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1-22 우리의 긴 반역, 하나님의 끈질긴 은총
우리의 긴 반역의 역사 속에서 더욱 빛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헤세드를 거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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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경 느헤미야 9장의 기록은 마치 회개와 감사의 ‘서사시'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달은 후(9:1-3),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뒤집어쓴 채(9:1) 금식하며 서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굴러왔는지를 묵상합니다. 이 거룩한 집회는 단지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말씀을 거울 삼아 자기 속에 깃든 죄의 그림자와 마주하는 격렬한 성찰의 시간입니다. 진정한 성찰은 '나'를 내가 있던 내 등 뒤에서 떼쳐서 바로 내 얼굴 앞에 세워 놓는 경험입니다.
느헤미야 9장 6절부터 시작되는 레위인들의 긴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탄과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가없이 넓은 저 하늘과 해와 달과 별들이 모두 주님의 숨결 안에서 존속되고 있음을 노래하며,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것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살피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9:6, 3, 7).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을 때, 인간은 비로소 삶을 엄숙하게 대면하는 경외심(敬畏心)을 회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토록 위대하신 하나님께 대한 경탄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의 완악함(頑惡)의 반복 드라마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9:7), 애굽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물과 율법이라는 생존의 모든 조건을 제공하셨습니다(9:9-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목이 뻣뻣해져"(9:17) 하나님이 주신 길을 떠나, 오히려 스스로 지도자를 세워 다시 종살이하던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9:17). 이는 마치 익숙한 안락함이라는 거짓 자아의 울타리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인간의 강력한 욕망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불확실하지만 생명을 향한 새로운 길 대신, 예측 가능한 노예 상태를 택하려 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면서도, 사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과 눈앞의 욕망 때문에 거듭하여 넘어집니다. 때로는 세상의 고통을 보며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회의(懷疑)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서의 이 긴 고백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감동적인 메시지는, 우리 쪽의 끈질긴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 쪽의 끈질긴 인애(仁愛)입니다. 백성들이 돌아섰을 때에도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애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9:17).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그 시점에도, 약속된 사랑(헤세드)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만약 스스로의 힘이나 경건한 행위로 구원을 얻어야 했다면, 우리는 벌써 절망의 심연 속에서 난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은 우리가 가진 '힘'이나 '지혜'나 '재산'이라는 전리품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힘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동력은, 우리의 약함과 실패를 아시면서도, 우리를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자리로 끊임없이 초대하시는 그 은총의 능력을 확신하는 데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영원한 빛"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흙을 다루듯, 우리의 누추한 삶까지도 당신의 구원 이야기의 일부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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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9:1-22 기억과 고백의 자리에서
느헤미야 9장의 고백을 마주하며, 저는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 기억의 더께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기억의 층위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떤 기억은 우리의 뼈에 사무치고, 어떤 기억은 안개처럼 흩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죄를 자복했던 것처럼,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들도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심연에서 길어 올린 참회의 눈물이며, 잊혔던 기억을 되살려내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역사(役事)를 기억해 냄으로써,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를 뼈저리게 자각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쩌면 ‘기억하는 싸움’ 인지도 모릅니다. 분주한 일상에 떠밀려 살아가느라, 혹은 눈앞의 이익과 안락함에 눈이 멀어,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순간들은 망각의 강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당장의 결핍과 고난에만 눈길을 주며 투덜거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9장의 백성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낱낱이 기억해 냈습니다. 그 기억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패역함과 하나님의 한결같은 자비하심을 동시에 보았습니다.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느 9:17). 이 고백이야말로 그들이 고난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기억의 회복’입니다. 팍팍한 현실에 치여 마음이 강퍅해질 때마다,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서 지나온 삶의 자취를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려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벼랑 끝에 선 듯 위태로웠던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를 붙들고 계셨음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날 때, 우리는 비로소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감사는 저절로 우러나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지적으로 캐내어야 할 보화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억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울 때, 우리 삶은 비로소 안온해지고 단단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기억의 힘으로 척박한 세상에 생명의 물길을 내는 복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아니, 우리가 잊고 지내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에 기대어, 오늘도 한 걸음 더 주님께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