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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05:07-12 인내 속에 영글어 가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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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하고 불러 세우며 편지의 마지막 결론으로 들어섭니다.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명하고, 귀한 열매를 바라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를 그 본으로 세웁니다(7-8절). 기다리는 동안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심판주가 이미 문 밖에 서 계신다고 일깨웁니다(9절). 이어 고난 속에 오래 참은 선지자들과 욥을 불러내어, 그 결말에서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을 보라고 합니다(10-11절). 그리고 무엇보다 맹세하지 말고 그렇다 아니라만 진실하게 말하라고 당부하며 마무리합니다(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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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지를 받은 흩어진 열두 지파는 낯선 도시와 들판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땅을 잃고 남의 밭에서 품을 팔았고, 바로 앞 단락에 나온 부자들에게 삯을 떼이고 법정으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다시 오심은 막연한 교리가 아니라 억울함이 풀리고 눈물이 닦일 날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기대만큼 빨리 오지 않았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낙심과 원망이 공동체 안을 파고들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그날이 왔다고 외치며 성도들을 흔들었고, 어떤 이들은 끝내 오지 않을 것이라며 손을 놓았습니다. 야고보는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형제들을 붙들어 세우려고 이 마지막 권면을 씁니다.

# 이 단락에는 산상수훈의 목소리가 거의 그대로 울립니다. 주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 하시며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0-12). 또 도무지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4-37). 야고보는 선지자와 맹세라는 두 주제를 주님의 그 말씀에서 길어 올립니다.

# 어제 본문은 내일을 장담하던 상인과 녹슬도록 재물을 쌓은 부자들을 꾸짖으며, 떼인 삯의 부르짖음이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다는 선언으로 끝났습니다. 오늘 본문의 그러므로는 바로 그 억울한 자리에 선 형제들에게 돌아섭니다. 부자들에게는 통곡하라 하던 목소리가 가난한 성도들에게는 길이 참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편지 첫머리의 시험과 인내라는 주제가 여기서 다시 돌아와 편지 전체를 둥글게 감쌉니다. 1장에서 지혜를 구하는 기도와 말씀을 행하는 삶을 말했던 것처럼, 결론에서도 인내 다음에 말과 기도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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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절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으라

성부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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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하고 부른 뒤,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보라 하며 한 농부를 가리킵니다. 농부는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길이 참습니다. 야고보는 너희도 그렇게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다시 명하고, 그 까닭으로 주의 강림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듭니다(7-8절). 명령, 본보기, 다시 명령, 그리고 이유가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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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참으라로 옮긴 말은 길다는 말과 숨 또는 노여움을 뜻하는 말이 합쳐진 낱말입니다. 노여움이 끓어오르기까지의 거리가 길다는 뜻이니, 고통을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보다 성급하게 보복하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내게 닥친 고통을 두고 하나님이 무력하시다고도, 내 죄의 결과라고도, 심지어 나를 연단하시려는 손길이라고도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되 하나님은 결코 이 일에 무기력한 분이 아니시라고 고백하며 더 지켜보는 용기, 그것이 길이 참음입니다. 앞 단락을 떠올리면 그 대상이 분명해집니다. 우리를 말로 비방하고 돈과 권력으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 앞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되갚지 않는 것입니다.

농부의 그림은 이 편지를 받은 이들에게 매우 구체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 농부는 넓은 땅을 가진 지주가 아니라 아껴 둔 씨를 뿌리고 부족한 양식으로 추수 전 몇 주를 배고프게 버티는 작은 농부입니다. 한 해 농사에 온 식구의 목숨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른 비는 가을 파종 무렵 굳은 땅을 적셔 씨가 싹트게 하고, 늦은 비는 봄 추수 직전에 내려 알곡을 여물게 합니다. 이 두 비는 모세가 약속의 땅을 앞둔 백성에게 하나님이 때를 따라 주시리라 약속한 비였습니다(신 11:14). 귀한 열매로 옮긴 말은 성경에서 보석이나 왕관에 쓰이던 말인데, 여기서는 땅에서 나는 곡식에 붙었습니다. 기다림 끝에 얻는 열매가 그만큼 값지다는 뜻이고, 우리가 견디는 시간이 결코 헛수고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열매는 야고보가 편지 내내 말해 온 것, 곧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사람과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는 말은 먼 길을 떠날 사람이 힘을 얻는다는 뜻으로도 쓰이던 말입니다. 1장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마음, 두 마음과 정반대 자리에 선 마음입니다. 그러니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김을 매고 돌을 고르며 마음을 정하는 능동의 시간입니다.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에서 가깝다는 말은 완료형으로, 그날이 이미 다가와 문턱 가까이에 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고, 이 종말의 소망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 가운데서도 견딜 힘을 줍니다. 막연한 인내가 아니라 약속을 바라보는 인내이기에 우리는 마침내 그 열매를 볼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비는 농부가 부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내리십니다. 그래서 인내는 결국 우리의 근력이 아니라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는 아버지의 신실하심에 기대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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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씨를 뿌린 뒤 곧바로 싹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인생 여정도 힘들고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생기는 환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금세 좋아지는 것도 없고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여정이 늘 그렇습니다. 마음을 굳건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세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비를 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붙들면 오늘 할 수 있는 수고를 다하고 나머지는 맡길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나 자신의 변화와 성숙, 자녀의 양육, 가정의 화평, 일터에서 기다리는 결실 모두 그 열매가 아직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붙잡고 오늘 뿌려야 할 인내의 씨앗들을 묵묵히 뿌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것, 기도를 쉬지 않는 것,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밭을 지키는 농부의 몫입니다.

