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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11-24 멈춰 선 망치, 숨 쉬는 쉼표

왜곡된 말의 폭력은 거룩한 열망을 멈춰 세우지만, 그 강제된 쉼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야기는 '...까지'라는 은혜의 숨을 쉬며 다음 장을 예비하신다.

*

말은 사람의 집입니다. 우리는 말로써 세계를 짓고, 관계를 세우고, 꿈을 나눕니다. 그러나 때로 그 말은 가장 잔혹한 무기가 되어, 존재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거룩한 열망의 심장을 꿰뚫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말의 전쟁터이기도 했습니다.

에스라 4장은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의 성전 재건이라는 거룩한 열망이, 어떻게 교묘하게 벼려진 '말'에 의해 좌초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대적들은 이제 방해의 손길을 넘어, '상소'(11절)라는 이름의 글을 씁니다. 그들의 글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가장 합리적이고 충성스러워 보이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패역하고 악한 성읍"(12절)이라 규정합니다.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 '반역의 도시'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그리고 왕의 재정적 손실(13절)을 염려하는 충신의 얼굴로 "우리가 이제 왕의 소금을 먹으므로"(14절)라며 자신들의 동기를 포장합니다. 심지어 "왕의 조상들의 사기(史記)"(15절)라는 객관적 기록과 역사를 증거로 내밉니다.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고발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실의 조각들을 모아 거대한 거짓을 빚어내는 것, 그것이 악의 오랜 전략입니다.

이 교묘한 말의 그물에, 세상의 권력(아닥사스다 왕)은 속절없이 걸려듭니다. 기록은 확인되었고(19절), 조서는 내려졌습니다(21절).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대적들은 "급히 예루살렘으로 가서... 권력과 세력으로 억제하여"(23절) 그 공사를 중단시킵니다. 거룩한 열망으로 뜨거웠던 손, 성전의 기초를 놓으며 환호했던 그 손에 들려있던 망치와 연장들이 힘없이 땅에 떨어집니다. 성전 공사는 멈춰 섰습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는 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춰 섭니다. 선한 의지가 악한 말에 의해 꺾이는 이 부조리 앞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묻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현장에서, 진실을 말하다 고립되고, 거룩한 꿈을 꾸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때, 저들과 같은 무력감에 빠집니다. 우리의 열심, 우리의 헌신이 무력하게 중단될 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고단한 삶의 길벗 여러분. 성경은 우리의 실패를 기록하는 책이 아니라,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24절은 이 절망적인 이야기의 끝처럼 보입니다.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중단되니라." 이것이 마침표(.)라면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하지만 성경은 이 문장을 마침표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 뒤에 희미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24절). '...까지'(until). 이 짧은 단어야말로, 멈춰 선 역사 속에 숨 쉬는 하나님의 쉼표(,)입니다. 중단은 영원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잠시 멈춤'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의 조서가 하나님의 계획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일이 중단 없이 성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이 무력하게 멈춰 서고, 우리의 손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도, 여전히 당신의 때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한 손을 탓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멈춰 선 시간, 그 강제된 안식 속에서 우리가 더 깊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희망은 쉼 없이 두드리는 우리의 망치 소리가 아니라, 모든 소리가 멎은 그 순간에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에스라 4:11-24 권력의 붓으로 기록된 거짓의 벽 앞에서

권력의 붓으로 기록된 거짓의 벽 앞에서, 하나님의 재건은 멈춤이라는 연단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빚어내시는 은총의 서사입니다.

*

우리는 지금 내달리는 시간(점-시간) 속에서 삶의 중심을 잃고 허청거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익숙한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돈의 지배 아래서 소유나 지위로 자기 존재를 환원하려는 세상의 논리는, 우리에게 성찰(省察)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신앙에 회의(懷疑)를 느끼거나 삶의 모호한 현실 앞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해야 함의 강조가 아니라, 흔들리는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입니다.

구약성경 에스라 4:11-24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이 허청거리는 재건의 현장에서 마주한 제국의 엄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유다의 대적들은 유다 백성들을 상대로 한 고발장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립니다(11절). 이 고발장의 내용은 교묘하고 악의적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읍이 예로부터 반역하는 성읍이었고 (12,15절), 이 성읍이 재건되면 왕에게 공과 세를 바치지 않고 결국 왕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13,16절).

이것은 단순히 이웃 간의 다툼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치적 술수조직적인 모함이 진실을 압도하는 제국의 맨 얼굴입니다. 그들이 작성한 고발장(‘글’ 곧 텍스트)은 그들의 탐욕과 편견을 공적인 문서로 위장하여 악을 시스템적으로 수행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들의 말은 진실한 말이 아니라, 타자들을 배척하고 심지어 죽이는 말이었습니다.

왕은 이 고발장을 진지하게 조사했고, 옛 기록에서 예루살렘이 반역을 일삼던 성읍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15,19절). 역사란 강자들의 기록이기 마련입니다. 과거의 오점은 현재의 진실을 가리는 족쇄가 됩니다. 결국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내려 공사를 강력하게 멈추라고 명령합니다(21절). 이에 고발자들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권력과 강제로 공사를 멈추게 했습니다(23-24절).

여기서 우리는 재건의 꿈이 좌절되는 아픔을 목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열망은 강제적인 멈춤이라는 벽 앞에 부딪히고, 백성들은 무력감(無力感)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들이 열심히 쌓으려 했던 것은 무너졌고, 그들의 연약한 손은 힘을 잃었습니다. 마치 성숙한 신앙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들이 분주한 욕망세상의 안전 논리에 의해 영적인 게으름의 올무에 겪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강제된 멈춤이야말로 우리에게 은총의 깊이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좌절하고 낙심할 때, 그리고 세상의 권력 앞에서 굴종해야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긍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며(요 21:10) 우리가 가진 작고 보잘것없는 것조차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강력한 약속을 주십니다.

진정한 신앙은 지성의 희생이 아니며, 사심 없이 함께 어울리며 생명과 평화의 태피스트리를 짜는 덜의 삶을 통해 완성됩니다. 재건의 공사가 강제로 멈추었을 때, 백성들은 외적인 성취 대신 내면의 성찰을 통해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갈망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완벽한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는 변함없는 신뢰에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뜻과 노력이 세상의 파시스트적인 변화 속도정치적 음모 앞에서 무력하게 꺾일지라도,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영원한 소망을 발견합니다. 마치 겨울의 추위가 지나가야 탱자에 향기가 깃들듯, 우리의 시련과 멈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시는 연금술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재건의 멈춤 앞에서 불안해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치 파도가 밀려나간 후 해변에 남겨진 조개껍데기처럼, 헛된 욕망과 조바심을 덜어낸 우리 연약한 존재 자체를 귀히 여기십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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