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사야 28:14-29 밭을 고르시는 손

*

샬롬! 오늘은 이사야 28장 14절에서 29절까지 말씀으로 '밭을 고르시는 손'이라는 제목으로 묵상에세이를 나누겠습니다.

.

온전한 신앙이란 내 손으로 안전을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이미 놓여 있는 기초를 발견하고 그 위에서 천천히 여물어 가는 생명 사건입니다.

.

팔월 중순입니다. 온 하늘을 흔들어 대던 매미 울음이 조금씩 기세를 꺾고, 저녁이면 마당 끝에서 풀벌레 소리가 먼저 들려옵니다. 며칠 뒤면 처서입니다. 논에서는 벼가 이삭을 내밀기 시작했고, 밭에서는 여름 작물을 걷어 낸 자리에 벌써 다음 것을 심으려고 흙을 뒤집는 손들이 보입니다. 계절은 이렇게 조용히 제 일을 합니다. 여러분의 여름은 어떠셨습니까. 아침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까 헤아리며 문을 나서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는데 정작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

노동자 시인 백무산은 목수였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집이란 밑바닥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임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자주 지붕부터 그립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어느 동네여야 하는지, 몇 평이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해 놓고 기초는 나중에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붕만 그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예언자가 던진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한복판에는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 이미 묻혀 있던 돌 하나가 있습니다.

.

이 말씀이 선포된 때는 주전 705년에서 701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죽고 산헤립이 즉위하면서 제국 곳곳에 반란의 기운이 돌던 무렵입니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가 씌워 놓은 앗수르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이번에는 애굽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왕궁의 회의는 분주했을 것입니다. 사신이 오가고 문서가 오가고 계산이 오갔을 것입니다. 그 분주함 한가운데로 예언자가 걸어 들어옵니다. 어제 본문에서 술 취한 제사장들을 향해 말했던 그 입술이, 오늘은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향합니다.

.

예언자가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매섭습니다.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사 28:14). 여기서 오만한 자라 옮겨진 말은 원래 '말만 앞세워 큰소리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언자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으니 넘치는 재앙이 밀려와도 우리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말했을 리는 없습니다. 그들은 애굽과 협정을 맺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그 협정에 다른 이름을 붙여 줍니다. 너희가 맺은 것은 생명의 협정이 아니라 죽음의 협정이라고 말입니다.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순간 계약서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사망과 언약을 맺은 자는 사망에게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심판을 선언하실 자리에서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꺼내십니다.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춧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저는 이 구절에서 '시험한 돌'이라는 말 앞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새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미 하중을 견뎌 본 돌이라는 뜻입니다. 왕궁의 사람들이 애굽과 협정을 맺느라 밤을 새우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무도 모르는 땅 밑에 이미 그 돌을 묻어 두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믿는 사람은 다급하게 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그대로 옮기면 '물러나지 않는다'가 됩니다. 서두르지 않는 것과 물러나지 않는 것은 결국 같은 일입니다. 발밑이 단단한 사람은 허둥대지 않고, 허둥대지 않는 사람은 제자리를 지킵니다.

.

이어지는 구절이 놀랍습니다.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사 28:17). 기초를 놓으신 그 손이 이제 같은 연장을 들고 우리가 지어 놓은 것을 검사하십니다. 그러니 믿음과 정의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닙니다. 믿음이 정의를 내용으로 삼고, 정의가 믿음에 뿌리를 둡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는 우리가 무엇을 재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결정이 사람보다 숫자를 먼저 재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다른 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모든 진단을 예언자는 한 장면으로 요약합니다.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사 28:20). 저는 이 문장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아픈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침상도 있고 이불도 있습니다. 다만 짧고 좁을 뿐입니다. 다리를 오그리면 누울 수는 있고 어깨를 웅크리면 덮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그 자리에 눕습니다. 아주 없으면 차라리 일어났을 텐데, 조금 모자란 것은 사람을 그 자리에 붙들어 둡니다. 우리가 마련한 대비책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밤새 몸을 뒤척이게 하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

