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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03:01-08 패역한 도성 예루살렘, 진노의 불꽃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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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도성이라 불리던 예루살렘의 죄악을 준엄하게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명령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않으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패역함과 더러움, 그리고 포학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특히 지도자들—방백,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의 극심한 타락은 백성의 죄악을 부추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변 열방들을 심판하심으로써 예루살렘에게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직접 일어나 온 땅에 심판을 집행하실 것이며, 그분의 뜨거운 질투의 불로 모든 것을 소멸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시며, 백성들에게 그 날까지 당신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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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예루살렘의 죄와 지도자들의 타락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선택하신 도성과 백성이 패역함과 불의로 더럽혀졌을 때, 흔들림 없는 공의와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그들의 죄악을 고발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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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으로 불립니다. 이 도성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방백들은 울부짖는 사자 같고,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 같으며,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하며,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훼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 가운데 계시며,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공의를 비추시지만, 불의한 자들은 수치를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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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예루살렘의 이중적인 정체성 : 스바냐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라고 통렬하게 비난합니다. 이는 요나가 심판을 선포했던 니느웨와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조차 심판 아래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본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받는 거룩한 곳이어야 했지만, 오히려 압제와 불의가 만연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여 거룩하게 구별하신 공동체가 그 본질을 잃어버릴 때, 그 타락은 더욱 심각하게 비난받습니다.

_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 2절은 예루살렘의 죄악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율법)을 듣지 않고, 교훈(훈련, 바른 것을 고침)을 받지 않으며,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심지어 가까이 나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판단과 우상을 더 신뢰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생명이자 의미이지만, 이 단절은 죽음과 헛됨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고 자신들의 뜻과 재물, 혹은 우상을 의지한 철저한 자기중심성이었습니다. 스바냐는 요시야 왕 시대에 활동했는데, 당시 유다는 므낫세 시대의 종교 혼합주의와 배교의 영향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_지도자들의 총체적 타락 : 3-4절은 예루살렘 타락의 주된 책임이 지도자들에게 있음을 고발합니다.

  • + 방백들(공직자)은 "울부짖는 사자" : 그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백성을 돌보고 보호해야 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포악한 짐승처럼 백성을 억압하고 이익을 편취했음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약자를 짓밟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 +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 이는 재판관들의 극심한 탐욕과 불의를 나타냅니다. 정의를 구현해야 할 법정에서 뇌물이 오가고, 힘없는 자들의 재산을 모조리 빼앗는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밝히는 대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 +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할 선지자들이 경솔하게 행동하고, 참된 진리를 전하지 않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거나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던 것입니다.

  • +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훼파하며": 거룩한 성전에서 봉사하며 율법을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이 오히려 성소를 부정하게 만들고 율법을 침해하며 왜곡했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우상 숭배와 혼합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영적 지도자들의 타락은 공동체 전체의 영적 생명력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_하나님의 변함없는 공의와 백성의 무지 : 5절은 예루살렘의 타락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그 타락한 도성 가운데 계시지만, 불의를 행하지 않으시며 아침마다 빠짐없이 공의를 비추십니다. "아침마다"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돌보심이 끊임없이 지속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변함없으시지만, 불의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수치나 부끄러움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시기에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시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으시는 진정한 공의를 보여줍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12-17). 이는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을 통해 일하시지만, 그들이 타락했을 때는 직접 개입하시어 심판하고 정화하시는 주권적인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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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가정 : 우리 자신의 삶과 가정을 돌아보며 혹 예루살렘과 같은 패역함과 더러움, 포학한 모습은 없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게으르거나, 주님의 교훈을 무시하며, 우리 자신의 힘과 재물, 세상적인 가치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부족하여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고 있다면, 이는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문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 특히 재물을 탐하거나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실천하는 본을 보이며,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공의를 따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기억하며 (잠언 1:7), 우리 입술에서 정직과 사랑의 언어가 나오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공동체/세상 :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거룩함과 공의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울부짖는 사자나 저녁 이리 같은 탐욕과 불의를 버리고, 경솔하고 간사한 선지자나 율법을 훼파하는 제사장과 같은 모습에서 완전히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성도들의 삶을 인도하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회의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교회는 "말씀의 부재"가 아닌 "말씀의 충만함"으로 하나님과의 소통이 막히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의를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에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며,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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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절 하나님의 심판 선포와 기다림의 명령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온 세상의 불의를 드러내시고, 회개하지 않는 자기 백성에게도 임박한 진노의 날을 선포하시며, 마침내 그분만이 유일한 통치자이심을 온전히 나타내실 때까지 당신을 기다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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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미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거리가 비어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으며, 모든 성읍이 황폐하여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게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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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과거의 심판, 현재의 경고 : 6절에서 하나님은 이미 여러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셨음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들의 견고한 망대와 방어 체계는 무너지고, 도시는 황폐하여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스바냐 2:4-15에서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앗수르 등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심판 선언과 연결됩니다. 이 심판들은 예루살렘에게 명백한 경고이자 교훈의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당신의 주권을 드러내시며, 강대국의 흥망성쇠조차 그분의 손 안에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_예루살렘의 완고함과 하나님의 실망 : 7절은 하나님의 간절한 기대와 예루살렘의 완고한 불순종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는 것은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고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정해진 형벌 속에서도 그들의 거처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 기회를 무시하고 오히려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이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죄악의 길을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를 조롱하고 외면한 것입니다.

