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3:16-24:16 기억되는 삶의 향기
한 사람의 삶은 그가 떠난 자리에 남기는 향기로 기억되며, 신실한 삶의 동행은 시들지 않는 생명의 기억으로 우리를 지탱합니다.
시간의 향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병철 교수가 그의 책에서 길게 사유했듯, 점처럼 흩어지는 분주한 시간은 향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깊이를 더하며 숙성된 시간은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를 품습니다. 누군가를 기억할 때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그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에게서 풍겨 나오던 특유의 향취입니다. 그것은 인품의 향기일 수도 있고, 영혼의 향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 향기는 우리 삶의 길 위에서 문득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혹은 속절없이 흔들릴 때 우리를 붙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역대하의 기자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의 향기를 증언합니다. 한 사람은 대제사장 여호야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왕 요아스입니다. 칠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성전에서 자라나야 했던 어린 왕 요아스에게 여호야다는 단순한 스승이나 후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린 왕을 품어주는 거대한 그늘이었고, 그의 연약한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그의 선함은 여호야다라는 거목에 기대어 피어난 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호야다라는 사람을 통해 어린 왕의 삶에 흘러들었던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백성들과 더불어 언약을 갱신하여 우상의 흔적을 지우고 허물어진 성전을 보수하며 무너진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늙도록 식지 않는 그의 열정은 한 시대를 새롭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의 삶을 "하나님과 그의 성전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그의 나이 백삼십 세. 그는 왕이 아니었음에도 왕들의 묘실에 묻히는 영예를 얻습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한평생 진실하게 피워 올린 삶의 향기가 그를 가장 영예로운 자리에 앉힌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소란한 평가를 넘어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지극한 상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향기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그늘이 사라지자 요아스의 삶은 속절없이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피가 성전 뜰에 낭자하게 흐르고, 아람 군대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애처롭습니다. 그의 선함은 자기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에게서 빌려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믿음은 자기 발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기에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기댐이 우리를 안주하게 만들 때, 우리는 자기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스스로 길이 되신 주님을 따라나서기보다, 세상이 정해준 안온한 길에 머물기를 택할 때, 우리 영혼은 시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떤 향기로 기억될까요? 우리의 떠남은 누군가의 가슴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요?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여호야다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시인 정진규 선생의 노래처럼, "지금 나 한 사날 잘 열리고 있어 누구나 오셔, 아름답게 놀다 가셔!"라고 말하며 기꺼이 우리 삶의 한 자리를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요아스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라는 그늘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 영혼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를 지탱해주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접속되어야 합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여호야다를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가 떠난 빈자리에서 다시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야말로 결코 시들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 향기 속에 머무는 이들은 고단한 세상길에서도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의길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