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사야 27:2-13 밤새 켜 둔 등불

*

온전한 신앙이란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을 그만두고, 나를 지키시는 분의 밤을 신뢰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낮의 볕은 아직 사납지만 저녁 여덟 시가 지나면 마당의 공기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매미 소리가 잦아든 자리에 풀벌레 소리가 들어섰고, 그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더 촘촘해집니다. 이맘때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과수원 한켠에 불빛 하나가 켜져 있는 것을 봅니다. 열매가 익어 가는 철이라 밤새 지키는 것입니다. 짐승도 오고 사람도 오고, 무엇보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가 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 뭉클해집니다. 저 안에 누군가 깨어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 여름을 견뎌 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자리에서 홀로 버텨 온 분들, 애쓴 만큼 여물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시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 본문은 노래로 시작합니다.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사 27:2). 그런데 노래를 부르라 하시고는, 정작 노래를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사 27:3). 저는 이 구절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주인의 자리가 아닙니다. 삯을 받고 밤을 새우는 사람의 자리, 원두막에 등불을 켜 놓고 새벽까지 앉아 있는 사람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의 주인 되신 분이 그 자리로 내려오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말은 잠깐 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등불은 어젯밤에도 켜져 있었고 오늘 밤에도 켜질 것입니다.

.

이 노래를 제대로 들으려면 다른 노래 하나를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 5장의 포도원 노래입니다.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드시고 돌을 골라내고 망대를 세우셨는데 들포도가 맺혔고, 상심한 주인은 울타리를 걷어 짓밟히게 하겠다고, 구름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노래를 아는 사람에게 오늘의 노래는 충격입니다. 울타리를 걷으셨던 분이 밤낮으로 간수하시겠다 하시고, 비를 그치게 하셨던 분이 때때로 물을 주시겠다 하십니다. 심판의 문장이 하나하나 뒤집혀 은혜의 문장이 됩니다. 이사야 24장에서 27장까지를 학자들은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부르는데, 온 땅이 흔들리고 바다의 용이 벌을 받는 그 거대한 이야기의 끝자리에 놓인 것이 고작 포도밭 하나를 밤새 지키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저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은 늘 작은 돌봄의 모습으로 옵니다.

.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사 27:4). 찔레와 가시는 포도원을 망치는 것들입니다. 뽑아 던지면 그만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문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 한 절 안에서 화친하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히브리말로 하면 '나와 함께 샬롬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찌르는 것을 향해 찔린 분이 먼저 평화를 제안하시는 것, 이것이 복음의 순서입니다. 훗날 가시나무는 정말로 한 사람의 머리 위에 얹혔고, 사도는 그 일을 두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골 1:20)라고 적었습니다. 대적하던 자가 화친의 자리로 들어오는 길은 그 밤에 열렸습니다.

.

그러나 이 노래가 고통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7절부터 예언자는 아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사 27:7).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치신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매와, 그들을 친 나라들이 끝내 받은 매는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8절에 제 눈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여기 '적당하게'라는 말은 대충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말은 되로 곡식을 되질하듯 정확히 헤아려 재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에 못 이겨 손을 드시는 분이 아니라, 이만큼이면 부러지지 않겠다고 눈금을 재신 뒤에 매를 드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라고 고백한 것이 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

그 견책이 무엇을 남겼는지 9절이 말해 줍니다. 제단의 돌이 부서지고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은 그 시간에 함께 무너진 것이 우상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기를 지난 뒤 다시는 조직적인 우상숭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잃은 것은 땅이었고 얻은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영혼의 모든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물질의 중력과 똑같은 법칙에 지배되며, 오직 은총만이 그 예외라고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내버려 두면 언제나 아래로, 자기 쪽으로, 붙들고 쌓는 쪽으로 굴러갑니다. 그 굴러감을 멈추는 힘은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밖에서 와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서 무언가를 덜어 내실 때, 그것은 우리를 가난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중력을 끊으시려는 것입니다. 주인이 포도원지기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도 중력의 운동이 아니라 은총의 운동이었습니다.

.

10절과 11절은 이 노래에서 가장 어두운 대목입니다. 견고했던 성읍이 적막해지고 송아지가 그 안에 누워 나뭇가지를 뜯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사 27:11). 지각이 없다는 말은 무식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지식이 넉넉해도, 교회에 다닌 세월이 길어도 지각을 잃을 수 있습니다. 지각이란 내가 지음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감각입니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한다던 이사야의 첫 탄식이 여기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 무거운 문장이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을 보십시오. '그들을 지으신 이', '그들을 조성하신 이'입니다. 돌아서시는 순간에도 굳이 창조주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십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신 예수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고 물으시던 그 음성 말입니다.

.

