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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11-21 이방 성읍을 피해 들어선 광장, 안심하라 말한 한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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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기운 저녁 길에서 레위 사람 일행은 여부스 가까이 이릅니다. 종은 이 성읍에 들어가 유숙하자고 청하지만, 주인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기브아로 나아갑니다(11-13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이르자 해가 지고, 일행은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들을 집으로 영접하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14-15절). 그때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던 한 노인,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기브아에 거류하던 나그네가 그들을 봅니다(16-19절). 노인은 그대는 안심하라며 쓸 것을 모두 담당하겠다고 하고, 일행을 집으로 들여 발을 씻기고 먹고 마시게 합니다(20-21절). 냉대의 광장과 환대의 작은 집이 한 저녁 안에 나란히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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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본문에서 레위 사람은 베들레헴 장인의 집에 닷새 동안 붙들려 있다가, 해가 기울었으니 자고 가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저녁 길을 나섰습니다. 일행이 여부스 맞은편에 이른 것으로 그 단락은 끝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길의 다음 한두 시간을 따라갑니다. 베들레헴에서 여부스까지는 걸어서 열 킬로미터 남짓이고, 여부스에서 기브아까지는 다시 대여섯 킬로미터입니다. 늦은 오후에 떠난 걸음이었으니 기브아에 닿았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짙게 내린 뒤였습니다. 미뤄 둔 하루가 끝내 밤길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 고대 근동에서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일은 예의가 아니라 거룩한 의무였습니다. 성문이 닫히고 들판이 위험해지는 밤에, 광장에 앉은 낯선 이를 먼저 본 사람이 그를 제 집으로 들이는 것이 사람의 도리였습니다. 율법은 그 도리를 한 민족의 기억 위에 세웁니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으니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환대가 나오고, 그 환대가 하나님 백성의 얼굴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얼굴이 지워진 성읍 하나를 보여 줍니다.

# 이 본문을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창세기 19장을 떠올립니다. 저녁에 성문에 앉아 있던 롯, 거리에서 밤을 새우려던 두 나그네, 강권하여 집으로 들이고 발을 씻기고 음식을 차린 일, 그리고 그 밤 집을 에워싼 성읍 사람들입니다. 사사기의 화자는 그 장면을 일부러 되울리며 기브아의 저녁을 적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성읍을 소돔 곁에 나란히 세워 두고, 가나안을 쫓아내지 못한 백성이 어떻게 가나안보다 더 어두워졌는지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밤이 오기 직전, 아직 문이 닫히기 전의 저녁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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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3절 이방 성읍을 지나치다

성령 하나님은 겉모양의 경계가 아니라 마음의 경계를 분별하게 하시고, 참된 거룩이 어디에 있는지 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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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삿 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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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려 할 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종이었습니다. 청하건대 돌이켜 이 성읍에 들어가 유숙하자는 것입니다. 해는 지고 있고 성읍은 눈앞에 있으며 밤길은 생명이 위태로운 길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읽은 상식적인 제안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거절합니다. 여부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이라는 것이 이유의 전부입니다. 당시 이방인은 제의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졌고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었으니, 레위 사람이 동족의 성읍을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은 그 시대의 상식이기도 했습니다. 13절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까지 가자고 합니다. 여부스에서 기브아가 걸어서 한 시간, 라마는 거기서 또 한 시간입니다. 전성민 교수는 해가 지고 있는데 두 시간 넘게 더 가겠다고 한 이 사람을 두고 분명 고집 센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그런데 이 상식적인 판단은 이야기 전체의 흐름 속에서 깊은 아이러니가 됩니다. 이방 성읍을 피해 고른 동족의 성읍이 그날 밤 이방 성읍보다 더 이방 같은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1장 21절은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불순종 때문에 이방 성읍으로 남은 여부스를 피해 들어간 곳이 하필 그 베냐민의 기브아였습니다. 사사기의 처음과 끝이 여기서 맞물립니다. 거룩을 지키려는 명분 안에 대접받고 싶은 기대가 섞여 있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자리입니다. 이방인보다 동족에게서, 더구나 어디서든 환영받는 레위 사람이니 더 나은 대접을 받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넉 달 동안 아내를 찾지 않았고 처가에서는 아내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으며 종의 합리적인 제안은 가볍게 물리친 사람입니다. 경계를 지키는 일에는 단호하면서 곁의 사람을 돌보는 일에는 둔한 신앙, 이것이 왕이 없던 시대 종교인의 초상입니다.

