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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2:1-20 광야가 밭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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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내 힘으로 땅을 바꾸어 보려는 안간힘을 내려놓고, 위에서부터 불어오는 숨결에 나를 열어 드리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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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가마솥 같던 염천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저녁 바람 끝자락에 서늘한 가을의 기척이 수줍게 스며드는 무렵입니다. 마당가에서 극성스레 울어 대던 매미 소리도 제풀에 지쳤고, 대지는 그토록 치열했던 여름의 열기를 가만히 내려놓으며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뀐다고 삶의 온도까지 함께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여름 내내 마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정작 자신이 얼마나 말랐는지 모르고 계신 분,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느라 어깨가 굳어 버린 분, 남에게 그늘이 되어 주느라 정작 자신은 온몸으로 뙤약볕을 받고 계신 분 —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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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의 모래땅에 나무를 심은 한 농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집온 첫날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래언덕뿐이었다는 그 여인은, 물동이를 지고 먼지바람 속을 오가며 삼십 년 가까이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심은 만큼 죽었고, 죽은 자리에 다시 심었습니다. 그렇게 이만 그루의 미루나무가 자라 사막 한복판에 숲이 생기고, 그 그늘 아래 옥수수가 자라고 수박 넝쿨이 뻗어 갔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광야가 밭이 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참으로 더디구나.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더딘 일을 단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사 32:15). 사람이 삼십 년을 걸어 도달하는 자리를, 하나님은 부어 주심 하나로 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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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주전 701년 무렵, 앞 장들과 같은 자리입니다. 앗수르의 그림자가 예루살렘 성벽에 드리우던 시절,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그의 자문단은 애굽의 병거를 세어 보며 살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사야 28장부터 32장까지를 '어떻게 해야 유다가 살아남는가'라는 한 물음 아래 놓인 말씀들로 읽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를, 히스기야는 애굽을 붙들었으니 의지한 대상만 달랐을 뿐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은 점에서는 부자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정리한 히스기야에게 정작 필요했던 한 가지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말씀에 의존하여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것. 오늘 본문의 첫 문장이 바로 그 말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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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사 32:1). 앞선 네 장이 모두 '화 있을진저'라는 탄식으로 시작했다면, 32장은 '보라'로 시작합니다. 김근주 교수는 이 한 글자의 차이에 주목합니다. 28장부터 31장까지가 심판을 말했다면, 32장은 그 심판을 지나온 뒤에 맞이할 회복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첫 얼굴은 놀랍게도 한 사람입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2). 앞의 둘은 밖에서 몰아치는 것을 막아 주는 벽이고, 뒤의 둘은 안에서 말라 가는 것을 적셔 주는 물입니다. 사람에게는 이 둘이 다 필요합니다. 막아 주기만 해서도, 적셔 주기만 해서도 살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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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구절에서 '그늘'이라는 말 앞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 왕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분이 아니라 그늘 '같은' 분입니다. 그늘이 된다는 것은 내가 그 햇볕을 대신 맞는다는 뜻입니다. 길가에 서서 온몸으로 뙤약볕을 견딘 뒤 지친 길손에게 제 한편을 서늘하게 내어 주는 늙은 느티나무처럼, 그늘은 언제나 누군가의 견딤 위에 생깁니다. 훗날 이 그늘은 한 사람의 몸이 되어 언덕 위에 세워졌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초청은 그러니까 나무 그늘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왕의 통치 아래서 감겼던 눈이 열리고, 말을 더듬던 혀가 분명해지고, 어리석은 자를 존귀하다 부르던 뒤집힌 저울이 바로잡힙니다. 존귀함은 신분이 아니라 계획으로 판명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사 32:8). 무엇을 마음에 품고 사는가, 그것이 한 사람의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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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찬란한 미래를 그려 놓고 예언자는 갑자기 목소리를 바꿉니다.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사 32:9). 그가 흔든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 편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염려 없는'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의 뿌리는 본래 '무언가를 깊이 신뢰하다, 그것에 피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문제는 아무것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을 너무 깊이 믿은 데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포도는 익으리라는 조용한 확신이 그들의 피난처였습니다. 그러나 일 년 남짓 지나 수확이 끊기고, 희락의 성읍에 가시와 찔레가 돋고, 궁전이 폐하여 들나귀가 즐기는 곳이 됩니다. 여기 쓰인 '가시'는 창세기에서 아담의 땅이 저주받을 때 돋아났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사람이 살던 자리가 에덴 밖의 땅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안일함은 사치보다 훨씬 조용한 죄여서, 무너지고 나서야 자기 정체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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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폐허 위에서 신탁이 뒤집힙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사 32:15). 여기 '영'으로 번역된 '루아흐'는 숨이자 바람입니다. 앞 장에서 예언자는 애굽의 말들을 두고 "육체요 영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유다가 남쪽으로 내려가 사려 했으나 끝내 살 수 없던 그것이, 이제 하늘에서 값없이 부어집니다. 그리고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됩니다. '아름다운 밭'으로 옮겨진 말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름진 땅 갈멜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광야가 갈멜이 되고, 그 갈멜이 다시 숲처럼 여겨질 만큼 무성해집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원상복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예언자는 그 밭에 무엇이 자라는지를 말하지 않고, 그 땅에 무엇이 거하는지를 말합니다.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사 32:16). 영이 부어진 표지는 황홀한 체험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 뿌리내린 바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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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영혼의 모든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물질의 중력과 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오직 은총만이 예외다." 우리 마음은 가만두면 언제나 아래로 흐릅니다. 안일한 쪽으로, 편한 쪽으로, 계산이 맞는 쪽으로 흘러내립니다. 그것이 영혼의 중력입니다. 그리고 베유는 은총이 채우러 오지만 빈자리가 있는 곳에만 들어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유다의 궁전이 폐하고 성읍이 적막해진 그 자리가, 실은 은총이 들어갈 빈자리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진 자리를 그토록 부끄러워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 자리를 밭으로 갈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내 삶에 생긴 빈자리를 서둘러 무엇으로든 메우려 하지 마십시오. 위에서 내려오는 것은 언제나 빈 곳으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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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본문은 마지막 절에서 아주 구체적인 한 장면을 보여 줍니다.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사 32:20). 물이 넉넉하니 아끼지 않고 뿌린다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뿌리는 삶, 그것이 영이 부어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오래 계산하며 살아왔습니다. 몇 명이 오는지, 얼마가 들어오는지, 이 일이 우리에게 무엇이 되는지를 먼저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사 32:17). 여기 '열매'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을 뜻하는 말입니다. 화평은 저절로 찾아오는 정적이 아니라, 바른 것이 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지어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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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랑의교회가 이 도시의 광야에 아끼지 않고 씨를 뿌리는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성도 한 분 한 분이 누군가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 큰 바위 그늘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약한 이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 내 이익이 걸린 자리에서 반걸음 물러서는 일, 계약서를 정직하게 쓰는 일 - 그것이 광야에 거하는 정의이고 밭에 거하는 공의입니다. 그렇게 살아 낸 하루하루가 모여 마침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사 32:18)이 지어집니다. 삼십 년을 심어야 숲이 생기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면, 그 사람의 손에 숨을 불어넣어 삼십 년을 걷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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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의 바람이 결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 바람은 우리가 만든 바람이 아닙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 바람이 불면 마른 것이 살아납니다. 오늘 두 손을 위로 벌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자기 안의 광야가 아름다운 밭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시기를, 그리고 그 밭에서 거둔 것을 다시 아낌없이 뿌리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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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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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VjZX03HWc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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