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에스라 4:1-13 낯선 손길, 흔들리는 손

거룩한 삶의 재건은, '우리도 너희와 같다'고 속삭이는 세상의 낯선 손길을 분별하며, 그로 인해 약해진 우리의 손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는 여정이다.

*

긴 유배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가슴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려는 열망으로 뜨거웠습니다. 삶이란 어쩌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폐허 속에서 거룩한 집을 짓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역시 저마다의 삶의 유배지에서 돌아와, 무너진 일상과 관계, 그리고 깨어진 영혼의 성전을 재건하려는 순례자들입니다.

에스라 4장은 그 거룩한 재건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기초가 놓이자마자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찾아옵니다(1절). 그런데 그들은 칼과 창을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매혹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환대'의 얼굴로 다가옵니다.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2절). 얼마나 달콤한 제안입니까? '우리도 같다'는 말처럼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말이 또 있을까요? 함께 힘을 합치면 일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이것은 효율성의 논리이자, 타협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지도자들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너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3절). 그들은 저 '같음'이라는 유혹 속에 숨겨진 미묘한 '다름'을 봅니다. 그들은 앗수르 왕에 의해 이주되어 온갖 우상과 두려움을 뒤섞어 하나님을 섬기던 이들(왕하 17:33)이었습니다. 뿌리가 다른 신앙, 본질이 흐려진 예배였습니다. 거룩한 집은 순전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했습니다.

이 거절의 대가는 즉각적이고 혹독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4절),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습니다(5절). 주목해야 할 것은 '손을 약하게 하여'라는 표현입니다. 순전함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손을 '약하게' 만들고 '낙담'시켰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입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은 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묻습니다. "그렇게 순수함을 지키려 애쓴 결과가 고작 고립과 좌절, 그리고 약함뿐인가?" 우리 역시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세상의 '적당한' 타협을 거부할 때, 홀로 남겨진 듯한 두려움과 무력감에 휩싸이곤 합니다. 우리의 손이 약해지고, 하던 일이 멈춰 설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는 길 위의 벗들이여여. 성경은 우리의 강함을 찬양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그들의 손은 약해졌지만, 그래서 그들의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하나님의 계획마저 중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강인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흔들리는 손을 붙잡아 당신의 집을 지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강한 체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지만 진실하게 그분의 은혜를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약해질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강하심이 임하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우리의 굳센 손이 아니라, 우리의 약한 손을 결코 놓지 않으시는 그분의 크고 따뜻한 손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에스라 4:1-10 ‘함께 짓자’는 유혹과 묵은 땅의 저항

세상의 유혹적인 타협과 끈질긴 방해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붙들어 재건을 이끄시는 끈질긴 사랑으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

우리는 지금 내달리는 시간 속에서 삶의 중심을 잃고 허청거리는 이들을 자주 만납니다. 성찰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고, 오직 욕망이라는 잔뿌리에 의지해 삶을 지탱하려 하지만, 그 길은 위태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익숙한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돈의 지배 아래서 소유나 지위로 자기 존재를 치환하려는 세상의 논리는 신앙의 여정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구약성경 에스라 4:1-10은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의 무너진 터 위에 새 삶을 일구려 했던 이들이 마주한 근원적인 시험을 보여줍니다. 성전 건축의 기초를 놓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등장합니다[에스라 4:1]. 이들은 노골적인 공격자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도 너희와 함께 짓게 하라"고 제안하며 다가섭니다[에스라 4:2].

이것이야말로 신앙 공동체가 마주하는 가장 교묘하고 위험한 유혹입니다. 재건을 가로막는 힘은 순교를 강요하는 폭력만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을 하나로 섞어버리려는 타협의 달콤함에서도 비롯됩니다. 이 대적들은 “바벨론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데려온 때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말하지만[에스라 4:2], 그들의 신앙은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기 욕망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려는 혼합주의였고, 이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가르는 경계선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였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건축하는 일에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에스라 4:3]. 이 거절은 편협한 배타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헤세드)를 수호하려는 견결한 용기였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독립은 이처럼 타인의 비위를 맞추거나 혹은 값싼 은혜에 기대지 않고, 자기의 직무를 감당하는 데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덜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지도자들의 거절 이후, 대적들의 방해는 오래고 끈질긴 시련으로 변모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손을 약하게 하여 건축을 막았고[에스라 4:4], 심지어 고레스와 다리오 왕 시대까지 뇌물을 주어 공사를 지연시킵니다[에스라 4:5]. 이들은 고발장을 써서 왕에게 제출하는 지적인 오만함정치적 술수를 사용하는데[에스라 4:6-10], 이는 마치 권력의 눈치를 보며 불의한 현실을 시스템적으로 은폐하려는 제국의 맨 얼굴과 같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벼랑 끝에서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여,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재건의 여정 역시 방해와 지연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원망처럼,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고 우리의 나약함에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의 이 고난의 기록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연약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입니다. 우리의 손이 약해질 때[에스라 4:4],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강력한 약속을 주십니다. 재건의 속도가 늦어지고 세상의 조롱이 끊이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을 잃지 않고, 진리를 굳게 잡는(집중, 執中) 한 걸음을 꾸준히 내디딜 때, 그 위태로움 속에서 비로소 아슬아슬하지만 확실한 희망이 피어납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미소가 딱딱한 세파의 얼음을 깨듯, 우리의 작은 신실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자리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에스라 4:1-13 낯선 손길, 흔들리는 손 new 평화의길벗 2025.11.03 0
64 에스라 3:1-13 폐허 위에 울려 퍼진 노래 평화의길벗 2025.11.02 2
63 에스라 2:1-17 이름, 그 거룩한 기억 평화의길벗 2025.11.02 2
62 에스라 1:01-11 잠든 영혼을 깨우시는 손길 평화의길벗 2025.11.01 0
61 역사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은총의 파편 평화의길벗 2025.10.31 0
60 역대하 35:20-27 므깃도의 바람 소리 평화의길벗 2025.10.30 0
59 역대하 35:01-19 질서 속에 깃든 환희 평화의길벗 2025.10.28 1
58 역대하 34:14-33 잊혀진 책, 깨어나는 영혼 평화의길벗 2025.10.27 1
57 역대하 34:1-13 폐허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평화의길벗 2025.10.27 4
56 역대하 33:1-25 가장 낮은 곳, 은혜가 머무는 자리 평화의길벗 2025.10.26 2
55 역대하 32:1-23 포위된 성, 열린 하늘 평화의길벗 2025.10.24 2
54 역대하 31:1-21 은혜가 쌓인 자리 평화의길벗 2025.10.22 3
53 역대하 30:13-27 부족함 위에 임하는 기쁨 평화의길벗 2025.10.22 2
52 역대하 30:1-12 온 백성의 찬양과 기쁨 평화의길벗 2025.10.21 2
51 역대하 29:20-36 온 백성의 찬양과 기쁨 평화의길벗 2025.10.19 3
50 역대하 29:01-19 성결의 길 평화의길벗 2025.10.18 4
49 역대하 26:16-27 길 잃은 시대의 자화상 평화의길벗 2025.10.17 4
48 역대하 25:1-13 말씀을 따르는 용기 평화의길벗 2025.10.14 3
47 역대하 23:16-24:16 기억되는 삶의 향기 평화의길벗 2025.10.11 3
46 역대하 23:01-15 틈을 만드는 사람들 평화의길벗 2025.10.11 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