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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2:1-7 고독 속에서 찾은 영원한 피난처 : 여호와 앞에 토하는 호소와 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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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2편은 다윗이 극한의 고난과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개인 탄원시입니다. 그는 소리 내어 자신의 원통함과 우환을 하나님께 쏟아놓으며, 자신의 심령이 상하고 주변에 아무도 돕는 이가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현실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절망하지 않고, 여호와만이 자신의 유일한 피난처이며 생존 세계의 분깃(몫)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심히 비천하지만, 강한 원수들에게서 건져내실 것을 간절히 간구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후대(厚待)하심으로 의인들과 함께 주의 이름을 찬양할 날이 올 것을 확신하며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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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 : 이 시는 표제에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사울 왕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아둘람 굴(삼상 22:1,2)이나 엔게디 굴(삼상 24:1-3)에 숨어 있던 시기로 추정됩니다. 이 당시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는 자가 없는 극도의 고립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편을 살펴본다'는 표현은 고대 법정에서 보호자나 변호자가 서는 위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시인이 의지할 인간적인 조력자가 전혀 없었음을 강조합니다.

# 신학적 및 정경적 배경 :시편 142편은 다윗의 시(138-145편 모음집) 중 하나이며, 특히 140편부터 142편까지 이어지는 비탄시(Lament Psalm) 그룹의 마지막 시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고난과 간구가 점차 절정으로 치닫는 흐름 속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본 시는 '마스길(Maschil)'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교훈시' 또는 '지혜시'를 의미하며,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해결책임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인간의 무력함과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와 분깃이 되시며, 결국 의인에게는 구원과 보상을 주실 것(후대하심)이라는 신뢰가 중심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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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여호와께 토하는 격정적인 탄원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내밀한 원통함과 우환까지 경청하고 응답하시는 인격적인 주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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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라고 두 동사를 사용해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반복적으로 표현합니다. 이어서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라고 밝히며, 자신의 격정과 고통을 숨김없이 쏟아냅니다. 특히 '원통함'(시히)과 '우환'(차라티)이라는 단어들을 문장의 중심에 배치하여, 현재 자신이 겪는 억울한 상황과 고통스러운 심정이 기도의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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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으로 이 구절은 동의 대구법(동일한 의미의 반복)과 교차 대구법(중심 내용 강조)이 사용되어, 시인이 처한 상황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극대화합니다. '부르짖다'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도움을 청하며 지속적으로 외치는 행위를 뜻하고, '간구하는도다'는 호의를 구하며 간절히 부탁하는 재귀형 동사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을 간절히 바라는 심경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처럼 자신의 고통을 '토하며 진술'하는 행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전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불평이라기보다는, 마치 환자가 의사에게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듯, 자신의 모든 사정을 숨김없이 고백함으로써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치유와 회복을 베푸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자신의 감춰진 '원통함'과 '우환'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쏟아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을 흉보시는 분이 아니라, 고치고 채우시는 인격적인 주인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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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고난 앞에서 분노하거나 침묵하며 상황을 회피하려 하지만, 시인처럼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는 모든 고통(우환)과 억울함(원통함)을 기도의 재료로 삼아 하나님께 '쏟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문제 해결의 수단이 아니라, 그분 자체가 문제 해결임을 인식하고, 감정적인 억압이 아닌 인격적인 토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나 억압받는 자들의 '원통함'과 '탄식'의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소리는 단순한 불평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로운 개입을 요청하는 절규이며, 교회가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이 약자를 돌보시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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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절 고립무원 속에서 주권을 인정하는 신뢰

하나님은 심령이 상하고 절망에 빠진 순간에도 우리의 모든 길을 아시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전지하신 보호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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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라고 고백한 뒤, 원수들이 자신이 다니는 길에 올무를 숨겼음을 고발합니다. 이어서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자신을 아는 이도 없고, 피난처도 없으며,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는 이도 없다고 절망적으로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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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쇠약해지다, 압도당하다)는 시인의 심리가 절망에 압도되어 활력과 의지마저 상실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시인은 '주께서'라는 인칭 대명사를 강조하여 자신의 길을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확신합니다. '안다'는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경험을 통해 그 본질까지 속속들이 아는 인격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시인의 과거 행적뿐 아니라 그의 앞날의 운명까지도 알고 계시며, 혼란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원수들이 놓은 '올무'는 시인의 일상적인 삶의 행보를 전복시키고 죄악의 길로 유혹하려는 간악한 음모를 상징합니다.