그런데 이 무거운 신탁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십시오. 뜻밖에도 농사 이야기입니다.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사 28:24). 밭갈이는 목적이 아니라 준비입니다. 그리고 씨를 뿌릴 때도 곡식마다 자리가 다릅니다. 작은 씨앗은 흩뿌리고 밀과 보리는 줄지어 심고, 알곡이 잘 떨어지지 않는 귀리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밭 가장자리에 심습니다. 타작할 때는 더 세심합니다. 여린 회향은 막대기로 가볍게 두드리고 단단한 밀은 수레바퀴로 떨되, 너무 오래 굴려 알갱이가 바스러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합니다. 그리고 예언자는 그 모든 것의 출처를 밝힙니다.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사 28:26). 농부의 손끝에 배어 있는 그 미묘한 조절이 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무들처럼 되라고, 나무는 수액을 재촉하지 않고 봄의 폭풍우 속에 서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없이 태연히 서 있다고, 그러나 여름은 오고야 만다고 말입니다. 인내란 그저 참는 일이 아니라 시간의 결을 신뢰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농부가 꼭 그렇습니다. 농부는 무작정 갈지 않고 무작정 떨지 않습니다. 그 절제가 게으름이 아니라 지혜인 것은, 그가 씨앗마다 다른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도 그러합니다. 우리를 부수려고 두드리시는 것이 아니라 껍질을 벗기려고 두드리십니다. 그리고 그 힘을 정확히 조절하십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놓입니다.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사 28:29).

.

이 오래된 농부의 지혜 위에 신약이 겹쳐집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는 시온에 놓인 그 돌을 그리스도라 불렀고, 사람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정치가들이 계산에서 빼놓았던 그 돌이 결국 새 성전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시며, 친히 그 밀알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부수지 않으시려고 자신이 부서지신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딛고 선 기초는 값싼 돌이 아닙니다. 아주 비싼 값이 치러진 돌입니다.

.

이번 주에 두 가지만 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첫째, 내가 붙들고 있는 안전 장치의 이름을 정직하게 불러 보십시오. 통장인지 인맥인지 건강 검진 결과인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신지 말입니다.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순간 거짓의 피난처는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둘째, 곁에 있는 누군가를 재촉하던 말을 한 번만 삼켜 보십시오. 회향에게는 막대기로 오시고 밀에게는 수레바퀴로 오시는 분이 계신데, 우리가 남의 밭에 내 도리깨를 들고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자녀에게, 후배에게, 신앙의 걸음이 느린 형제에게 우리는 너무 자주 남의 연장을 휘둘렀습니다.

.

며칠 뒤면 처서이고, 들판의 벼는 이제부터 조용히 여물어 갈 것입니다. 여무는 일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사진을 찍어 비교해 보아야 겨우 알아볼 만큼 더디게 진행됩니다. 우리 삶에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 실은 가장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 말입니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우리는 자꾸 짧은 침상 위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 놓여 있는 돌을 발밑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재촉하지 않는 농부의 손을 신뢰하며, 조급함을 내려놓고 제 몫의 한 뼘을 조용히 갈아 가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평화의길벗_라종렬

.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rwt5GorC-Kw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0 이사야 36:1-22 침묵이라는 성벽 new 평화의길벗 2026.08.26 1
349 이사야 35:1-10 사막이 감춘 우물 평화의길벗 2026.08.25 3
348 이사야 34:1-17 폐허에 깃든 짝 평화의길벗 2026.08.24 10
347 이사야 33:1-24 다시는 뽑지 않을 말뚝 평화의길벗 2026.08.23 8
346 이사야 32:1-20 광야가 밭이 되기까지 평화의길벗 2026.08.22 16
345 이사야 31:1-9 날개 아래로 돌아오는 길 평화의길벗 2026.08.21 12
344 이사야 31:1-9 날개 아래로 돌아오는 길 평화의길벗 2026.08.21 20
343 이사야 30:18-33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평화의길벗 2026.08.20 21
342 이사야 30:1-17 멈추어 서는 힘 평화의길벗 2026.08.19 23
341 이사야 29:15-24 그 손을 알아보는 날 평화의길벗 2026.08.18 25
340 이사야 29:1-14 꿈에 먹은 빵 평화의길벗 2026.08.17 30
» 이사야 28:14-29 밭을 고르시는 손 평화의길벗 2026.08.16 30
338 이사야 28:1-13 숨을 돌리는 자리 평화의길벗 2026.08.15 32
337 이사야 27:2-13 밤새 켜 둔 등불 평화의길벗 2026.08.14 51
336 이사야 26:1-27:1 밤에 맺히는 이슬 평화의길벗 2026.08.13 43
335 이사야 25:1-12 가리시는 손, 걷으시는 손 평화의길벗 2026.08.12 30
334 이사야 24:14-23 해가 부끄러워지는 아침 평화의길벗 2026.08.11 29
333 이사야 24:1-13 가지 끝에 남은 것 평화의길벗 2026.08.10 32
332 이사야 23:1-18 칠십 년 뒤의 항구 평화의길벗 2026.08.09 50
331 이사야 22:1-25 못에 걸린 것들 평화의길벗 2026.08.08 2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