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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03:01-07 교회를 온전케 하는데 필요한 일꾼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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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함께할 일꾼을 세울 때에 필요한 자격요건들을 언급합니다. 먼저 감독(장로)의 내면적, 가정적, 전통적, 사회적인 자격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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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감독(장로)의 자격이 언급되는 이유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가는 일이 디모데 한 사람 만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협력해 나갈 때 가능한 일이기에 먼저 남녀(남편과 아내)에게 권면하고(2:1-15), 공동체에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감독, 장로)를 언급한 것입니다. 목회서신 전체를 통해서 바울 사도가 그려주는 교회 정치는 장로회 체제로서 복수의 지도자들이 함께 하는 공동 지도력 체제를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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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감독(장로)의 직분은 생명을 담보할 만큼 해산의 수고와 순교적 자세를 요구하는 일입니다. 

여인들(아내)의 해산의 수고 만큼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는 것을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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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가르침들이 난무하고 당대 교회를 향한 핍박이 예상되는 가운데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가는 일은 때로 사회적인 고립과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돌보고 섬기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고자 하는 이들은 이러한 위험을 감내하면서 기꺼이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겠다는 다짐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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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장로)의 직분은 희생과 헌신, 자기부인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섬기고 나누고 베풀며 돌보는 자리입니다. 때로 그 수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오해하면서 비난받는 상황 속에서 주님마저도 침묵하는 것 같은 외로운 싸움을 해 가야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그런 감독(장로, 지도자)의 자리가 십자가는 없고 영광만 취하려는 이들로 말미암아 권위도 떨어지고 사모함도 희미해져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로 보기 어려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그런 자리에서 나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충성과 열매에 대한 영광중에서 무엇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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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절 감독(장로)은 먼저 내면적인 면에서 됨됨이가 갖춰진 자여야 합니다. 

감독(장로)은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 신중,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와 다툼이 없고, 관용하며 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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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의 신앙적인 부분에 대한 자격 요건은 본문의 감독 자격 요건에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오랜 신앙 가운데서 이미 믿는 자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역으로 신앙보다 먼저 인간 됨됨이가 더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가 언행일치되는 이여야 할진대, 이러한 인간 됨됨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에야 비로소 갖춰질 수 있다고 한다면 내면적인 됨됨이에 대한 언급은 기본 신앙을 전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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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내면적인 부분들에 대한 소극적, 적극적 자격 요건들은 자신을 먼저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하나 지도자에게 있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면서, 하나라도 범하는 날에는 다른 모든 것과도 연관이 되어 있기에 세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한다는 부분들은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가르침에 대한 부분은 바울 사도가 감독(장로)의 자격요건에서 매우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은 말씀으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지도자에게 가장 핵심적인 조건입니다.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일도 아니고 오랜 시간동안 이런 자격요건을 가진 사람으로 빚어져가고 연단되고 훈련되어져서 만들어진 사람이 마침내 공동체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일꾼으로 세워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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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간이 되고 신학자가 되고 성자(聖者)가 되고 전도자(傳道者)가 되고 목사(감독, 장로)가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전한 인간,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바른 정체성을 찾고 그의 삶의 내용과 방향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사람, 새 피조물로 거듭난 자라야 비로소 갖춰질 수 있습니다. 이미 감독(장로)이 된 자는 일평생 이러한 부분들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하며, 앞으로 되어갈 자, 사모하는 자는 역시 이러한 요건들의 자신의 삶의 내용으로 잘 채워지도록 관리해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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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절 감독(장로)은 가정을 잘 돌보고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독(장로)은 가정을 잘 돌봐서 자녀들이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가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하나님의 교회도 잘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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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모습은 부모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됩니다. 외부에서 보여지는 가면을 쓴 모습이 아니라 가정에서는 적나라하게 그 본색이 자녀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의 언행심사에는 부모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잘 돌보는 자는 이미 그의 내면이 갖춰진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인정받고, 자녀를 잘 양육해 가는 이가 주님의 몸된 교회의 가족들도 동일하게 잘 돌보고 양육해 갈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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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 사는 교회 지도자들을 볼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자녀들의 모습에서 불쑥불쑥 나의 가장 싫은 모습이 닮아진 것을 볼 때마다 뜨끔해지고 부끄러워집니다. 자녀에게 하는 모습이 결국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관심과 돌봄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허락하신 가족들을 특히 주님의 기업인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사랑과 인내와 기도로 잘 돌보는 자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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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절 감독(장로)은 연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한 자여야 합니다. 

