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9:01-17 심판의 구름 사이로 비치는 자기 제한의 신비, 보존과 공생의 무지개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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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 본연의 사명을 갱신하십니다 (9:1). 타락한 현실을 반영하여 육식을 허용하시되 생명의 근원인 ‘피’는 금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십니다(9:4-6). 또한 모든 생물 및 땅과 더불어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으리라’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그 증거로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두어 스스로 기억하겠다고 선포하십니다(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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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문화적 배경 : 고대 근동의 홍수 신화(아트라하시스 등)에서 신들은 인구 과잉과 소음 때문에 인간을 멸하려 했으나, 창세기의 하나님은 오히려 인간의 번성을 축복하시며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질서가 무너진 후 다시 시작되는 ‘재창조’ 서사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이 지배의 권위가 아닌 ‘폭력 금지의 근거’로 재정의되는 지점입니다.
# 정경적 배경 : 이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이어지며, 요한계시록의 만물 회복을 향한 구속사의 중추를 형성합니다.
# 참고 : 창세기 9:1-17은 대홍수라는 거대한 심판의 파도가 지나간 후, 폐허가 된 대지 위에서 하나님이 인류 및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맺으시는 ‘재창조(Re-creation)’의 헌장입니다. 송민원 박사의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의 통찰에 따르면, 이 본문은 인간 중심의 일방적 축복을 넘어 피조 세계 전체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정념(Pathos)과 자기 제한적 사랑을 수평적 관계 안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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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절 생명의 번성과 거룩한 경계 : 모든 생명의 존엄을 지키시는 보호자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창조 본연의 축복을 철회하지 않으시며, ‘피’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경계를 통해 생명의 신성함을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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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노아와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주십니다(1절).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모든 동물을 식물처럼 먹거리로 허용하시되, ‘피째’ 먹는 것은 금하십니다(2-4절). 또한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함을 명하시며, 그 근거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천명하십니다(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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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박사는 여기서의 ‘하나님의 형상’이 창세기 1장에서처럼 ‘다스림의 권위’를 뜻하기보다, 이제는 ‘폭력을 멈추어야 할 근거’로 변모했음에 주목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질 때, 하나님은 인간 존재 자체의 고귀함을 들어 폭력을 차단하십니다. 또한 ‘피’를 금하신 것은 생명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각인시키는 장치입니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 생명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신 복음의 원형적 사건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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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효율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을 성과를 위한 도구로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모든 인간을 ‘보존되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우하라고 요청합니다. 직장 내 ‘갑질’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은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성도는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의 생명권을 수호하는 ‘평화의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후 위기 시대에 무분별한 개발을 멈추고 생태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피 금지’ 명령을 수행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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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1절 보편적 보존을 향한 하나님의 결심 : 피조물 전체와 평화의 조약을 맺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과 땅을 언약의 대등한 파트너로 삼아, 심판의 의지를 자비로 이기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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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후손뿐 아니라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 즉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십니다(9-10절). 다시는 물로 모든 육체를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무조건적인 보존을 선포하십니다(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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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박사는 이 언약이 ‘배제’가 아닌 ‘포용’의 언약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간뿐 아니라 짐승과 땅까지 언약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특정 종교나 민족에 갇히지 않고 온 우주를 향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포악함에도 불구하고(6:11) 자신의 창조 세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며, 심판의 논리를 자비의 논리로 덮으시는 ‘자기 극복’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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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논리와 혐오로 갈라진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포용적 언약’을 체현해야 합니다. 우리만의 ‘방주’ 안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웃과 고통받는 피조 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의견이 다른 이들을 정죄하기보다, 하나님의 보편적 자비 아래에서 서로를 용납하는 ‘공생의 영성’이 절실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는 성도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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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7절 자기 제한의 표징, 무지개 언약 : 심판의 활을 내려놓고 은혜를 기억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하나님은 무지개를 통해 자신의 공의를 스스로 제한하시며, 고난의 구름 속에서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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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약의 증거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십니다(13절). 구름이 땅을 덮을 때 무지개가 나타나면 하나님은 이를 보고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4-16절). 무지개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영원한 증표가 됩니다(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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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무지개는 ‘케셰트’(활)를 의미합니다. 송민원 박사는 이 활이 하늘을 향해 걸려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겨누던 심판의 활시위를 스스로 거두시고, 그 고통을 자신에게 돌리셨음을 상징하는 ‘주권적 자기 제한’입니다. 또한 ‘기억하다’(자카르)는 단순히 잊지 않는 상태를 넘어, 구원을 위해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언약적 행동을 뜻합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라는 ‘자기 비움’을 통해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 사건은 이 무지개 언약의 궁극적 성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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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난이라는 ‘먹구름’이 닥칠 때, 우리는 절망하기보다 그 구름 사이에 이미 걸려 있는 하나님의 무지개(약속)를 보아야 합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는 이웃의 허물을 볼 때 심판의 활을 쏘기보다, 하나님의 무지개처럼 자비의 활을 하늘로 거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보복의 논리를 끊고 용서와 화해의 무지개를 띄우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가장 지적인 신앙의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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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태초에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심판의 홍수 속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보전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형상임을 망각하고 타인에게 언어와 행위의 폭력을 행사하며,
주님의 창조 세계를 탐욕의 도구로 삼았던 완악함을 회개합니다.
심판의 활을 구름 위에 걸어두시고
‘다시는 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신
주님의 그 아픈 사랑과 자기 제한의 신비를
오늘 우리의 가슴에 새깁니다.
우리의 일터와 가정이
서로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거룩한 성소가 되게 하시고,
갈등과 혐오가 가득한 이 땅에
평화와 보존의 무지개를 띄우는 화해의 사절단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덮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만물을 새롭게 하실 주님의 약속 안에서 소망 중에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언약이시며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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