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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1:01-09 내려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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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을 향한 화 선언입니다.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은 여호와를 앙모하지 않고 애굽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러 내려갑니다(1절). 예언자는 하나님도 지혜로우시다고 응수하며, 그분이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과 그 행악을 돕는 자들을 함께 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2-3절). 그러나 신탁은 심판에서 멈추지 않고, 먹이를 움킨 사자처럼, 날개 치며 새끼를 보호하는 새처럼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시온에서 싸우시고 예루살렘을 건지십니다(4-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거역하던 그분께로 돌아와 손으로 만든 우상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앗수르는 사람의 칼이 아닌 칼에 엎드러지고,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습니다(6-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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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신탁의 역사적 자리는 주전 701년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대항하여 일으킨 봉기가 그 배경입니다. 김필회 교수에 따르면, 예루살렘 왕궁의 자칭 지혜로운 위정자들은 지혜의 근원이신 여호와께 의존하기를 거절하고 애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정치적 구원자를 찾았습니다. 그들의 불신앙은 애굽의 실체를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는 역사와 운명의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를 친히 보여 주실 것입니다.

# 문학적으로 31장은 30장의 축소판입니다. 28장에서 35장에 이르는 큰 단락 가운데 29장에서 31장은 유다의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 경고, 그리고 회복의 약속을 다루는데, 31장은 그 마지막 자리에서 앞선 30장의 논지를 압축해 되풀이합니다. 김근주 교수는 이 부분을 28장에 언급된 '술 취한 상태'에 대한 상세한 부연으로 읽으면서, 이들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할 뿐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 애굽에 도움을 구하려 끊임없이 사신을 보냈다고 정리합니다. 그리고 31장에서 재앙을 선포하는 '호이'로 시작된 흐름은, 32장에 이르러 '보라'라는 말로 시작되는 새로운 왕의 통치로 넘어갑니다. 심판의 언어가 회복의 언어에 자리를 내주는 것입니다.

# 본문은 세 단락으로 나뉩니다. 애굽과의 동맹이 헛됨을 선언하는 1-3절, 심판을 통한 시온의 구원을 사자와 새의 비유로 보여 주는 4-5절, 그리고 배신하였던 분께로 돌아오라고 권고하는 6-9절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세 단락이 전하는 전체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애굽이나 앗수르가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운명을 결정하신다는 것,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의 궁극적 보호자로서 당신을 배반한 예루살렘을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이 서로 다른 두 손이 아니라 한 손의 앞뒤라는 사실, 이것이 31장을 읽는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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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로우셔서 한번 하신 말씀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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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을 향해 화를 선포합니다.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합니다. 이에 대해 예언자는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그분은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실 것입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어서, 여호와께서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고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 다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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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자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이요레딤'의 원형 '야라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을 뜻하는 동사입니다. 애굽은 위도상으로 유다보다 아래쪽에 있고, 고도상으로도 산지에 세워진 예루살렘보다 낮은 저지대에 있으니 지리적으로도 '내려간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러나 예언자가 이 말을 쓴 것은 단지 지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애굽과 동맹을 맺고 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 자체가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는 것임을 암묵적으로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함과 겸손함으로 그분을 따르는 오르막길을 걸어야 마땅한데, 유다는 세속적으로 좀 더 편한 내리막길을 택하여 걸었습니다.

2절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를 정면으로 대조시킵니다. 김필회 교수에 따르면, 자신들의 지혜를 자랑하며 내린 지혜자들의 결정에 맞서 유다의 운명을 실제로 결정하시는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유다의 생존을 애굽에 의존하려던 결정이 결국 재앙을 초래한 어리석음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완고함이 아니라 신실하심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위정자들의 불신앙을 정죄하시려는 그분의 의지는 취소되지 않습니다. 애굽의 약속은 정세에 따라 언제든 뒤집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뒤집히지 않습니다. 정작 믿을 수 없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이었던 것입니다.

