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01:01-25 불임에서 잉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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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하여 저술하게 된 목적을 기술합니다. 이어서 요한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 사가랴(스가랴)와 엘리사벳(엘리자베스)를 통해 기술합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많았으나 기도하던 중에 천사를 통해 잉태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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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알게 해 줍니다.
누가는 우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기록했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직접 본 사람들과 말씀의 일꾼된 이들이 전해준 그대로 말입니다. 하여 누가도 오랫동안 모든 것을 살펴보면서 데오빌로 각하를 위해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기록한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역사 이야기이면서 데오빌로에게 보낸 편지와 같고, 누가가 보고 듣고 수집하고 알게 된 전집과 같은 책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많은 이들이 보고 듣고 전해 준대로 증언했고, 기록했고,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도 그렇게 보고 듣고 전해 준대로 수집한 자료들을 차례대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오늘 우리가 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고, 우리 각자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살고, 말씀을 삶이 되게하는 우리의 여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창조하고, 살게하고, 인도하며, 역사하고, 열매맺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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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7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의 계명과 규례를 행하는 의인이 됩니다.
사가랴(스가랴)와 엘리사벳(엘리자베스)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삶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고 있는 삶의 열매를 통해 증거됩니다. 두 사람이 나이가 많았으나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반열을 따라 성전에서 직무를 행하던 중에 사가랴는 기도하는 중에 주의 사자를 통해 엘리사벳의 잉태에 대한 소식과 요한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큰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의 삶이 구별된 삶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의 백성을 준비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우리가 의를 얻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믿고, 율법과 규례를 행하고 열심을 내서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주의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택하시고 새롭게 하셨기에 의인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던 중에 주의 사자도 먼저 와서 사가랴에게 잉태의 소식과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는 예언을 듣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요한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되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새 백성을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를 얻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아무런 공로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 우리를 새백성으로 만들어 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사 먼저 손내밀고, 준비하시고, 택하시고, 세우시며, 새롭게하사 새백성으로 삼아 오늘 우리가 의인으로 주의 율례를 따라 즐거이 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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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실존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이방인과 같은 소외된 자입니다. 곧 더이상 생산할 수 없는 불임으로 살아갈 소망이 없는 실존 현실에 처한 상태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방도가 없던 가난한 자, 병든 자, 귀신들린 자였음을 인정해야합니다.(성경은 이 모든 이들을 통틀어 소외된 자 혹은 가난한 자라 말합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소망 없는 우리에게 마침내 주님이 오셔서 고아에게 부모를, 과부에게 신랑을, 나그네에게 본향을, 이방인에게 거룩한 백성됨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과 치유, 해방과 채우심의 축복을 주신 예수사건이 복음(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소외된 이들을 각별히 잘 대접하고 챙겨서 이스라엘의 실존과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하셨고, 신약에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친구되어 주시며 함께 먹고 마시므로 천국잔치를 맛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자들의 천국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세워가셨습니다.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에는 소외된 이들이 모든 것을 회복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존을 깨닫고, 복음이 복음되는 삶을 누리고 살며 또 전파하며 많은 이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수치와 부끄러움과 소외되어 죽을 수 밖에 우리를 주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불임과 불가능의 태를 열어 생명을 잉태하게 하사 소망을 열어가시는 역사는 오직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로만 가능하며, 그 성령으로 충만한 이가 많은 이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이 한해 소외된 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런 자로 살아가며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고, 이 복음을 소망없이 살아가는 또 다른 소외된 자들에게 전하는 성령충만한 자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로, 주님이 꿈꾸시는 교회로, 성령님이 춤추시는 교회로 세워져 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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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5절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를 없게하시고 돌봐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가랴는 아내의 잉태에 대한 얘기를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하나님께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보냄 받았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가랴가 믿지 못했기에 일정기간 말을 못하게 합니다. 백성들은 그런 사가랴가 성전에서 환상을 본 줄로 알고 귀가하게 합니다. 결국 약속대로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하고 숨어 있다가 그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는 5개월이 되어서 불임의 수치를 없게 하시고 드러나게 하도록 주님이 돌봐주셨다고 엘리사벳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좋은 소식(복음)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영접과 의식 곧 거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임을 사가랴가 깨닫게 될 때까지 하나님은 태의 문을 여시나, 사가랴의 입은 말을 못하게 막으십니다. 이 모든 일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된 것임을 사가랴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환상을 본 줄로 오해하나, 오직 사가랴만이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인 줄 믿고 귀가하게 됩니다. 마침내 엘리사벳이 모두가 알 수 있게 잉태합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돌보심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대 불임은 수치였으나, 하나님은 엘리사벳의 수치를 가리고 잉태에 대한 축복으로 그를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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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 있음을 믿습니다. 불가능한 현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복음이 실제적으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복음이 성취되는 날에 우리는 부끄러움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부족해 보인다 하더라도, 또한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이 손해와 조롱과 비웃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주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날이 되면 하나님은 복음으로 인하여 당한 비난과 모멸과 비웃음 당한 모든 수치를 면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가 주님의 면전에 있음을 알고 낙망치 않으며, 여전히 주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것이며, 복음 곧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의 통치가 나를 다스리시고 안위하실 것이니 마침내 그 날이 오면 모든 슬픔과 수치와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을 믿으며 나아갑니다.
사가랴는 주님의 면전에 있던 가브리엘이 전한 좋은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여 말 못하게 되었지만 그 오랜 침묵의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똑똑히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말 못하는 모습을 보고서 환상을 본 것으로 곧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이제 불임에서 잉태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침묵에서 응답으로의 경험들을 통해서 가브리엘을 통해 전해 준 “좋은 소식”이 자신들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하고도 믿지 못한 어리석음에서 떠나 하나님의 응답을 신뢰하며 깨닫고 마침내 모든 수치를 면하게 될 그날 까지 사람들의 시선보다 주님의 면전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약속이 성취되는 때와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을 기다릴 수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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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에게 말씀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의 묵상을 통해 우리 삶도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서의 삶
의인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써가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더욱 힘써 온전히 알아가기 원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일을 쉬지 않게해 주옵소서.
불임같은 우리, 우리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손내미시고, 말씀해 주시고
잉태하게 하셔서 주의 백성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에 합당하게 주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수치를 벗게해 주사 성령의 충만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우리를 날마다 돌아보시는 주님을 따라
주의 말씀을 증거하고, 새백성답게 살겠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면전에 있음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