결국 본문은 우리에게 경계선을 어디에 긋느냐고 묻습니다. 레위 사람은 혈통과 지파와 땅 위에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선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뒷날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해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아 하고 부르짖었습니다(사 1:10). 예수님은 선 밖에 두었던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36-37). 참된 거룩은 누가 선 안에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느냐로 드러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겉모양의 경계에서 마음의 경계로 옮기십니다. 레위 사람이 피하려던 부정은 문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곧 들어설 동족의 성읍 안에, 굳게 닫힌 문 뒤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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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안전하다고 여기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같은 교회, 같은 교단, 같은 지역,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그 울타리 밖은 세상이고, 세상은 위험하다고 배웁니다. 물론 분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울타리 안이라고 해서 저절로 안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한국교회가 겪어 온 가장 깊은 상처들은 바깥의 박해가 아니라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약한 이가 보호받지 못하고, 동족이라 믿었던 이들이 오히려 상처를 준 일들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는 우리 안이 먼저 안전한 곳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름표가 같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정말로 나그네가 쉴 수 있는 집인지 물어야 합니다. 또 곁에서 들려오는 상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 본문에서 가장 지혜로운 말을 한 사람은 이름 없는 종이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자녀의 말이, 일터에서는 아랫사람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그 종의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명분이 거룩해 보여도 속에 대접받고 싶은 계산이 섞여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살피는 것, 그것이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분별입니다. 우리가 피하려는 것이 정말 부정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낯설고 불편한 것인지를 구별하는 일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낯선 문화, 다른 세대의 말투, 익숙하지 않은 예배 방식을 우리는 종종 부정하다는 말로 밀어냅니다. 그러나 부정은 대개 우리 안에, 곁 사람을 돌보지 않는 무심함 속에 숨어 있습니다. 여부스를 피하는 것보다 기브아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거룩입니다. 울타리를 높이는 일보다 울타리 안의 약한 한 사람을 지키는 일에 먼저 힘을 쓰는 공동체가 참으로 안전한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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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절 영접하는 자 없는 광장

성부 하나님은 나그네를 사랑하라 명하시고, 문을 닫은 성읍의 침묵까지도 들으시며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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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삿 1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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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해가 졌습니다. 화자는 여기서 기브아가 베냐민에 속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힙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이스라엘의 경내에서 일어났으며 그 책임이 한 지파에게 있다는 것을 미리 못 박아 두는 것입니다. 레위 사람이 바라던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성읍에 도착한 셈입니다. 기브아는 여부스에서 대여섯 킬로미터 떨어진 베냐민의 대표 성읍이었고, 뒷날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의 고향으로 이름을 남깁니다. 왕을 배출할 성읍이 왕 없던 시대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를 오늘 본문이 보여 줍니다. 일행이 앉은 성읍 넓은 거리는 히브리어로 레호브, 성문 가까이의 광장입니다. 공적인 일을 의논하고 재판을 열던,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이 나그네들은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눈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박유미 교수는 이것이 당시 관습으로 볼 때 매우 놀라운 일이며 기브아가 사회적 윤리와 미덕이 무너진 각박한 성읍임을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해가 저물어 다들 집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도착한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조차 말을 걸지도, 묻지도, 맞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율법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거듭 객을 잘 대접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받은 백성의 성읍에서, 이방인의 마을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레위 사람은 이방 성읍의 부정을 피해 왔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동족의 닫힌 문이었습니다. 율법을 가진 것과 율법을 사는 것 사이의 거리가 이 광장만큼 넓었습니다.

이 침묵은 창세기 19장과 나란히 놓일 때 더 무겁게 들립니다. 소돔에서는 롯이 성문에 앉아 있다가 나그네를 보자마자 일어나 맞이했고, 거리에서 밤을 새우겠다는 그들을 간청하여 집으로 들였습니다. 그런데 기브아에는 롯 같은 사람조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뒷날 소돔의 죄를 교만하고 식물이 풍족하고 태평하였으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한 것이라고 요약했습니다(겔 16:49). 광장의 침묵은 폭력보다 조용하지만 폭력으로 가는 문턱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복음서의 첫 자리와 겹쳐집니다. 베들레헴에는 해산할 곳이 없었고(눅 2:7), 요한은 그분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적었습니다(요 1:11). 성부 하나님은 광장에 앉은 나그네의 침묵도, 문을 닫은 성읍의 침묵도 들으십니다. 영접하는 자가 없었더라는 짧은 문장은 기브아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판단이 적히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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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사회의 광장에도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낯선 도시로 온 청년, 말이 서툰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 병원 복도에서 밤을 새우는 보호자, 혼자 사는 어르신입니다. 그들은 숨어 있지 않습니다. 모두의 눈앞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을 보고도 집으로 들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한때 이 땅의 가장 너른 대문이었습니다. 병원과 학교와 고아원을 세우며 광장의 나그네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의 문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는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광양사랑의교회가 광양의 광장에 앉은 나그네를 먼저 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당 입구에서 처음 온 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한 사람, 교회 앞을 서성이는 이웃에게 말을 거는 한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문을 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 집 식탁에 한 번도 앉아 본 적 없는 이웃을 한 사람 떠올려 보십시오. 일터에서는 새로 온 동료가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침묵하지 않는 것, 먼저 묻는 것이 기브아와 다른 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기억하십시오. 기브아 사람들은 나그네를 해치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죄의 목록 맨 앞에 적어 둡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는 야고보의 말씀처럼, 닫힌 문은 중립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모른 척 지나친 광장이 어디였는지 저녁에 한 번 되짚어 보십시오. 그 되짚음이 내일의 문을 여는 첫 열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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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1절 그대는 안심하라

