짧은 동사 몇 개로 사건을 적되, 한 여인의 손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만은 또렷이 남겨 둡니다. 그 침묵과 그 기록 자체가 이 본문의 고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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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4절 문을 두드리는 밤

성부 하나님은 약한 사람을 지키라고 세우신 집의 문이 폭력 앞에 열리는 것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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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삿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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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즐거운 식탁에서 시작합니다.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라는 말은 이미 베들레헴 장인의 집에서 여러 번 되풀이된 표현입니다. 남자들은 먹고 마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그 자리에서 여인은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이 장 전체에서 레위인과 장인, 레위인과 노인은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첩은 늘 대화 밖에 놓여 있습니다. 그 식탁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성읍의 불량배들로 옮긴 히브리어는 브네 벨리야알, 곧 쓸모없음의 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이 말은 우상숭배로 이끄는 자, 여호와를 모르는 자, 거짓 증언하는 자에게 붙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읍 한가운데에 여호와를 모르는 무리가 모여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창세기 19장의 소돔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떠올리게 합니다. 성읍 사람들이 집을 에워싸고, 집주인에게 손님을 끌어내라 요구하고, 집주인은 문밖으로 나가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레위인은 모든 면에서 소돔과 다름없는 성 안에 갇힌 셈입니다. 이방인의 성을 피해 동족의 성으로 왔는데 그 동족의 성이 소돔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사기가 처음부터 경고한 가나안화가 이스라엘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다만 소돔에서는 하늘의 사자들이 롯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지만, 기브아에는 그 문을 닫아 줄 손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노인의 대답은 더 큰 충격입니다. 그는 손님의 명예를 지키려고 자기 처녀 딸과 손님의 첩을 대신 내어 주겠다고 하며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전성민 교수는 여기서 옳은 대로를 뜻하는 야샤르 대신 좋은 대로를 뜻하는 토브가 쓰였으나 이것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후렴의 또 다른 얼굴이며, 그의 말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어 그나마 가장 나아 보이던 노인조차 온전한 사고를 잃었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사회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질수록 강자의 횡포는 심해지고 약자는 희생됩니다. 노인에게는 선의도 체면도 있었지만 그 선의가 지키려던 사람의 목록에 여인들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거듭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지키라 명하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하며, 그 질서가 뒤집힌 것이 바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던 시대의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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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오늘에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교회도 가정도 일터도 늘 누군가를 지키라는 부르심과 누군가를 내어 주고 싶은 유혹 사이에 섭니다. 조직의 명예를 지키려고 피해를 입은 사람의 목소리를 덮고, 중요한 사람의 체면을 지키려고 힘없는 사람에게 참으라고 말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났음을 한국교회는 부끄럽게 기억해야 합니다. 노인의 선의가 두 여인을 지켜 주지 못했듯, 체면을 앞세운 선의는 대개 가장 약한 사람을 문밖으로 밀어냅니다. 광양사랑의교회가 누구를 먼저 지키는 공동체인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보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 오래 다닌 사람보다 이제 막 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더 안전하게 느끼는 집이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안의 평화를 지킨다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만 계속 참으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일터에서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나에게 불똥이 튈까 봐 그 사람을 문밖에 세워 두지는 않았는지도 살펴보십시오. 너희 눈에 좋은 대로라는 말은 기브아의 노인만의 말이 아닙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값으로 치르는 모든 순간에 그 말이 되살아납니다. 하나님은 그 문이 누구를 향해 열리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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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6절 밤새도록, 동틀 때까지