감독(장로)은 입교한지 얼마 되지 않는 자가 되면 교만해 져서 자고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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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長老)는 말 그대로 나이와 연륜이 있는 자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삶의 연륜과 경험, 하나님을 아는 부분과 주의 말씀에 대한 능력들을 두루 겸비한 자라야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가정과 교회를 바르게 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없는 이가 지도자가 된다면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알량한 권력의 맛에 군림하려 하고 마침내는 자고하여 교만해 지게 되어서 자신 뿐 아니라 공동체도 함께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입니다. 디모데는 비록 나이가 어린데도 감독(장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훈련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와 디도와 같은 사람이 오늘날 목사(성경에 ‘목사’에 대한 표현은 없습니다. ‘목사’로 번역된 단어는 ‘목자’로 번역 하는 것이 맞습니다)의 모델로 적합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무장로와 치리장로로 구분한 장로회의 규례들은 바울사도가 제시한 제도를 교회 전통 가운데서 편리에 의해 구분해 버려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목회서신에서 언급하는 감독(장로)은 오늘 목회자와 같고 어린 디모데와 장로의 차이는 풀타임이냐 이중직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둘 다 중요한 자격은 가르침에 능한 자여야하고, 이 가르침은 말씀위에 바로 세워진 전인격적인 자격이 갖춰진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장로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러한 직제에 대한 부분들을 다시한번 점검하고 바른 장로회 조직을 회복하고 자격을 갖춘 장로들이 함께 공동의 지도력을 가지고 교회를 돌보는 체제로 개혁되고 회복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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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어느새 겸손함을 잃고 교만해 지는 순간 그는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귀가 정죄하는 그 정죄는 결국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며 주인이신데 자신이 지도자로서 군림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있어서 왕노릇 하려는 모습이 교만이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연륜과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이들은 이러한 유혹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지도자로 세우는 일은 삼가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과 분수를 잘 아는 자만이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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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절 감독(장로)은 세상에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합니다. 

감독(장로)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자신과 교회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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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과 아는 것과 행하는 일이 하나가 되는 온전한 사람이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동일한 행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에서의 모습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신앙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세상과 달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생각하는 것보다 못한 윤리와 이기적인 행태와 이중적인 모습들로 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비방 뿐 아니라 마귀의 올무 곧 하나님을 시험하고 이용하고 수단화 하는 신앙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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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실추된 교회의 권위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혐오와 비난 받는 것들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신행불일치된 모습이 결국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비난과 혐오 그리고 실취된 부분들을 만회해 가기 위해 선한 증거를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 역시 한 두 사람의 지도자로 다 될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이들을 찾아 세우시고 교회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먼저 발견하고 깨닫고 아는 이들이 깨어 일어나서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세우는 노력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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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과 긍휼과 사랑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한 일을 사모하는 지도자로 서게하시고

그런 일꾼들이 많이 세워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작은 일에서부터 신실함으로 채워서

오랜 시간동안 준비되고 양육되고 온전함으로 세워진 이들이

또한 많이 세워질 수 있는 교회되게 하옵소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로부터 인정받는 리더로 설 수 있도록

언행심사에 신중함을 길러가게 하옵소서

연륜과 경험과 지식에 있어서도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통해서

신실한 지도자들이 세워질 수 있게 하옵소서

교회와 세상에서 변함없는 신실한 자로

온전한 자로 서게 하옵소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가기 위해

이렇게 준비된 일꾼들을 잘 양육하고

또 주님이 예비하신 일꾼들을 보내 주시옵고

우리를 빚으시는 그 손길에

속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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