3절은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히브리적 사고에서 '육체'(바사르)는 정신에 대립하는 물질을 뜻하지 않습니다. 육체는 창조된 존재로서의 연약성과 약함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창조주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종속성을 함축합니다. 반면 '영'(루아흐)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생명의 원리입니다. 애굽의 군마는 그 자체로 역사를 주도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작용할 때에만 군마도 힘을 발휘합니다. 갈대 바다에서 오른손을 펴서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를 진멸하셨던 그 손(출 15:12)이 이제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를 함께 치실 것입니다. 놀랍게도 애굽에서 건져 내신 손과 애굽을 의지하는 자를 치시는 손이 같은 손입니다. 이 대목은 훗날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고 고백한 자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십자가는 병거와 마병의 논리를 뒤집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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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 교회는 어떤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교인 수와 재정 규모, 건물의 크기와 프로그램의 화려함이 곧 교회의 안전보장이라고 믿는 자리가 우리 시대의 병거와 마병입니다. 나쁜 것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앙모하는 자리를 그것들이 대신 차지해 버렸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일에 교회의 미래를 걸고, 세상의 셈법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육체요 영이 아니라고.

우리 교회는 규모로 존재를 증명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앙모함으로 존재하는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장 잔고와 자녀의 성적, 직장에서의 자리와 사람들의 평판 —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악하지 않지만, 그것이 무너지면 내 인생도 무너진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애굽입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붙들 때 마음이 놓이는지 정직하게 들여다보십시오. 그 자리가 내가 앙모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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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절 사자처럼 움키시고 새처럼 덮으시는 분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바로 그 손으로 당신의 소유를 끝까지 지키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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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두 개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여러 목자를 불러 와 그것을 치려 해도, 사자는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하고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합니다. 이와 같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우실 것입니다. 또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며,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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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비유는 얼핏 위로로만 들리지만 실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비유가 하나님의 심판 의지와 구원 의지를 동시에 함축한다고 지적합니다. 사자가 먹이를 살려 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듯, 먹잇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자의 표상은 예루살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사자의 발톱에 사로잡힌 동물에게 그것은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예루살렘이 사자 되신 여호와의 먹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먹잇감이 사자의 소유이듯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목자들이 사자에게서 사로잡힌 양을 구해 낼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그분에게서 예루살렘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통치자를 상징하니, 사자에 맞서 먹잇감을 빼앗으려는 목자들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앗수르의 통치자들입니다.

5절의 새 비유도 같은 결로 읽힙니다. 흔히 우리는 여기서 새끼를 품는 어미 새를 떠올리지만(신 32:11), 4절과의 연속성을 전제하면 이 새는 사자가 먹다 남긴 것을 자기 것으로 지키기 위해 그 위를 맴도는 맹금류입니다. 자기 먹이를 지키는 새들처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은 여기서 동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보호하다'를 다시 받으며 호위하고, 건지고, 뛰어넘어 구원한다는 세 동사를 더 붙입니다. "뛰어넘어"라는 말은 유월절의 그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죽음이 문설주를 지나쳐 갔던 그 밤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위를 뛰어넘어 지나가시며 건지십니다. 심판의 사자와 보호의 날개가 한 분 안에 있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마 23:37)고 우신 것은, 바로 이 이사야의 날개가 육신을 입고 그 성 위에 다시 드리워진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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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움키시는 분입니다. 삶에 닥친 고통이 곧 버림받음의 증거는 아닙니다. 사자의 발톱에 붙들린 것처럼 느껴지는 그 자리가, 실은 어느 누구도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는 가장 안전한 자리일 수 있습니다. 징계 없는 방치보다 아픈 붙드심이 은혜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상식이 된 시대입니다. 누구도 나를 지켜 주지 않으니 스스로 병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불안이 청년들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교회는 이 불안 앞에서 또 하나의 병거를 팔아서는 안 되고, 날개를 펴야 합니다. 광양사랑의교회가 지역의 외로운 이들과 흔들리는 가정들 위에 날개를 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하루 위를 맴돌며 지켜 주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흉내 낼 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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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절 심히 거역하던 그분께로 돌아오라

