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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9:18-29 덮음의 신비와 노출의 비극 : 관계의 정원에서 다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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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셈, 함, 야벳)을 통해 온 지면에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농부가 된 노아는 포도원을 가꾸고 그 결실인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듭니다. 아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밖으로 나가 알렸으나, 셈과 야벳은 뒷걸음질 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줍니다. 술에서 깬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축복하며, 이후 9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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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에서 아버지는 가문의 질서와 복의 근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노출하는 행위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반역적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 신학적·정경적 배경 : 본문은 창세기 3장의 에덴 타락 사건과 평행 구조를 이룹니다. ‘벌거벗음’과 ‘포도주(열매)’라는 소재를 통해, 심판 이후에도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연약하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덮어주심’(가죽옷의 변주)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관점 : 노아의 실수를 정죄하는 ‘수직적 시선’보다, 그 수치를 대하는 아들들의 상반된 태도, 즉 타인의 약점을 ‘노출’하여 소외시키느냐 아니면 ‘덮어’주어 관계를 보존하느냐라는 수평적 윤리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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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절 인류의 재건과 번성의 시작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생육과 번성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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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입니다. 이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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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에 퍼지니라’는 서술은 창세기 1:28과 9:1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 실제 역사 속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송민원 박사는 이 구절이 단순히 인구 증가를 넘어, 인류가 다시 한번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집단적 주체’로서 지면에 세워지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이는 신약에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까지 전파되는 선교적 확장과 정경적 궤를 같이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가능성을 아시면서도 다시 세상을 그들의 손에 맡기시는 ‘위험한 신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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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저출산과 인구 절벽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생명이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원적 축복임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단순히 ‘숫자의 번성’을 넘어,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질적 번성’을 이루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직장과 교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대를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소중한 ‘남은 자’로 환대하고 있습니까? 각자도생의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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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절 평안 속의 방심과 노출된 수치

하나님은 인간이 누리는 풍요가 자칫 영적 나태와 관계의 무너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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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로 만든 포도주에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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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박사는 ‘벌거벗음’(아롬)이라는 단어가 창세기 3장의 타락 사건을 강력하게 소환하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아담이 ‘슬기로움’(아룸)을 탐하다가 ‘벌거벗음’(아롬)의 수치를 당했듯, 노아 역시 농부로서의 성취(풍요) 뒤에 통제되지 않은 욕망으로 인해 다시 수치에 노출됩니다. 이는 인간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도덕적 자각은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는 ‘역설적 진화’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로 얻은 평안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본질을 잊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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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의 일터에서 성공은 종종 ‘방심’을 낳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혹은 재정적 안정을 얻을수록 우리는 내면의 ‘벌거벗음’을 가리기보다 방치하기 쉽습니다. 은퇴 후나 승진 후에 찾아오는 영적 무기력은 노아의 장막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풍요의 열매를 누릴 때, 그것이 나를 취하게 만드는 독주가 되지 않도록 말씀의 절제를 파수꾼으로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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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3절 노출의 폭력과 덮음의 자비

하나님은 타인의 허물을 들추는 언어의 폭력을 미워하시고,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 관계를 보존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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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알렸으나,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질 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고 얼굴을 돌려 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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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핵심은 ‘보다’(라아)와 ‘덮다’(카사)의 대조입니다. 송민원은 함이 단순히 본 것이 아니라 수치를 ‘폭로’하고 ‘유포’함으로써 관계를 단절시켰음에 주목합니다. 반면 셈과 야벳의 ‘뒷걸음질’은 타인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주려는 ‘경외의 행위’입니다. 이는 우리의 수치를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총을 예표합니다. 죄는 노출하여 소외시키지만, 사랑은 덮어서 회복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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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마녀사냥’과 비난의 정서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셈과 야벳의 ‘뒷걸음질’은 혁명적인 대안 윤리입니다. 직장 동료의 실수나 가족의 허물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함’의 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의 부끄러움을 십자가의 가죽옷으로 덮어주는 ‘안전한 장막’이 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응시’하지 않고 그의 명예를 지켜주는 절제된 사랑이 분열된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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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7절 예언적 선언과 관계의 열매 

하나님은 관계 안에서 행한 우리의 선택이 세대와 역사를 결정짓는 열매가 되게 하시는 공의의 주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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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술이 깨어 아들들의 일을 알고,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종이 되고 셈의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며 야벳은 창대하게 되기를 예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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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저주는 개인적 감정의 분풀이가 아니라, 관계의 도리를 저버린 행위가 가져올 ‘사회적·역사적 결과’에 대한 선언입니다. 송민원 박사는 ‘셈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에 주목하며, 하나님이 특정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그분의 성품(덮어줌)을 닮은 자의 하나님이 되심을 강조합니다. 야벳의 ‘창대함’ 또한 셈의 장막(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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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언행과 삶의 태도는 자녀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가정 안에서 권위를 멸시하는 법을 배운 자녀는 세상에서도 관계의 파국을 맞기 쉽습니다.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에게 ‘성공의 비결’이 아니라 ‘관계의 신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서로를 축복하고 수치를 덮어주는 ‘셈의 장막’이 될 때, 비로소 사회 전체가 창대해지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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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29절 한 시대의 마감과 여전한 약속

하나님은 인간의 생애가 끝나는 지점에서도 당신의 역사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시는 영원한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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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후에 노아가 350년을 더 살았고, 그의 나이 950세에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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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었더라”는 표현은 창세기 5장의 죽음의 족보를 다시 떠올리게 하며, 노아 역시 아담의 후손으로서 유한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나 송민원은 노아의 수명이 홍수 이전 세대의 영광을 잇는 마지막 다리였음에 주목합니다. 노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소멸이 아니라, 그가 보존해낸 생명의 씨앗이 이제 각자의 책임 아래 새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한다는 ‘바통 터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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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노아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를 묻습니다. 재산이나 업적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경험했으며, 그 은혜로 타인을 어떻게 대했는가라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죽음 앞에서 “나를 기르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48:15)을 고백할 수 있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고백으로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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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태초에 생명을 지으시고, 심판의 홍수 속에서도 

보존의 언약을 잊지 않으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노아의 장막에서 일어난 비극과 은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성공과 평안의 자리에서 영적으로 방심하여 수치를 드러냈던 노아처럼, 

우리 또한 주신 복에 취해 거룩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특별히 간구하오니, 타인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소외시키는 

‘함’의 잔인함을 버리게 하시고, 

조용히 뒷걸음질 쳐 들어가 형제의 수치를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의 자비로운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혐오와 폭로가 일상이 된 이 땅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서로의 부끄러움을 덮어주며 

하나님의 형상을 보전하는 화해의 사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수치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옷으로 우리를 덮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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