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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01-18 욕망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시작되는 평화와 약속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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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서의 실패(12장) 이후, 아브람은 많은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 땅, 처음 제단을 쌓았던 벧엘로 돌아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회복합니다. 그러나 소유가 많아짐에 따라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아브람은 골육 간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기득권(연장자로서의 권리)을 내려놓고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게 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롯은 눈에 보기에 풍요로운(애굽과 같은) 소돔 지역을 선택하여 떠나고, 홀로 남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며 땅과 자손에 대한 언약을 확증해 주십니다. 아브람은 헤브론으로 옮겨 다시 제단을 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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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족장(아브람)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땅의 선택권은 당연히 연장자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이 수직적 위계질서를 깨고 수평적 배려를 선택합니다. 당시 ‘소돔’은 문명의 화려함을 상징하지만, 영적으로는 죄악이 관영한 곳이었습니다.

# 신학적·정경적 배경 : 창세기 13장은 12장의 ‘기근과 애굽으로의 도피’라는 실패 후에 오는 ‘회복’의 장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바로에게 아내를 누이로 속인 것이 ‘생존을 위한 수직적 비굴함’이었다면, 13장에서 롯에게 양보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수평적 넉넉함’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세상의 재화와 갈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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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실패의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로 - 회복의 시작 : 실패를 딛고 언약의 장소로 되돌아와 관계를 복원하는 예배자.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하여 넘어졌을 때, 다시 처음 사랑과 소명의 자리(제단)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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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애굽에서 나와 네게브를 거쳐 벧엘과 아이 사이, 즉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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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여정은 지리적 이동인 동시에 영적 회귀입니다. 애굽에서의 사건은 아브람에게 트라우마일 수 있었으나, 그는 그 실패에 머물지 않고 '처음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 올라옵니다. 인간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잊고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쉽습니다(애굽행). 그러나 참된 신앙은 실패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수직)를 회복하는 탄력성에 있습니다. 부유해졌으나(2절) 그것이 영혼의 안식을 주지 못함을 깨달은 아브람은, 소유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가 삶의 본질임을 재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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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종종 생존을 위해, 혹은 더 많은 연봉과 성공을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선택을 합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세상과 타협하고 실패를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 후의 태도입니다. 사업의 실패나 관계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책하거나 세상 방식을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벧엘)로 복귀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회복해야 할 '처음 제단'은 어디입니까?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쳐버린 가정 예배나 개인 묵상의 자리를 다시 세우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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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3절 소유의 갈등과 두 가지 시선 - 욕망 대 평화 : 물질적 이익보다 형제됨의 평화를 선택하는 믿음의 결단.

하나님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풍요(소돔)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화평)를 선택할 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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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많아져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투게 되자,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를 떠나가라"고 제안합니다. 아브람은 연장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롯에게 우선 선택권을 줍니다. 롯은 눈을 들어 물이 넉넉한 요단 지역(소돔)을 바라보고 그곳을 선택하여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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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본다(라아)'는 행위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롯은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보았는데, 그곳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0절)고 기록됩니다. 이는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본 시선("보암직도 하고")과 연결되며, 동시에 그가 방금 떠나온 세속 도시 '애굽'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아브람은 눈에 보이는 이익보다 '형제됨(수평적 평화)'을 지키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아브람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믿음이 롯을 향한 수평적 양보로 구체화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갈등을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함으로써 관계를 보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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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는 '부동산'과 '자산'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는 아브람의 여유는, 내 인생의 책임자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직장 동료와의 승진 경쟁이나 유산 상속 문제 앞에서, 우리는 롯처럼 눈앞의 이익을 쫓아 '소돔'을 선택합니까, 아니면 아브람처럼 화평을 위해 권리를 양보합니까? 그리스도인은 '갑질'의 위치에 설 수 있을 때조차 '섬김'을 선택함으로써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거룩한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소돔'의 화려함은 결국 불타 없어질 것이지만, 양보를 통해 지킨 '사람'과 '평화'는 영원히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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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8절 빈 들에 임한 충만한 약속  - 시선의 교정 : 세상의 것을 양보한 자에게 하늘의 것과 땅의 기업을 더하시는 보상.

하나님은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의 눈을 멀게 하시고, 겸손히 낮아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에게 영원한 기업을 보여주시는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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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떠난 후, 홀로 남은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하시며, 보이는 땅을 그와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은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거하며 제단을 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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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 자신의 욕망을 따라 스스로 눈을 들었다면, 아브람은 하나님이 "눈을 들어 보라"고 하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롯이 떠난 후 빈손이 된 아브람에게 동서남북 사방의 땅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표합니다. 아브람이 옮겨 간 '헤브론'은 '교제', '동맹'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화려한 도시 소돔 대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거룩한 처소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중심(도시)에서 벗어나 변방으로 밀려난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부로 진입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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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양보는 손해이고 도태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원리에서 양보는 하나님이 채우실 공간을 마련하는 행위입니다. 롯이 떠난 빈자리, 내가 포기한 이익의 자리에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손에 쥐어진 것이 없어서 불안하십니까? 혹은 믿음을 지키려다 손해를 보셨습니까?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핫플레이스'(소돔)를 찾아다니는 유목민이 아니라, 하나님이 머물게 하신 자리(헤브론)에서 예배의 제단을 쌓으며 그 땅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사명자입니다. 나의 가정과 일터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헤브론'이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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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의 삶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실패의 자리였던 애굽을 떠나 

다시 벧엘의 제단으로 돌아온 아브람처럼, 

오늘 우리도 세상의 분주함과 욕망을 내려놓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주님, 우리는 눈앞의 이익과 소유 때문에 형제와 다투고, 

눈에 보기에 좋은 소돔을 향해 달려가는 롯과 같은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부동산과 재물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이 시대 속에서, 

저희에게 아브람과 같은 믿음의 배포를 허락해 주옵소서. 

움켜쥐고 다투기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 되심을 신뢰하며 

먼저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용기를 주옵소서.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세상(소돔)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비록 빈 들에 있을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헤브론의 삶을 사모하게 하소서. 

우리가 세상의 것을 내려놓을 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라" 말씀하시며 

더 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상급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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