성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외면한 긴 밤에도 고통당하는 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기록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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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삿 19: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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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는 노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옳은 말도 어리석은 말도 모두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되풀이합니다. 죄가 이미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면 어떤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첩을 붙잡아 밖으로 끌어냅니다. 붙잡다로 옮긴 하자크는 강하다는 뜻의 동사에서 왔습니다. 가볍게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힘으로 움켜쥐고 끌어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녀가 순순히 나간 것이 아니라 소용없는 저항을 했으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누가 끌어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리지만, 레위인이든 노인이든 문 안의 남자들이 자기 안전을 위해 여인을 문밖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화자는 그 밤의 일을 길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관계하였고, 능욕하다가, 놓은지라, 세 개의 동사가 전부입니다. 그 절제가 오히려 사건의 무게를 더합니다. 대신 화자는 시간을 적습니다. 밤새도록, 새벽 미명에, 동틀 때에, 밝기까지. 이 시간의 표지들은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폭력에 방치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문 안에서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도, 문 앞을 서성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19장 2절 이후 처음으로 26절에서 이 여인이 문장의 주어로 등장합니다. 그녀가 집 문에 이르렀고, 그녀가 엎드러졌고, 그녀가 밝기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온 밤 동안 사물처럼 다루어진 사람이 마지막 힘으로 제 발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때 화자는 그녀를 첩이나 여자가 아니라 아내라는 뜻도 지닌 잇샤로 부르고, 레위인은 그녀의 주인으로 부릅니다. 보호할 의무를 지닌 사람이 그 의무를 저버린 것을 화자가 낱말 하나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편히 자면서 고통을 외면했지만 화자는 그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직시하며 동참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이 밤에 하나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밤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도망친 하갈에게 감찰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던 분이 아무도 보지 않은 기브아의 밤을 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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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도 밤새도록 문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오래 폭력을 견딘 사람, 교회 안에서 권위를 가진 이에게 상처를 입고도 말하지 못한 사람,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아침이 오기만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아팠던 것은 폭력 그 자체만이 아니라, 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런 고백 앞에서 너무 자주 서둘러 용서를 말하거나, 교회의 이름에 누가 될까 입을 막아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누군가 용기를 내어 자기의 밤을 이야기할 때, 먼저 믿어 주고 끝까지 들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판단은 그다음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는 오늘 밤 내가 편히 잠든 사이에 문밖에서 떨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한 번쯤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연락이 끊긴 가족, 아무도 찾지 않는 이웃, 늘 괜찮다고만 말하는 동료가 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는 일, 문 앞을 한 번 서성여 보는 일이 그 밤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밤을 기록하게 하셨다면, 우리는 그 기록을 읽는 사람으로서 다음 밤에는 일어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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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28절 문지방 위의 두 손

성자 하나님은 문밖에 버려진 자의 자리로 스스로 나가시어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시고, 끝내 대답하지 못한 이들 곁에 서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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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삿 1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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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밤새 문밖에서 일어난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그는 잠을 자고 일찍 일어나 길 떠날 채비를 합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대조가 있습니다. 19장 3절에서 레위인이 첩을 데리러 갈 때 화자는 그를 그녀의 남편, 곧 이쉬라고 불렀고 그 문장의 첫 동사는 일어나다였습니다. 그런데 27절에서 같은 동사 일어나다로 시작하는 문장에서 그는 그녀의 주인, 곧 아돈으로 불립니다. 그녀의 마음에 다정히 말하려고 찾아갔던 남편이 어느새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관계가 다시 어그러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문을 엽니다. 거기에 여인이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습니다. 두 손이로 옮긴 웨야데하는 그리고 그녀의 손들이라는 뜻이며, 이 짧은 서술이 가련한 여인의 최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구약 전체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손이 문지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그녀가 안전한 집 안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뜻이고, 문을 두드릴 힘도 없이 손만 간신히 뻗었다는 뜻입니다. 문지방은 안과 밖, 안전과 폭력을 가르는 경계였습니다. 그녀의 손은 그 경계 위에서 멈추었습니다.

그 손을 보고 레위인이 한 말은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입니다. 이 책에 기록된 그가 아내에게 한 말 가운데 이것이 첫 말입니다. 그녀의 마음에 부드럽게 말하려고 찾아왔던 사람의 첫 말이 이토록 차갑습니다. 안부를 묻지도, 몸을 살피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않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개역개정은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실었다고 옮기지만, 박유미 교수는 히브리어 원문에 시체라는 말이 없고 그저 그녀를 실었다고 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화자는 그녀가 언제 숨을 거두었는지를 끝내 말하지 않습니다. 그 모호함이 레위인이 그녀를 끝까지 돌보지 않았다는 의심을 남깁니다. 우리는 이 문지방의 손 앞에서 그리스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 13:12). 레위인은 문을 열고도 나가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문밖에 버려진 자의 자리까지 친히 나가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이어서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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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이 말은 오늘도 여러 모습으로 되풀이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말, 공동체에 아픈 일이 생겼을 때 서둘러 덮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자는 말, 피해자의 사정보다 행사와 계획을 먼저 챙기는 말입니다. 한국교회는 떠나가는 일에 너무 익숙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살피기보다 다음 사역으로 옮겨 가고, 상처 입은 사람은 문지방 위에 남겨 둔 채 교회의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떠나가자고 말하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어 문지방 위의 손을 붙잡는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그 손을 잡는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는 것, 괜찮으냐고 묻는 것, 대답이 없을 때 곧바로 떠나지 않고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가족이 힘들어할 때 일어나라는 말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물음이 먼저여야 합니다. 일터에서 지친 동료에게도 성과보다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문지방 위에 손을 뻗은 채 쓰러져 있을 때가 있다면, 그 손을 아무도 잡아 주지 않는 것 같을 때에도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주님이 이미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에게 떠나가자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머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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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0절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라