성령 하나님은 손으로 만든 우상을 던져 버리게 하시고, 배신하였던 그분께로 우리의 발길을 돌이키게 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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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 그 날에는 각 사람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던져 버릴 것입니다.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지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지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하고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랄 것입니다.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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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은 번역이 까다로운 구절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2인칭 복수 명령 다음에 3인칭 복수 동사를 씁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경우 '그들'을 1-2절에 나오는, 여호와를 배반한 예루살렘의 정치지도자들로 보아, 예언자가 여기서 '그들'로부터 '너희'인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고 있다고 읽습니다. 곧 위정자들이 그처럼 철저하게 배신하였던 분께로 너희는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지도자들의 실패를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그 실패가 만든 자리에서 백성이 먼저 돌아서는 일입니다.

회개의 구체적 행위로 우상의 제거가 언급됩니다.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수동적으로 물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졌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만든 것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 그것이 우상의 본질입니다. 다만 김필회 교수는 회개와 우상 제거가 해방의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신중하게 덧붙입니다. 양자 사이에는 긴밀한 내적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구원이 회개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을 알아본 사람이 우상을 손에서 놓게 되는 것입니다.

8-9절은 앗수르의 최후를 그립니다.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라"는 반복은 이 승리가 유다의 군사력이나 애굽의 개입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못 박습니다. 애굽이 신이 아니듯(3절),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오르려던 앗수르(10:8-11) 역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는 유한한 권력일 뿐입니다.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젊은이들을 강제노역에 처했던 앗수르가 이제 똑같은 운명에 떨어집니다. '그의 반석'은 앗수르 왕을 가리키는 조롱 섞인 표현입니다. 앗수르의 반석이 이스라엘의 반석에 쫓겨 도망합니다. 누가 백성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참된 반석인지가 대조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애굽에도 앗수르에도 없는 그 불이, 그들이 떠나온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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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는 부름은 언제나 늦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돌아옴에는 반드시 던져 버림이 따릅니다. 손에 우상을 쥔 채로는 돌아설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던져 버려야 할 은 우상과 금 우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대개 우리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것들, 그래서 아까운 것들입니다.

한국 교회의 지난 세월은 무언가를 만드는 데는 부지런했으나 던져 버리는 데는 인색했습니다. 성장의 방식, 성공의 문법, 서열의 감각을 우리 손으로 빚어 놓고 이제는 그것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찾던 힘은 정작 우리가 떠나온 그 자리, 예배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번 주 예배의 자리로 돌아올 때, 손에 쥔 것 하나를 내려놓고 오시기를 권합니다. 던져 버린 만큼 두 손이 비고, 빈 손만이 날개 아래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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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

우리는 오늘도 힘 있어 보이는 것을 향해 내려갔습니다.

말과 병거의 많음을 세어 보며 마음을 놓았고

주님을 앙모하는 일은 뒤로 미루었습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사람보다 지혜로우신 주님의 말씀만이

끝내 변하지 않음을 믿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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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움키신 사자처럼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

아픈 붙드심조차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하소서.

목자들의 떠듦에도 놀라지 않으시는 주님의 손에서

그 누구도 우리를 빼앗을 수 없음을 알게 하소서.

날개 치며 새끼를 덮는 새처럼

우리를 호위하시고 건지시고 뛰어넘어 구원하시는 주님,

암탉이 새끼를 모으듯 우시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도시를 덮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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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부르시는 하나님,

심히 거역하던 우리를 다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손으로 만들어 붙들고 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오늘 이 자리에서 던져 버리게 하소서.

주님의 불은 시온에 있고 주님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으니

우리가 떠나온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소서.

빈 손으로 주님의 날개 아래 들어가

광양사랑의교회가 이 땅의 지친 이들을 덮는

작은 날개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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