그러나 노래의 마지막 두 절이 모든 어둠을 걷어 냅니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사 27:12). 유브라데 강에서 애굽 국경까지, 사람이 흩어질 수 있는 가장 먼 두 끝을 다 훑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하나하나'입니다. 큰 손으로 쓸어 담는 수확이 아니라 이삭 하나까지 허리를 굽혀 줍는 수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큰 나팔이 울리고,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옵니다. 앗수르와 애굽은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던 곳이자 가장 부끄럽게 기웃거리던 곳입니다. 가장 멀리 떠내려간 자리가 하나님께는 돌아오는 길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들이 하는 일은 나라를 세우는 것도 성벽을 쌓는 것도 아닌 예배였습니다. 심판으로 시작한 네 장의 긴 이야기가 무릎 꿇는 자리에서 끝납니다.

.

그러니 오늘 우리가 배울 것은 지키는 법이 아니라 지킴을 받는 법입니다. 우리 시대는 자기를 지키는 기술을 끝없이 가르칩니다. 더 촘촘한 계획, 더 두꺼운 보험, 더 단단한 방어를 권합니다. 그런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삶 전체가 경비 근무처럼 되어 버립니다. 잠들면 무너질까 봐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등불 하나를 보여 줍니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켜져 있던 불빛입니다. 저녁에 눈을 감으면서 오늘 하루의 남은 걱정을 그 등불 아래 두고 자는 연습, 그것이 신앙일 것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이 매일 아침 성경을 펴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묵상은 하루를 내 힘으로 붙드는 기술이 아니라, 밤새 나를 간수하신 분 앞에 나를 다시 데려다 놓는 일입니다.

.

한 가지만 더 나누고 싶습니다. 이 등불은 지키기만 하는 불이 아니라 부르는 불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두운 들길을 걷는 사람에게 멀리 보이는 과수원의 불빛은 방향입니다. 저기 사람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입에 큰 나팔을 맡기셨다는 것은, 우리 삶이 누군가에게 그런 불빛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앗수르 쪽으로 밀려간 사람도 있고 애굽 쪽으로 내려간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된 이름, 소식이 끊긴 이름, 이제는 기도 수첩에서도 지워진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하나를 여전히 이삭 줍듯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포기한 이름을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그 이름 하나를 다시 적어 넣는 것으로 이 묵상을 마치면 좋겠습니다.

.

며칠 뒤면 처서입니다. 이 지독한 볕도 결국 물러갈 것이고, 과수원의 열매는 조금씩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밤마다 원두막의 등불은 여전히 켜져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홀로 견디고 계신 분들, 나를 지키는 일이 너무 무거워 지쳐 버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짐을 조금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포도원지기는 깨어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 등불 아래에서 편히 잠들고, 아침마다 새로 물을 받아 마시며, 언젠가 그 큰 나팔 소리에 응답하여 함께 성산으로 올라가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평화의길벗_라종렬

.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cP9jreoV4m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0 이사야 36:1-22 침묵이라는 성벽 new 평화의길벗 2026.08.26 1
349 이사야 35:1-10 사막이 감춘 우물 평화의길벗 2026.08.25 3
348 이사야 34:1-17 폐허에 깃든 짝 평화의길벗 2026.08.24 10
347 이사야 33:1-24 다시는 뽑지 않을 말뚝 평화의길벗 2026.08.23 8
346 이사야 32:1-20 광야가 밭이 되기까지 평화의길벗 2026.08.22 16
345 이사야 31:1-9 날개 아래로 돌아오는 길 평화의길벗 2026.08.21 12
344 이사야 31:1-9 날개 아래로 돌아오는 길 평화의길벗 2026.08.21 20
343 이사야 30:18-33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평화의길벗 2026.08.20 21
342 이사야 30:1-17 멈추어 서는 힘 평화의길벗 2026.08.19 23
341 이사야 29:15-24 그 손을 알아보는 날 평화의길벗 2026.08.18 25
340 이사야 29:1-14 꿈에 먹은 빵 평화의길벗 2026.08.17 31
339 이사야 28:14-29 밭을 고르시는 손 평화의길벗 2026.08.16 30
338 이사야 28:1-13 숨을 돌리는 자리 평화의길벗 2026.08.15 32
» 이사야 27:2-13 밤새 켜 둔 등불 평화의길벗 2026.08.14 51
336 이사야 26:1-27:1 밤에 맺히는 이슬 평화의길벗 2026.08.13 43
335 이사야 25:1-12 가리시는 손, 걷으시는 손 평화의길벗 2026.08.12 30
334 이사야 24:14-23 해가 부끄러워지는 아침 평화의길벗 2026.08.11 29
333 이사야 24:1-13 가지 끝에 남은 것 평화의길벗 2026.08.10 32
332 이사야 23:1-18 칠십 년 뒤의 항구 평화의길벗 2026.08.09 50
331 이사야 22:1-25 못에 걸린 것들 평화의길벗 2026.08.08 2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