_"나(여호와)를 기다리라" - 심판의 명령 : 8절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 선언과 함께 백성들에게 "나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 기다림은 단순한 수동적인 대기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임박한 심판을 준비하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스바냐서의 핵심 주제와 연결됩니다. '여호와의 날'은 아모스 선지자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고 스바냐에 의해 더욱 발전된 개념으로, 본래는 구원과 환희의 날이었지만, 타락한 백성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 날은 "분노의 날, 환난과 고통의 날, 황폐와 패망의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구름과 흑암의 날"로 묘사되며, 온 땅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 떨게 될 것입니다.

_보편적 심판과 하나님의 질투 : 하나님은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온 세상, 즉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온 인류에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 심판의 궁극적인 수단은 "나의 질투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단순한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과의 언약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며, 우상 숭배와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거룩한 속성입니다. 이 질투의 불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진노이자 심판의 강력함을 상징하며, 온 땅을 소멸시킬 것입니다. 이는 마치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이 창조 이전의 혼돈으로 돌아가는 '역창조' 사건이었듯이, 온 땅의 전멸을 예고하는 우주적 차원의 심판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주의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할 최종적인 심판과 구원의 날로 강조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베드로후서 3:10). 불과 같은 심판은 악한 자들을 완전히 멸절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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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가정 :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준엄하고 보편적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가볍게 여기시지 않으며, 당신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불순종하면 심판하십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주시는 경고들을 무시하거나,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헛된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안과 번영이 혹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얻은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기다리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불순종과 죄악을 미루지 않고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교훈을 받아들이며, 공의를 실천하는 적극적인 회개의 삶을 의미합니다. 가정에서 죄악을 방치하거나 불의에 눈감는다면,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비추어 내 죄를 보고, 고집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공동체/세상 : 교회는 세상의 강한 권력과 교만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진정한 힘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위세 앞에 위축되지 않고, 영적인 삶의 주도권을 세상에 내주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의와 압제를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질투를 기억하고, 그분의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동시에,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음을 알리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초청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죄악을 비판하면서도, 스스로는 순결하고 거룩하며 공의로운 공동체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탐욕과 이기심,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이 결국 하나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될 것임을 믿고, 오직 주님만을 경배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로서, 깨어 정신을 차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6),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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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온 세상의 주관자이시며 공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스바냐 3:1-8 말씀을 통해 

패역한 예루살렘의 죄악과 

그에 대한 주님의 준엄한 진노를 깊이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불순종과 교만, 불의함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저희의 마음과 삶이 주님의 명령과 교훈에 귀 기울이지 않고, 

주님을 의뢰하지 않으며, 

가까이 나아가지 않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힘과 쾌락을 좇아 주님을 버렸던 저희의 죄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저희가 이제 주님의 공의로우신 말씀 앞에 겸손히 서서, 

돌이켜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진노의 날이 임박했음을 기억하며, 

깨어 경성하고 주님만을 경외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저희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의 불의에 맞서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굳건히 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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