'오른쪽을 살펴보소서'는 자신을 도와줄 구원자를 찾지만 아무도 없음을 호소하는 것으로, 극한 고독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는 다윗의 간곡함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이 고독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강렬하게 인식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길은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이 고립무원 속에서도 우리를 아시고 인도하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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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감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돌보심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가장 비천한' 존재로 느껴지거나 외로움과 고독에 빠졌을 때, 나의 불안을 해소할 유일한 근거는 나의 모든 길과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있습니다. 악인들의 음모와 유혹(죄악의 길)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피할 길)을 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간의 유한한 이성과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에 계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Coram Deo)의 자세야말로, 존재의 허무함(헛것, 그림자)을 느끼는 인간 실존이 취해야 할 유일한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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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절 절대적인 피난처와 분깃 되심의 고백

하나님은 생존 세계에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요, 분깃이시며, 우리의 비천함과 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자비의 근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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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라고 과거의 신앙 고백을 회고합니다. 이어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라고 자신의 무력함과 대적의 강함을 대조하며 구원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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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나의 피난처시요'는 하나님이 그의 모든 근심과 고난의 현장에 함께 계신다는 친밀한 관계성을 나타내며,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라는 고백은 하나님만이 시인의 생명의 근원이며, 그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소유(기업)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레위 자손이 땅의 기업 없이 하나님을 분깃으로 삼았던 사상에 기초하며, 극한 고독 속에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겠다는 결단입니다.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는 자신의 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하는 겸손의 고백이며, 이 고백은 핍박하는 자들('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의 강함과 대비되어,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명확히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약함을 보시고 자비(긍휼)를 베푸실 유일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며 간구합니다. '들으소서'는 강세 명령형으로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간곡한 호소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흙과 같이 미천한 존재이기에, 하나님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도는 나의 비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와 영원한 분깃으로 삼는 '하나님 의뢰의 신앙'을 견지할 때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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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적인 성공이나 물질을 '소망'으로 착각하는 대신, 하나님을 유일한 '분깃'으로 삼는 삶의 가치관을 확립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과 무능함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인자하심)를 체험할 수 있는 통로임을 기억하고, 절박한 순간에 나의 상태를 그대로 아뢰며 자비를 간구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만이 만세 반석 되시어 환난 날에 우리를 보호하실 피난처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비천한 자'와 '억눌린 자'로 여겨지는 이들(고아, 과부, 나그네 등 사회적 약자)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긍휼)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들을 돌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공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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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절 구원과 영광을 통한 희망의 확신

하나님은 우리를 속박의 옥에서 이끌어 내시어 후대하심으로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시는 구원자이시며 보상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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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인이 나를 두르리이다'라는 확신을 선언하며 시를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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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서 이끌어 내사'에서 '옥'은 다윗이 갇힌 듯이 도망 다니던 절망적인 상황의 비유이며, '이끌어 내사'는 하나님께서 그 속박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입니다. 이 해방은 단순히 고통의 제거를 넘어섭니다.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는 구원의 목적을 나타냅니다. 즉 구원받는 이유가 자신의 영예가 아닌, 여호와의 거룩하신 속성(이름)에 감사하며 찬양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는 구원받은 자에게 부여된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는 하나님께서 과거의 고난에 대해 보상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고난을 견딘 힘은 현재의 고난에 비할 수 없는 보상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의인이 나를 두르리로다'는 현재 홀로 도피 중이지만, 미래에 구원의 확신으로 인해 의인들이 모여들어(둘러싸다/관을 씌우다) 승리를 축하할 것, 즉 찬양과 교제의 공동체에 재합류하게 될 희망을 선언합니다.

이 확신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는 바울의 선포와 일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는 해방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보응 대신 긍휼과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우리가 영원한 영광에 참예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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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난의 순간에 '옥에 갇힌' 절망감에 사로잡힐 수 있지만, 우리의 구원과 해방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보상(후대하심)을 확신하며 인내해야 할 믿음의 연단임을 깨닫고, 승리의 날에 의인들과 함께 주를 찬양할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는 해방의 복음을 사회에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고난 속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증거하는 '의인의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찬양은 억눌린 자들이 해방되고, 악인들이 심판받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에 대한 확신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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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전지(全知)하신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가 극심한 고독과 절망의 굴(窟)에 갇혀 있을 때에도, 

저희의 모든 길과 심령의 상함을 아시고, 

저희를 버리지 않으신 인격적인 보호자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는 스스로의 힘이 미약하여 

강포한 원수들 앞에서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저희의 비천함을 긍휼히 여기사 파멸의 옥에서 이끌어 내 주시고, 

생존 세계에서 당신만이 저희의 유일한 분깃(몫)이 되어 주소서.

우리가 죄악을 행한 대로 심판하시면, 그 앞에 설 자가 없겠으나,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후대(厚待)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환난이 장차 올 영광과 보상에 비할 수 없음을 확신하며,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는 의인들의 공동체 안에서 

영원히 당신의 이름에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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