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0:01-19 오직 주만 바라볼 때, 승리를 보게 하시는 싸움의 용사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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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암몬, 그리고 마온(또는 세일 산) 자손들로 구성된 큰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여호사밧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하나님께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 새 뜰 앞에 모여 간구할 때,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통치하시며,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는 과거 솔로몬이 봉헌 기도 때 받은 약속을 상기시키며, 유다에게는 이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이 전혀 없으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본다고 절박하게 아룁니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여,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내일 나가서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고 선포합니다. 이에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엎드려 경배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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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낯을 향하는 선택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절망에 직면했을 때, 세상의 헛된 지혜 대신 금식과 기도로써 당신께 낯을 향하도록 촉구하시는 유일한 피난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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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마온 사람(세일 산 주민)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했습니다. 혹이 이 사실을 여호사밧에게 고했을 때, 이 연합군은 유다의 경계인 하시손다말 곧 엔게디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에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즉각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할 것을 공포했습니다. 이 명령에 따라 유다 모든 성읍에서 백성들이 모여와 여호와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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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과 믿음의 기로. 여호사밧은 이전에 아합과의 연합이라는 어리석은 선택(18장)을 한 뒤, 선지자의 책망(19장)을 받아들여 신앙 개혁과 사법 질서 재건을 이룩한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견고한 군사력(17장)에도 불구하고, 모압 연합군의 침공은 그에게 실존적인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인문학적으로,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며, 이 두려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여호사밧은 이 순간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여호와께 낯을 향했습니다. '낯을 향하다'는 것은 모든 외적인 의존을 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는 전적인 헌신과 회개의 몸짓입니다.
- 금식 공포의 신학적 의미. 여호사밧의 금식 선포는 단순한 재난 대처가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교만했던 르호보암이 율법을 버린 죄악(대하 12:1) 이후 이스라엘이 겪는 징계와 대조됩니다.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도 세상의 위기(경제, 질병, 사회적 갈등) 앞에서 인간적인 전략이나 헛된 기대에 의존하기보다, 우리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겸손이야말로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처신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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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서 피난처 되신 하나님께 낯을 향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나 실패를 만났을 때, 우리는 종종 아사 왕처럼 의원이나 인간적인 대책만을 찾거나, 아합처럼 변장(꼼수)을 통해 상황을 모면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순간을 하나님께 낯을 향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가정과 공동체는 세상의 논리를 따라 급하게 해결책을 모색하기 전에, 먼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영적 질서를 확립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와 사회는 끝없이 불안을 조장하며 인간적인 권력이나 물질에 의지하도록 유혹합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만이 참된 안전과 평안을 주시는 분임을 확신하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는 적극적인 신뢰를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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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2절 무력함을 고백하며 언약을 붙드는 기도
핵심 명제 (하나님 관점): 하나님은 과거 당신의 언약과 약속을 붙들고 자신의 무력함을 솔직히 고백하는 백성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기억하시는 신실한 언약의 수호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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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은 성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회중 가운데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주님을 하늘의 하나님, 이방 나라를 다스리는 분으로 높이며 시작됩니다. 그는 솔로몬 성전 봉헌 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회고하며, 환난 때에 성전 앞에서 주님께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는 말씀을 붙듭니다. 여호사밧은 암몬, 모압, 에돔(세일 산) 자손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진멸하지 않도록 남겨두신 민족이었으나, 이제 그들이 보응하는 것처럼 유다의 기업을 쫓아내려 한다고 고발합니다. 기도의 결론에서 그는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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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과 언약의 재확인. 여호사밧의 기도는 단순한 구걸이 아니라, 신학적,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언약 재확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의 이름이 있는 성전을 통해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신 솔로몬의 봉헌 기도(대하 6장)의 핵심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신비적 체험이 아닌 영원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치는 모범입니다.
- 무력함의 고백. 여호사밧은 전쟁을 이길 두 가지 요소인 능력과 작전(지혜)이 모두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전적인 무력함의 고백은 교만의 반대편에 있는 최고의 겸손이며,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철학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유한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전심으로 의탁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의 문학적 승화. 이 절박한 고백은 여호사밧 통치 이야기의 터닝포인트를 상징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히 문제를 주님께 맡기는 것(맡긴다는 뜻)을 넘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겠다는 변함없는 충성심을 드러냅니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요 14:13)과 같은 원리로, 예수님 안에서 영적인 다윗 왕권을 상속받은 우리가 환난 속에서 정죄함이 아닌 은혜를 구하는 확신의 근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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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기도의 중요성.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세상의 성공과 지혜로 무장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언약 위에 굳건히 세워야 합니다. 개인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 솔로몬의 기도를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새 언약의 피와 구원의 은혜를 근거로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공동체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의 성품 (공의와 사랑)을 찬양하며, 우리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기도가 모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지극히 작은 솜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주님께 우리의 짐을 맡기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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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9절 싸움은 하나님께 속했음을 선포하는 메신저
하나님은 당신께 의지하는 백성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싸움이 당신께 속했음을 선언하시고, 당신의 구원을 오직 믿음과 찬양으로 보게 하시는 싸움의 용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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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유다 백성이 그들의 어린 자녀와 아내들까지 포함하여 여호와 앞에 서 있을 때, 여호와의 영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했습니다. 야하시엘은 유다 백성에게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명하고,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는 다음 날 백성들이 적들을 맞서 나아가되, 싸울 필요가 없으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과 모든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했으며, 르위 사람들은 큰 소리로 서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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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지자적 메신저의 권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적 개혁(19장)에 힘썼던 여호사밧의 통치에 발맞추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레위인(야하시엘)을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이는 역대기 사가의 주된 관심인 레위인과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 예언의 핵심은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여호와의 전쟁)이라는 신학적 교훈입니다. 이는 마치 출애굽 당시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이 '가만히 서서 구원을 보라'는 명령을 받은 것과 유사합니다.
-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행동은 군사적 전략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한 담대함 (두려워하지 말라)과 찬양과 경배였습니다. '대열을 이루고 서서'는 단지 무장한 채 방관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신뢰를 행동으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찬송과 경배는 이 전쟁에서 유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으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야하시엘의 예언)을 믿음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 믿음의 행동과 찬양의 힘.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세상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불리하고 위협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미가야가 뺨을 맞고 갇혔듯이), 세상의 힘에 굴복하는 대신, 야하시엘의 예언처럼 말씀의 능력을 확신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승리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고, 위기를 통해 더욱 존귀하게 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찬송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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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나 공동체의 영적 침체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우리의 힘을 빼야 합니다. 가정은 자녀 양육이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인간적인 염려에 몰두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구원하실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와 사회는 대중적인 인기나 세속적인 기준을 따르려는 유혹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나침반을 따라 거룩함을 회복할 때, 비로소 공의와 진리가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처신은 불평이나 불안이 아닌, 아직 보이지 않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담은 찬양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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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오직 만군의 주권자이시며 싸움의 용사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의 환난과 두려움 속에서
저희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능력도 작전도 없을 때,
여호사밧처럼 오직 주만 바라보는
겸손한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저희의 죄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진노 속에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읍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된
"싸움은 주님께 속했으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저희 마음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저희의 삶에서 승패가
인간의 꾀나 힘에 있지 않고
오직 주님의 주권에 있음을 인정하며 살게 하소서.
저희가 모든 위기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믿음으로 경배하고 찬양함으로써,
주님의 놀라운 구원과 회복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복된 백성 되게 하옵소서.
저희를 사랑으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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