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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6:1-22 침묵이라는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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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세상의 모든 물음에 즉시 대답할 말을 갖추는 일이 아니라, 대답을 하나님께 맡겨 드릴 만큼 그분을 깊이 신뢰하는 마음의 자리를 얻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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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을 가리지 않고 숲을 가득 메우던 매미 소리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잦아들었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해 밤공기를 타고 풀벌레들의 나직한 노래가 흘러듭니다. 소리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소리의 결이 바뀐 것입니다. 여름의 소리는 자기를 증명하려는 소리였고, 가을의 소리는 자기를 내려놓는 소리입니다. 그 사이에 잠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짧은 틈이 있습니다. 저는 그 틈이 좋습니다. 늦더위 끝자락을 지나며 몸도 마음도 지쳐 계신 모든 분의 심령 위에, 그 짧은 고요 같은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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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서게 될 자리에도 소리가 가득합니다. 다만 그 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조롱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아래, 앗수르 왕이 보낸 사자 하나가 목청껏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유창하고, 정확하고, 무섭도록 논리적입니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장면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사 36:21). 오늘 저는 그 침묵 앞에 오래 서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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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의 배경을 잠시 짚어 봅니다.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성경은 그 참담한 사태를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사 36:1). 한 줄이지만 그 뒤에는 잿더미가 된 마을들이 있습니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성들이 하나씩 무너졌고, 이제 지도 위에 남은 것은 예루살렘 한 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를 순서대로 읽어 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숨이 턱 막힙니다. 바로 앞 장까지 우리는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나고 거룩한 길이 열리는 환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찬란한 환상이 접히자마자, 우리는 흙먼지 이는 성벽 아래로 툭 떨어집니다. 이사야서는 그렇게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 환상을 믿는다는 것이, 이 흙먼지 속에서는 대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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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서 있던 자리가 마음에 오래 걸립니다.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사 36:2). 이 지명이 이사야서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한 세대 전, 예언자 이사야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하스 왕을 만났습니다. 그때 이사야가 전한 말씀은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였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조용히 있지 못하고 앗수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손이 이제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목을 조르러 왔습니다. 같은 흙 위에서 아버지는 사람을 붙잡았고, 아들은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우리가 서는 자리는 늘 누군가 먼저 서서 선택했던 자리이고, 우리의 선택은 다음 세대가 서게 될 자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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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사게의 첫마디는 질문이었습니다.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사 36:4). 저는 이 질문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원수의 질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어 붙인 말들도 대부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은 과연 "상한 갈대 지팡이"(사 36:6)여서 기대면 손이 찔릴 뿐이라고, 예언자 이사야도 이미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러니 랍사게의 무기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비틀어 쥔 손이었습니다. 그는 참말을 골라 와서 사람을 절망시키는 데 썼습니다. 예언자는 헛된 지팡이를 꺾어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했고, 사자는 헛된 지팡이를 꺾어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어디를 향해 놓이느냐에 따라 그것은 다리가 되기도 하고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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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점점 위로 올라갔습니다. 처음에는 왕을 겨누던 말이 나중에는 하늘을 겨눕니다.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사 36:20). 이 한 문장에서 상대가 바뀝니다. 이제 싸움은 산헤립과 히스기야의 싸움이 아니라 산헤립과 하나님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무너진 나라들의 신들 옆자리에 끌어다 놓았습니다. 진열대 위의 물건 하나로 만들려 했습니다. 바츨라프 하벨은 똑같은 말이 한 순간에는 평화의 주춧돌이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음절마다 기관총 소리가 울려 퍼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랍사게의 문장들이 꼭 그러합니다. 유창한 만큼 잔인하고, 정확한 만큼 살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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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벽 위에서,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사 36:21). 이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명령을 따른 침묵이었고, 훈련된 침묵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에서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말은 소음일 뿐이라고 썼습니다. 랍사게의 호령은 제국의 소리처럼 들렸지만 실은 침묵이 없는 소리, 곧 소음이었습니다. 반면 성벽 위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큰 소리를 냈습니다. 그들의 침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싸움은 우리 싸움이 아니라 그분의 싸움이다. 대답은 우리 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나온다. 대답하는 순간 그 싸움은 사람의 싸움으로 작아졌을 것입니다.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사건을 하나님의 법정으로 이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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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도 성벽 아래처럼 시끄럽습니다. 신앙은 자주 조롱의 과녁이 되고, 교회는 해명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더 크게, 더 빨리, 더 논리적으로 말하려 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말의 뿌리에 흙이 묻어 있지 않은 말, 말의 잎새에 눈물이 맺혀 있지 않은 말은 신뢰할 수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급히 쏟아 내는 말들에 흙과 눈물이 묻어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문장입니다. 그러나 소음에 소음으로 맞서면 남는 것은 더 큰 소음뿐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좋은 반박문이 아니라, 대답하지 않고 견디는 훈련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침묵은 체념이 아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세 관리는 잠잠했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옷을 찢고 왕에게 나아갔고(사 36:22), 왕은 그 말을 들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입을 다무는 대신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침묵에는 언제나 목적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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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삶에도 대답하고 싶은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오해받은 일, 설명하면 금세 풀릴 것 같은 오해, 한마디만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다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잠시 입을 닫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손에서 놓아 하나님의 손에 옮겨 드리시기 바랍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훨씬 크신 분께 그 일을 넘겨 드리는 일입니다. 훗날 성벽 위의 그 침묵이 어떻게 끝났는지 우리는 압니다. 사람이 잠잠했던 자리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새장에 갇힌 새 같던 예루살렘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또 한 분이 대제사장 앞에서 잠잠하셨습니다. 그 침묵 위에서 사흘 만에 하나님의 대답이 터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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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그친 자리에 풀벌레 소리가 들어오듯이, 우리 안의 소란이 잦아든 자리에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옵니다. 여름의 소리가 자기를 증명하려는 소리였다면, 믿음의 소리는 자기를 내려놓는 소리입니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 마음의 성벽이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든든해지기를 바랍니다. 무너질 것은 무너지게 두고, 남을 것 하나만 붙들고 서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소리도 헐 수 없는 그 고요한 성벽 안에서, 오늘도 주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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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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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FDnxwUnfy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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