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1-8 둥지 속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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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나를 에워싼 척박한 현실과 타인의 서늘한 조롱 속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증명하려던 피곤한 움켜쥠을 내려놓고, 내 부족함과 연약함이야말로 주님의 자비가 유입되는 거룩한 틈새임을 자각하는 것이며, 소란한 세상의 풍경 너머로 기어이 평안의 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다사로운 품에 안겨 잠드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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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입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대지를 무겁게 짓누르는 먹구름 사이로 세찬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며, 세상의 앙금과 분주한 소음들을 고요히 씻어 내리는 아침입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응시하고자 하는 시편 4편의 시인이 서 있는 자리 역시, 인생의 사나운 비바람을 피해 들어선 캄캄한 대피소와 같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피할 곳 없는 곤경 속에서, 시인은 가슴 깊은 곳에 맺힌 탄식을 숨기지 않은 채 거칠고 정직한 기도의 언어로 주님 앞에 단독자로 섭니다. 시편은 이처럼 점잖은 체하는 우리의 종교적 가면을 사정없이 벗겨내어,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모습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마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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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지금 자기가 처한 형편을 가리켜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를 이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이들은 다름 아닌 사회적 권위와 힘을 쥔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시인의 명예를 짓밟고 비웃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명예란 공동체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대한 존경과 인정을 뜻하기에, 명예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곧 내가 발 디디고 설 자리 자체를 박탈당했음을 의미합니다. 삶의 어지러운 굴곡 속에서 신앙의 깊은 회의를 안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이들이 이와 같은 막막함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남들은 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며 화려한 성공의 잎사귀를 자랑하는데, 왜 내 삶은 여전히 지독한 가난과 실패의 어둠 속에 갇혀 있는가 하며 남몰래 눈물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더 완벽한 신앙의 실적과 종교적 도덕성을 세상과 하나님 앞에 증명해 내야만 사랑받을 자격이 주어질 것이라는 율법의 무거운 강박에 짓눌려 지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억척스럽게 입증해 보이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인은 우리의 그 깨어지고 헐벗은 자리가 결코 저주가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부족함과 연약함이야말로 하나님의 가멸찬 은총이 우리 영혼 깊은 곳으로 가만히 흘러 들어오는 눈물겨운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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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냉소주의자는 지옥은 한순간도 자기를 잊을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얽매는 상처와 억울함에 온통 사로잡혀 나 자신만을 끝없이 들여다보는 집착이야말로 영혼을 시들게 만드는 자아의 지옥입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잠잠히 머물 때, 우리는 내 억울함과 분노를 하나님 앞에 날것 그대로 정직하게 쏟아내며 비로소 성찰적 거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내 사사로운 독백을 멈추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때, 영혼을 가리고 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며 비로소 만유에 깃든 하나님의 세심한 섭리가 오련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존 케이지의 현대음악 '4분 33초'의 악보에 적힌 Tacet, 즉 침묵이라는 음악 용어처럼, 세상의 시끄러운 다그침을 끄고 주님의 사랑 앞에 고요히 멈추어 설 때 비로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립니다. 삶이란 어쩌면 영원이라는 든든한 날실을 근거로 하여, 시간이라는 하루하루의 씨실로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무늬를 깁고 짜 나가는 고귀한 직조 과정과도 같습니다. 그 직조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손에 힘을 빼고 숨을 고를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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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시인이 처한 객관적 현실은 단 한 가지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원수들은 여전히 문밖에 진을 치고 있고, 시인은 여전히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면을 거치며, 시인의 내면의 풍경은 경이롭게 변화합니다. 나를 누르려는 자들의 조롱 섞인 소음 대신, 내 영혼의 밤을 은은하게 비추시는 하나님의 환한 얼굴빛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그 환한 빛 아래서 시인은 마침내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숨을 죽이며 조여 오는 위협 한복판에서도 기어코 눈을 감고 고요한 단잠을 청합니다.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엄마 품에 안겨 따뜻하고 만족스럽게 젖을 먹은 후, 아무런 걱정 없이 새근새근 단잠에 빠져든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평안은 세상의 척박한 비바람을 내 힘으로 완벽하게 통제해 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직 벼랑 끝 같은 우리의 일상조차 넉넉한 자비의 품으로 안으시어 기어코 평안히 쉬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총에 온 존재를 의탁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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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한여름 밤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나뭇가지 끝에 걸린 둥지 속에서 곤히 잠든 아기 새의 평화와 같습니다. 세상의 오만함과 날카로운 지혜는 폭풍우가 칠 때 살아남으려면 밤새 깃털을 바짝 세우고 바람의 방향을 거슬러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해야만 안전할 것이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긴장한 채 버둥거리다 금세 기력을 잃고 어둠 속으로 추락하곤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람을 이겨낼 완벽한 비행 기술을 증명하라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 새를 위해, 흔들리는 나뭇가지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거대하고 든든한 아름드리나무를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내 잘남을 뽐내려던 헛된 소란을 멈추고 말씀의 따뜻한 둥지 안에 온 존재를 맡겨 누울 때, 비로소 우리는 밖에서 사나운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요동칠지라도 가장 아늑하고 깊은 단잠을 누리며, 마침내 폭풍우가 걷힌 눈부신 부활의 아침을 가장 찬연하고 평화롭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둥지 안에 당신의 온 존재를 내려놓으시겠습니까.지금 이 순간, 그 둥지 안에 당신의 온 존재를 내려놓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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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화려한 가치들 앞에서 주눅 들지 마십시오. 나를 살리시는 말씀을 영혼 깊이 새기는 묵상의 자리에 엎드리며, 언제나 든든한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그 넉넉한 사랑에 기대어 곁에 있는 이웃의 여린 발을 다정하게 괴어주는 맑은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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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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