삼위 하나님은 나그네를 알아보시는 나그네의 눈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모든 쓸 것을 담당하시며 평안을 선포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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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삿 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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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었지만 화자는 보라는 말로 이 노인의 등장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화자는 곧바로 덧붙입니다. 이 노인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기브아 토박이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나선 사람은 그 땅의 나그네였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의 무정함과 노인의 호의를 나란히 세우려는 포석입니다. 노인은 눈을 들어 광장의 나그네를 보고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습니다. 기브아에서 이 여행자들에게 관심을 둔 첫 사람입니다. 떠도는 레위인들이 제자리를 잃은 시대의 증상이라면, 이 노인은 떠도는 삶 속에서도 사람의 도리를 잃지 않은 한 사람입니다.

레위 사람의 대답은 길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는 길이라 말하고,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덧붙이며, 자기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처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서 여호와의 집을 입에 올린 것은 자신을 조금 과하게 포장한 말로 보입니다. 거리에서 영접받지 못한 것은 일행 모두인데 나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 것도 눈에 걸립니다. 그러면서 짚과 여물과 양식과 포도주가 다 있어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고, 첩과 종을 당신의 여종, 당신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김회권 교수는 이것을 주인의 호의를 기다리는 종의 자세를 취한 것으로 읽습니다. 장인의 지나친 환대에 지쳐 떠나온 사람이 이제 환대를 구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노인의 대답이 이 단락의 중심입니다. 그대는 안심하라. 원문은 샬롬 레카, 곧 그대에게 평안이 있으라는 인사입니다. 이어서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직역하면 당신의 모든 필요가 내 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필요를 자기 위에 지는 것, 그것이 나그네를 맞는 자세입니다. 그는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며 일행을 집으로 들이고, 나귀를 먹이고, 발을 씻게 하고, 먹고 마시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마므레에서, 롯이 소돔에서 보였던 오래된 환대의 몸짓이 기브아의 작은 집에서 되살아납니다. 평안을 선포하고 필요를 짊어지고 발을 씻기는 이 모습은 뒷날 오실 분을 미리 비춥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문을 닫고 모인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다만 본문은 이 저녁을 오래 두지 않습니다. 노인도 그 땅의 나그네였기에 그를 지켜 줄 친척이 없었고, 이 작은 집은 곧 성읍의 폭력 앞에 놓입니다. 한 집의 환대만으로는 성읍 전체의 어둠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참된 샬롬은 성읍을 다스리는 참된 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사사기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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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그네를 알아보았습니까. 토박이가 아니라 또 다른 나그네였습니다. 자기 설움을 기억하는 사람이 남의 설움을 봅니다. 우리 신앙의 뿌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 영접받은 나그네입니다. 그 기억을 잃지 않는 사람이 오늘 광장의 나그네에게 그대는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이웃의 신뢰를 얻는 길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노인처럼 눈을 들어 보고, 먼저 묻고, 필요를 자기 위에 지는 작은 환대일 것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집의 문을 여는 노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가 레위 사람의 자리에 설 때도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체면 때문에 필요를 감추고 스스로를 포장하는 자리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필요를 말하십시오. 하나님은 쓸 것을 모두 담당하시겠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가정에서는 오늘 지친 얼굴로 들어오는 식구에게 안심하라는 한마디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건네 보십시오. 일터에서는 누군가의 짐을 조금이라도 내 위에 지는 일을 찾아보십시오. 샬롬은 선포로 시작되지만 발을 씻기는 손으로 완성됩니다. 노인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지쳐 돌아오던 늙은 나그네였습니다. 그에게 넉넉한 힘이나 재산이 있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환대는 여유가 있는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눈을 들어 보는 사람의 결단입니다. 지친 퇴근길에도 눈을 들어 광장을 보는 사람, 그 한 사람이 성읍 전체의 어둠 속에서 작은 등불이 됩니다. 오늘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만 고개를 들어 보십시오. 그 한 번의 눈 들어 봄에서 환대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

# 거둠의 기도

주님,

해 지려 하는 길 위에서 저희가 그은 경계선을 돌아봅니다.

겉모양의 선을 지키느라 마음의 선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곁에서 들려오는 상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겸손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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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를 사랑하라 명하신 아버지,

영접하는 자 없던 기브아의 광장처럼

저희의 문이 닫혀 있지 않은지 오늘 정직하게 살피게 하옵소서.

광장에 앉은 이웃의 얼굴을 모른 척 지나치지 않게 하시고

광양사랑의교회가 이 땅의 너른 대문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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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에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하신 예수님,

그런 주님께서 저희를 먼저 영접하시고

그대는 안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저희의 모든 쓸 것을 담당하신 그 은혜로

저희도 이웃의 짐을 제 위에 지고 발을 씻기는 손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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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주시는 성령님,

어둠이 문을 두드리는 밤에도 

주께서 선포하신 샬롬이 저희 집과 교회를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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