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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09:1-34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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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9장은 족보의 결론으로서 바벨론 포로로 인해 흩어졌던 백성들이 돌아와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된 내용을 다룹니다. 특별히 레위 사람, 제사장, 문지기 등 성전 봉사의 역할이 강조되며, 포로 이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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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절 하나님은 묵은 땅을 기경하여 새롭게 하십니다. 

이 단락은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었으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9:1). 포로 이후 돌아온 백성들 중 일부는 본래의 유산을 따라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되었고(9:2-3),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 자손들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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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족보의 재정리는 단순한 계보 확인을 넘어서, “회복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포로기라는 심판 이후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셨고, 새롭게 이 땅을 일구게 하셨습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혼돈 가운데 질서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연상시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다시 사명을 따라 회복되는 장면은 하나님의 언약이 결코 끊기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죄로 인해 흩어진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거룩한 삶의 터”로 세우십니다.

이 단락은 이스라엘 전체 족보의 정리를 마무리하며, 바벨론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자들의 정착 상황을 소개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계보대로 계수되었으니"라는 표현은 단순한 행정 목적의 인구 조사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상징적 선언입니다. 계보의 기록은 단절되었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영적 이정표입니다.

포로 귀환은 단순한 민족 부흥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정착한 이들은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로 대표되는데, 이는 남유다 중심의 귀환이었지만 북이스라엘의 일부 지파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분열되었고 멸망했지만, 하나님은 다시 ‘온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으로 그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이는 이사야서(사 11:12)와 에스겔서(겔 37장)에서 예언된 온 이스라엘의 회복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단지 과거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가는 백성의 신앙적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새롭게 세워지는 과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묵은 땅’을 기경하시는 분이며, 심판 이후에도 반드시 회복을 계획하십니다. 이 회복은 죄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회개를 전제로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레 26:40-4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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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회와 성도들도 팬데믹이나 상실, 분열의 아픔 그리고 국가적 계엄과 탄핵 정국의 혼돈 이후 ‘새롭게 정비된 자리’에서 다시 첫걸음을 내딛는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회복과 재건의 하나님을 통해 시작됩니다. 우리 삶의 황폐한 자리에도 “다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음을 믿고, 거룩한 회복의 자리에 자신을 내어 맡기길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각자의 위치에서 제역할에 충성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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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6절 하나님은 지도자들이 군림이 아니라 섬김에 솔선수범하길 바라십니다. 

이 단락에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제사장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성소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로 구별됩니다(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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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은 단지 제사의식을 집행하는 직무자가 아니라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대속과 중재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수고는 하나님 앞에 엎드린 섬김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름을 열거하면서도 강조점은 ‘그 직무를 충실히 감당한 자’에게 있습니다(9:13, “그 조상들의 집에 우두머리가 된 자요... 큰 용사더라”). ‘큰 용사’는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 성전 봉사의 헌신자였습니다.

이 부분은 제사장들, 곧 아론의 후손들이 다시 성전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제사장직의 회복은 단지 제도의 재개가 아니라 ‘거룩한 질서의 복원’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인해 중단되었던 성전 제의와 제사장 직무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다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성경에서 제사장은 단순한 의식 집행자가 아니라, 백성의 죄를 하나님께 중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레 10:11 참조). 특히 ‘직무를 힘써 행한 자’라는 표현은 단순한 출석 체크가 아닌, 사명 의식과 헌신을 강조합니다. ‘큰 용사’로 불리는 제사장들은 육체적 힘의 용사가 아니라 영적 전선에서 백성을 위해 싸우는 ‘중보적 전사들’이었습니다. 예컨대 사무엘(삼상 7:9)이나 아론(민 16:46-48)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공동체의 생명을 지켜낸 인물들이었습니다.

또한 이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자들’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면 교회의 사역자들, 목회자들, 중직자들이 맡은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의 지도력은 명령이나 권위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과 책임, 백성에 대한 사랑의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단락은 목회자와 리더, 혹은 가장과 교사 등 다양한 위치에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외형의 권위보다 내면의 정결과 헌신을 보십니다. 오늘날 리더십은 군림이 아니라 ‘먼저 무릎 꿇는 자’로서의 모범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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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 지도자 역시 권력이나 지위로 사람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성도와 공동체를 대신하여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무릎 꿇은 섬김’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지도자된 자가 ‘섬김으로 먼저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섬김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이들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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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7절 하나님은 세밀한 부분까지도 거룩을 지키길 원하십니다. 