성령 하나님은 끔찍한 악 앞에서 침묵하는 우리를 깨우시어, 그 일을 마음에 두고 함께 헤아려 진실하게 말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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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삿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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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레위인은 칼을 가지고 여인의 몸을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냅니다. 여기 쓰인 동사 나타흐는 제사를 위해 각을 뜨는 행위를 가리키고, 칼로 옮긴 마아켈레트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 할 때 들었던 바로 그 칼입니다. 레위인은 마치 자기 첩을 제물 삼아 제사를 드리는 듯하지만, 그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복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폭력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정중히 장례를 치르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였을 텐데, 그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모욕했습니다. 여인은 죽어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한 남자의 분노를 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전혀 낯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뒷날 사울도 암몬과 싸우려고 소를 잡아 각을 떠서 이스라엘 전역에 보냈습니다(삼상 11:7). 짐승의 몸을 나누어 보내는 것은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리라는 고대의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레위인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둘로 짐작됩니다. 그만큼 강한 자극이 아니면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이스라엘의 공동체성과 도덕성이 무뎌졌기 때문이고, 또한 레위인 자신의 비정상적인 분노와 잔인함 때문입니다. 기브아는 뒷날 사울 왕의 고향이 됩니다. 사사기는 왕을 기다리는 책이지만, 그 왕조차 이 어둠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을 은근히 내비칩니다.

그 몸을 받은 이들의 반응이 30절입니다.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출애굽 이후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뒤로 이런 일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김회권 교수는 이 이런 일이 레위인의 행위보다 기브아 사람들의 폭행과 살해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생각하고로 옮긴 시무 라켐 알레하는 직역하면 너희 자신을 그녀 위에 두어라에 가깝습니다. 그 사건 위에, 혹은 그 여인 위에 너희 자신을 두라, 곧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의논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명령이 따라옵니다. 이 세 명령은 오늘 교회가 할 일을 정확히 가리킵니다. 먼저 희생된 사람의 자리에 마음을 두고, 함께 헤아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뒤이은 20장이 보여 주듯 생각과 상의가 하나님께 여쭙는 일로 이어지지 않을 때 말은 또 다른 폭력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말은 분노에서가 아니라 기도에서 나와야 합니다.

.

악이 드러났을 때 교회가 가장 쉽게 택하는 길은 침묵입니다. 잘 모르는 일이라서, 교회가 나설 일이 아니라서, 괜히 분란이 생길까 봐 입을 다뭅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이미 한쪽 편을 드는 일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회 안팎의 폭력과 불의 앞에서 침묵했던 역사를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분노에 휩쓸려 사실을 헤아리지도 않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생각하고, 상의하고, 말하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약한 사람이 당한 일 앞에서 먼저 그 사람 곁에 마음을 두고, 함께 기도하며 헤아린 뒤에, 두려움 없이 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이 순서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뉴스 속의 고통을 그냥 넘기지 말고 한 사람의 이야기로 마음에 두어 보십시오. 가족이나 동료가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말할 때, 곧바로 판단하지 말고 함께 사실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리고 헤아린 뒤에는 필요한 말을 미루지 마십시오. 이름 없이 스러진 여인을 위해 성경은 한 장을 통째로 남겼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그 기록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주님,

즐거운 식탁 너머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하옵소서.

저희 체면과 안전을 지키려고

약한 이를 문밖으로 내어 주던

저희의 손을 멈추어 주옵소서.

.

긴 밤을 다 보신 아버지,

밤새도록, 새벽 미명까지,

동틀 때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던

그 밤의 무게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 밤 저희가 잠든 사이

문밖에서 떨고 있는 이가 없는지

창밖을 내다보는 눈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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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

문지방 위에 멈춘 두 손 앞에서

일어나라 떠나가자 말하지 않고

무릎 꿇어 그 손을 붙잡게 하옵소서.

이름 없이 스러진 이들 곁에

주께서 먼저 서 계셨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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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깨우시는 성령님,

악 앞에서 입을 다물던 저희가

그 일을 마음에 두고

함께 헤아리며 기도한 뒤에

두려움 없이 말하게 하옵소서.

광양사랑의교회가

가장 약한 이에게 가장 안전한 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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