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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31-12:9 질문을 품고 걷는 순례자의 길

.

신앙은 안주하고 싶은 욕망의 땅 하란을 떠나, 낯선 질문을 품고 이웃을 향해 걷는 거룩한 모험입니다.

*

어느덧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이 불어옵니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로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이 계절, 우리는 문득 자신의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따뜻한 아랫목과 익숙한 풍경이 주는 안락함은 참으로 달콤합니다. 그러나 영혼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갈증이 일렁입니다. 성경은 이 안락함과 갈증 사이에서 서성이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창세기 11장의 끝자락에는 데라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 했으나, 도중 하란에 머물러 거기서 생을 마감합니다. '하란'은 교차로, 즉 문명의 혜택과 풍요가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의 안락함은 데라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목적지를 잃어버린 여정, 안주함이 주는 나른한 평화.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하란'의 풍경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멈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송민원 목사는 저서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이 장면을 수직적인 명령과 복종의 구도로만 읽지 말고, 수평적인 관계의 확장으로 읽어내자고 제안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단지 '나를 잘 섬겨라'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익숙한 울타리, 나를 보호해 주는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나와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라고, 즉 이웃을 향해 걸어 나가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떠남은 두렵습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합니다. 목적지가 명확히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보여 줄 땅"이라는 모호한 약속 하나 붙들고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정답을 손에 쥐고 떠나는 여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너의 삶은 누구를 향해 열려 있는가?"라는 하나님의 질문을 가슴에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과정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주저하고 계신 벗님들.

우리는 모두 하란과 가나안 사이에 서 있습니다. 내 삶의 안위를 위해 쌓아 올린 담장은 높지 않은지요? 하나님은 그 담장을 넘어 낯선 이웃에게, 도움이 필요한 세상에게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바벨탑처럼 내 이름을 높이는 삶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꿈꾸시는 '복'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데라처럼 주저앉고 싶고, 아브라함처럼 두려워 흔들리는 우리를 아시면서도, 당신의 거룩한 모험에 동참하라고 손 내미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조차 당신의 역사를 이루는 재료로 쓰시는 그 넉넉한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정해진 답이 없어 불안해 보이는 그 길이, 실은 가장 확실한 은총의 길입니다. 오늘, 질문을 품고 다시 길을 나서는 여러분의 뒷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1:31-12:9 익숙한 절망을 떠나, 낯선 은총의 대지로 걷는 걸음

신앙의 여정은 안주하고 싶은 ‘하란’의 중력을 거스르는 용기이며, 나를 위한 삶에서 타자를 위한 복의 통로로 확장되는 ‘은총의 모험’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시간의 파고를 넘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오늘이라는 기적의 영토에 당도한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은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는 혼돈의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창세기 11장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데라의 가족을 만납니다. 그들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 했으나,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거류’하고 맙니다(창 11:31). 목적지를 잃은 채 현실의 안락함 혹은 두려움에 주저앉은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서 꿈을 잃어버린 우리네 자화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데라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고,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으로 문을 엽니다. 송민원 교수는 창세기의 흐름을 ‘수평적 읽기’로 제안합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인류의 혼돈(창 11장)을 수습하고,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기 위해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창 12:1).

이 ‘떠남’의 명령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닙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라틴어 수업에서 “운명을 만드는 사람은 바로 자신(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이 말은 조금 다르게 읽혀야 합니다. 우리의 운명은 내가 억지로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얽어매고 있는 익숙한 관습, 욕망, 그리고 “이 정도면 되었다”는 안주함에서 떠나 하나님이 이끄시는 낯선 세계로 투신(投身)할 때 비로소 빚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단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존재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영원한 시간을 건네주셨고, 그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셨습니다. 이것은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복이 아닙니다.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누군가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관계의 복’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이 거대한 ‘은총의 이어달리기’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신앙에 대한 회의가 안개처럼 밀려오고, 내가 과연 복의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내 생각과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비추어 보는 ‘관계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이드거니 씹어 삼킬 때, 비로소 세속적 욕망에 구부러진 우리 마음이 펴지고,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완벽해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기근을 만나면 비틀거렸고, 두려움 앞에 아내를 누이라 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약함조차 품으시고 기어코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 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 곧 ‘원복(Original Blessing)’입니다. 이제 무거운 종교적 의무감을 내려놓고,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손을 잡으십시오. 하란의 정체(停滯)를 넘어 약속의 땅으로 발을 내디딜 때, 우리 삶은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詩)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닫혀 있던 창문을 활짝 여는 ‘환기(換氣)’와 같습니다. 오랫동안 묵은 먼지와 탁한 공기로 가득 찬 방 안에 갇혀 있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창문을 열어 낯설지만 신선한 은총의 바람을 불어넣으십니다. 그 바람은 때로 우리를 시리게 하지만, 결국 우리 영혼을 맑게 씻어 생명의 숨을 쉬게 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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