문지기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막 문들을 지키는 자’로서 위임되었고, 조를 따라 성전 문을 맡았습니다(9: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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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는 단순한 관리인이 아니라 ‘성소의 거룩함을 지키는 수문장’입니다. 그들은 성소의 출입을 감시하고, 제사장과 백성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경건한 태도를 유지하는 질서의 수호자였습니다. 특히 “아침마다 그 문을 열었다”(9:27)는 표현은 일상의 반복되는 충성과 성실함을 뜻합니다. 그들은 감정이 아니라 질서와 정직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 단락은 성전 문지기들의 직무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문지기는 오늘날로 말하면 단순한 경비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장소를 지키는 거룩의 파수꾼이었습니다. 이 직책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도 확인되듯이, 하나님의 임재를 범속함으로 더럽히지 않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직무였습니다(민 3:38).

특히 성전은 ‘구별된 장소’이며, 거기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고, 일반 백성은 정결함을 갖추어야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문지기는 이러한 구분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자로서, 거룩과 속됨의 경계선상에서 봉사하는 자였습니다. 그들은 시간표에 따라 문을 열고 닫으며, 출입을 통제하며, 각 기물과 장소의 청결과 정돈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아침마다 성전 문을 열었다’는 표현은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지키는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거룩은 바로 이처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헌신’을 통해 유지됩니다. 시편 84편의 고라 자손도 “주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보다 낫다”고 고백하며, 하나님 임재 가까이서 섬기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깁니다(시 84:10).

이 단락은 우리 일상 속에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깨어 있고 경건한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반복되는 일과와 섬김 속에서 우리는 ‘예배로 들어가는 문’을 매일 여는 자인가, 아니면 습관 속에서 거룩을 잃고 있는 자인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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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에서 반복되는 작은 충성,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며, 자리를 정결하게 하는 일도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일입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거룩함의 경계’를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자원하며 감당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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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34절 하나님은 다양함 속의 질서를 기뻐하십니다. 

이 단락은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의 구체적인 직무 분장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그릇을 맡기도 하고(9:28), 향품을 관리하고(9:29-30), 찬송하는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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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들의 일은 결코 획일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향을, 어떤 이들은 떡을, 어떤 이들은 기구를, 또 어떤 이들은 찬양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질서 정연한 하나님의 예배’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찬송하는 자들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주야로 그 직무에 전념하였다”(9:33)는 말은 ‘한 몸 된 교회’가 다양한 은사를 따라 섬기는 공동체임을 드러냅니다.

이 단락은 레위인들이 감당한 다양한 역할과 질서 정연한 봉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전 봉사는 다양한 기능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는 공동체의 다양한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릇을 관리하고, 어떤 이들은 거룩한 기름이나 향을, 또 어떤 이들은 진설병이나 기악 찬양을 맡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역할이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질서 있게 배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질서한 자발성이 아니라 ‘구별된 직무와 질서 속의 연합’으로 세워집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2장과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이 교회를 향해 설명한 ‘한 몸과 여러 지체의 원리’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레위인들의 섬김은 제사만큼이나 중요했고,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하나님 앞에 기억되었습니다. 특히 찬양하는 자들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주야로 찬양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9:33)고 기록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영적 분위기를 창조하는 예배 사역의 중요성을 말해 줍니다.

이 장면은 현대 교회에서도 음악 사역, 재정 관리, 시설 봉사, 교육 사역 등 모든 부서와 역할이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예배는 단지 찬양과 설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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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역할은 다양하지만,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예배를 위해 존재합니다. 나의 자리, 나의 사역, 나의 헌신이 비록 남들보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기에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질서 있는 다양성은 교회의 건강함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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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주님, 

우리가 속한 자리와 이름이 바뀌었어도 

주님의 백성으로 다시 세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폐허와 단절의 시간을 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처럼, 

우리 인생의 모든 돌이킴에도 

회복의 기회를 허락해 주심을 찬양합니다.
섬김의 자리를 귀하게 여기며,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문지기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자 되게 하옵소서. 

다양함 속에 주신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고, 

우리 안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주님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섬기게 하소서.
예배를 향한 마음, 주님의 임재를 향한 갈망이 

우리의 중심에 놓이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날마다 정결하게 걷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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