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1-17 멈추어 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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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위기 앞에서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달려야 한다고 믿었던 그 길에서 발을 멈추고 방향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온전한 신앙이란 손에 무언가를 더 쥐어 안심하는 일이 아니라, 쥐려던 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힘이 주어지는 것을 배우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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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도 중순을 지나 처서를 코앞에 두었습니다. 한낮의 볕은 아직도 등을 따갑게 두드리는데, 해가 기울면 마당의 공기가 어느새 서늘한 기운을 머금습니다. 여름 내내 온 동네를 흔들던 매미 소리가 성글어지고, 저녁이면 논둑 어디쯤에서 풀벌레 소리가 낮게 일어섭니다. 계절은 이렇게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며칠 사이에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들어섭니다. 무엇 하나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자꾸 앞서 달리는 분들,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을 붙들고 밤늦도록 검색창을 뒤적이는 분들, 견디는 일보다 움직이는 일이 차라리 쉬워서 오늘도 종일 바빴던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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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큰 바람을 만난 배는 어떻게 할까요. 뭍에 서서 보는 사람은 배가 있는 힘껏 노를 저어 항구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래 배를 탄 사람들은 다르게 합니다. 돛을 접고, 뱃머리를 파도 쪽으로 돌리고, 닻을 내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일이 사실은 배를 살리는 가장 능동적인 일입니다. 돛을 펴고 달아나려는 배가 먼저 뒤집힙니다. 오늘 본문은 큰 바람 앞에서 돛을 펴려 했던 한 나라의 이야기이고, 닻을 내리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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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705년에서 701년 사이, 예루살렘은 분주했습니다. 앗수르의 사르곤 2세가 전장에서 죽고 산헤립이 즉위하자 제국 곳곳에서 반란의 기운이 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오랫동안 목을 죄어 오던 조공의 멍에를 벗을 때가 왔다고 판단했고, 그러기 위해 남쪽의 애굽과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낙타 등에 보물을 싣고 사신들이 길을 떠났습니다. 그 길은 암사자와 독사가 나오는 사나운 광야를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 한 것이 안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가 본 것은 애굽의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방향이었습니다. 그들은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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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사 30:1). 하나님이 문제 삼으신 것은 그들이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계획은 지혜의 일이고, 동맹은 그 시대의 상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출처였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이어지는 2절은 더 아픕니다.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발은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입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사람을 만나고 계산을 끝낸 다음에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결재 도장처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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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 붙여진 이름 하나가 이 본문의 정수입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사 30:7). 라합은 고대 근동 사람들이 바다의 괴물을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파도를 일으키고 배를 삼키는 거대한 힘의 상징이었지요. 그런데 예언자는 그 무시무시한 이름 앞에 '가만히 앉은'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힘을 잃고 주저앉은 괴물, 이름값을 못 하는 전설이라는 뜻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예언자가 애굽을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애굽이 비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사악한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것입니다. 부러진 갈대 지팡이는 나를 찌르려고 부러진 것이 아니라, 짚기 전부터 이미 부러져 있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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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뿌리는 정치가 아니라 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찾아가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사 30:10). 종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종교의 메뉴판을 고쳐 쓴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거룩하신 분이 계시면 자기들의 계획이 자꾸 불편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편한 것이 대개 진실입니다. 진실을 치우면 남는 것은 편안한 파멸뿐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그 결말을 이렇게 그립니다. 이 죄악이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갑자기 무너짐 같으리라(사 30:13). 담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만, 무너짐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것이 하나님께는 오래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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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심판의 한복판에서 문 하나가 열립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사 30:15). 히브리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돌이킴과 쉼 속에서 너희가 구원을 얻을 것이요, 조용함과 신뢰함 속에 너희의 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조용히 있다'로 옮겨진 낱말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두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 전체에 여덟 번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말입니다. 그리고 '힘'은 전쟁터의 용맹을 뜻하는 말인데, 성경은 그 용맹의 저장고가 병기고가 아니라 신뢰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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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르는 데서 비롯한다고 썼습니다. 그는 사람이 사냥을 좋아하는 것은 짐승을 원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 앉기가 두려워서라고 보았습니다. 유다가 애굽으로 내려간 것도 애굽을 믿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을 견딜 수 없어서였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이 조용함은 체념이 아닙니다. 돌이킴이 먼저이고 조용함이 그다음입니다.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것은 조용함이 아니라 마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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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5절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장의 끝에 다섯 글자가 붙어 있습니다.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문을 닫으신 것이 아니라 백성이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이 그대로 인용됩니다.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사 30:16). 예언자의 응답은 그 말을 그대로 되돌려 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속도로 살아남으려는 사람에게 세상은 언제나 더 빠른 것을 준비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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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 흩어지고 난 뒤의 풍경을 본문은 이렇게 그립니다.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 위의 기치 같으리라(사 30:17). 여기서 깃대로 옮겨진 낱말은 본래 배의 돛대를 뜻합니다. 배는 사라지고 돛대만 남은 풍경입니다. 큰 바람 앞에서 닻을 내리는 대신 돛을 폈던 배의 마지막 모습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로운 돛대 하나가 아직 서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소망입니다. 이사야의 아들 이름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였다는 것을 기억하면, 저 산꼭대기의 돛대는 폐허의 표지인 동시에 다시 시작될 자리의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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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속도의 시대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검색하고, 불안하면 즉시 연락하고, 기다림이 조금만 길어지면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기도는 대개 마지막 순번입니다. 다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무릎을 꿇습니다. 한국 교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교인이 줄고 사회의 신뢰가 흔들리자 우리는 더 빠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더 큰 행사, 더 강한 홍보, 더 세련된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그중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돌이켰습니까. 우리는 잠잠했습니까. 회개 없이 속도만 올리는 것은 방향이 틀린 채로 더 멀리 가는 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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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번 한 주간, 조용함을 아주 작게 연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급한 결정일수록 하루를 늦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루 동안 하나님께 여쭙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한번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실제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루 십 분만이라도 아무 소리 없이 하나님 앞에 앉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십 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이미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산꼭대기의 돛대처럼 홀로 남았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외로움이 곧 남은 자의 자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하나에서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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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물러나고 풀벌레 소리가 들어서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계절은 서두르지 않고도 기어이 바뀝니다. 우리 안에서도 조급함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조용함이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돛을 접고 닻을 내리는 손이 실은 가장 힘센 손임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늦여름의 끝에서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돌이켜, 잠잠함 속에서 주시는 힘을 받아 누리며 걸어가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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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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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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