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31-12:9 멈춰 선 아버지의 자리에서 떠나, 약속의 땅으로 걷는 질문과 응답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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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는 가족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 했으나 하란에 머물러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며,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거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아브람은 이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그 땅에 이미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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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문화적 배경 : 갈대아 우르와 하란은 당대 고도(古都)로서 ‘달 신’(Sin)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도시였으나 영적으로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아브람의 여정은 이 화려한 도시 문명(바벨의 방식)에서 떠나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거룩한 나그네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 신학적·정경적 배경 : 창세기 1-11장의 원역사가 인류의 보편적 타락과 바벨탑 사건을 통한 '흩어짐'을 다루었다면, 12장은 한 사람을 '부르심'으로 구속사를 좁혀 들어가는 분수령입니다,. 이는 바벨의 방식(스스로 이름을 내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이름을 창대하게 해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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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2절 멈춰 선 자리, 미완의 여정
하나님은 익숙한 안주(安住)의 자리가 아닌, 약속을 향한 끝없는 전진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의 상처나 현실의 안락함에 머물러 사명을 잊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목적지까지 걷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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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가 아들 아브람과 며느리 사래, 손자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으나,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거류'하였습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205세를 향유하고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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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박사의 수평적 관점에서 볼 때, 족보와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입니다. 데라의 여정은 '가나안'을 목표로 시작되었으나(31절), 중간 기착지인 '하란'에서 멈췄습니다. 하란은 우르와 마찬가지로 달 신을 섬기는 부유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데라는 문명의 안락함 혹은 아들 하란을 잃은 슬픔(11:28) 때문에 더 이상의 모험을 포기하고 '거류'(야샵, 주저앉다)했습니다. 이는 영적 타협입니다. 목적지를 알았으나 끝까지 가지 못한 신앙, 현실의 풍요에 안주해버린 신앙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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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란'에 머물러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룩한 뜻을 품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나, 적당한 경제적 안정, 자녀 교육, 사회적 지위라는 현실적 안락함에 취해 더 깊은 영적 성숙과 사명의 자리(가나안)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은 사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멈춰 있습니까? 내 발목을 잡고 있는 하란의 편안함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하란에서 생을 마감하는 '데라'가 아니라, 다시 짐을 꾸려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아브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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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떠남의 명령과 복의 약속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방식에서 불러내어,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언약의 주체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쌓아두는 자가 아니라, 복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도록 우리 존재 자체를 '복'으로 규정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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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며, 너는 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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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사건(11:4)에서 인간들은 "우리의 이름을 내자"며 수직적으로 상승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반면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명예와 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보여줍니다. 송민원의 관점에서 '너는 복이 될지라'는 명령은 수평적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나 혼자 잘 사는 수직적 성공이 아니라, 이웃과 열방으로 복이 흘러가게 하는 '관계적 축복'입니다. '떠나라'는 명령은 과거의 안정망(지연, 혈연, 우상)과의 단절을, '가라'는 명령은 하나님만을 의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초대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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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과도한 경쟁 사회는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을 복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복 자체가 되어 남을 살리는 것'이 진짜 복이라고 말합니다. 직장에서 승진하고 연봉이 오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위치를 통해 내가 만나는 동료와 거래처 직원들에게 하나님의 성품과 은혜가 흘러가게 하는 것이 '복의 근원'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복을 비는 자'(기복)가 아니라 '복이 되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나의 성공이 누군가의 기회가 되는 삶, 그것이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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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절 말씀에 이끌리는 삶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말씀을 따라 걷는 자를 통해 새 역사를 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나이와 환경의 제약을 넘어, 오직 당신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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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함께 갔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은 75세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 마침내 그 땅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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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절)는 아브람 생애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그는 지도나 경험, 혹은 경제적 이익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다바르)을 따라갔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바벨탑을 따라갔던 사람들과 대조됩니다. 75세라는 나이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늦은 나이처럼 보이지만, 말씀이 임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표현은 아버지 데라가 멈췄던 그 길을 아브람이 순종으로 완성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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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데이터와 정보, 전문가의 예측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이사, 이직, 결혼 등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세상의 조건(학군, 연봉, 전망)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라는 말씀의 기준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주저하지 마십시오. 말씀이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미래 투자입니다. 우리 가정의 이정표가 '세상의 유행'이 아닌 '여호와의 말씀'이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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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절 예배, 약속의 땅을 확인하는 깃발
하나님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당신을 예배하는 자에게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계시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약속과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도, 예배를 통해 당신의 임재를 확인하고 믿음의 눈을 들어 미래를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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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가나안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십니다. 아브람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다시 벧엘과 아이 사이로 옮겨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후 점점 남방으로 옮겨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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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에 도착했으나 그곳은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강력한 가나안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6절). 현실과 약속의 괴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다시 나타나 땅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해주십니다. 이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은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송민원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이방 신들의 땅 한복판에서 여호와의 주권을 선포하는 '거룩한 도발'이자 '영토 선언'입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공적 예배)는 눈에 보이는 현실 권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 땅의 진짜 주인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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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가치관과 세속적 힘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직장에서, 캠퍼스에서 우리는 소수자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우리가 제단을 쌓아야 할 세겜이고 벧엘입니다. 주일에 교회에서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성실, 기도로 '삶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식사 기도 한 번, 업무 시작 전의 묵상, 정직한 결재 하나가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을 하나님의 땅으로 선포하는 깃발입니다. 현실이 두려울수록 더욱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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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시며,
참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데라처럼 현실의 안락함과 과거의 상처에 매여
하란에 머물러 있던 저희를 흔들어 깨워 주시옵소서.
익숙한 안주(安住)가 축복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따라 떠나는 모험이 진정한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을 때,
저희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의 제단을 쌓는
거룩한 나그네가 되게 하옵소서.
저희를 세상의 복을 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에 복을 흘려보내는 '복의 근원'으로 불러주셨사오니,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전하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가나안 원주민의 위세에 눌리지 않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당당히 믿음의 여정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 되시며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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