우리교회도 성도들의 성장과 삶, 교회와 세상의 화평이라는 열매를 기다립니다. 조급하게 숫자로 열매를 판단하지 않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함께 밭을 지키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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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절 서로 원망하지 말라

성자 예수님은 문 밖에 서 계신 심판주로서 우리의 말을 들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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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다시 형제들아 하고 부르며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할 것이라고 이유를 붙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보라와 함께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신다고 일깨웁니다(9절). 길이 참으라는 명령 바로 뒤에 원망하지 말라는 명령이 놓인 것은 기다림이 길어질 때 무너지는 첫 자리가 공동체 안의 말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밖의 고난이 안의 분열로 번지지 않게 하려는 당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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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으로 옮긴 말은 본래 신음하다, 한숨 쉬다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이 말은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고 우리가 속으로 탄식한다는 로마서의 말씀에도 쓰였습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신음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욥과 시편 기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탄식했습니다. 문제는 서로를 향하여라는 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올려야 할 탄식이 곁에 있는 형제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갈 때 그것은 원망이 됩니다. 어려움이 겹칠수록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웃을 향해 분노하며 그 불만을 하나님을 향한 불평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4장에서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했던 권면이 여기서 다른 말로 다시 울립니다.

이 원망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를 성경은 광야의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 줍니다. 그들은 매일 내리는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 부르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고, 그 원망은 결국 광야에서 쓰러지는 길이 되었습니다. 원망은 인내를 포기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말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말이며,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없을 때 나오는 말입니다.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주님이 붙여 주신 사람이니 이렇게 되었다고 비난의 화살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쏟아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동체의 화평이 깨지면 고난을 함께 견뎌야 할 손이 서로를 밀어내는 손이 됩니다.

야고보는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다는 말로 이 경고를 무겁게 합니다. 서 계시다는 말도 가깝다는 말처럼 완료형이어서, 심판의 날이 이미 문지방 앞까지 왔다는 그림을 그립니다. 앞뒤 문맥에서 이 심판주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을 말씀하시며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셨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문 밖의 주님은 위협이기 이전에 초대입니다. 그분이 문을 두드리실 때 원망을 내려놓은 손으로 문을 열 수 있어야 합니다. 원망을 들으시는 분이 문 밖에 계시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의 억울한 신음도 그분이 다 듣고 계신다는 위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를 심판하는 자리를 그분께 맡겨 드리고 서로를 붙드는 자리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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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둘러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보면 만족함이 없고 불평과 원망의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내 곁에 붙이신 것도 나를 연단하고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계획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소망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의 원망은 대개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합니다. 가정에서는 기대만큼 자라지 않는 자녀나 내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에게, 일터에서는 느린 동료나 버거운 윗사람에게 한숨이 먼저 갑니다. 그럴 때 그 한숨을 사람에게 쏟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탄식은 기도가 될 수 있지만 원망은 기도를 막습니다.

내 마음에 상처가 되어 원망하던 가족과 교회와 세상의 일들 가운데에도 변함없이 주님의 동행과 인도와 계획하심이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어려울 때 서로를 탓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짐을 지는 공동체, 문 밖에 서신 주님 앞에서 원망 대신 격려의 말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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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절 선지자들을 본으로 삼으라

성령 하나님은 고난의 긴 밤 끝에 자비와 긍휼의 결말로 이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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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또 형제들아 하고 부르며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보라 하며 우리가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한다고 말합니다. 이어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고 하며,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라는 고백으로 단락을 맺습니다(10-11절). 농부의 그림에서 시작한 인내가 선지자와 욥이라는 살아 있는 얼굴로 옮겨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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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오래 참음은 두 낱말이 하나의 뜻을 이루는 짝말입니다. 고난이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오래 참음은 그들이 그 일에 응답한 방식입니다. 그러니 본받을 것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고난 아래서 끝까지 견딘 그들의 모습입니다. 선지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말한 사람들, 곧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왕과 제사장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버릴 때 말씀으로 그 앞에 섰고, 그래서 언제나 핍박과 회유를 당했습니다. 엘리야는 쫓겨 다녔고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던져졌으며 에스겔은 아내를 잃고도 곡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하는 말씀과 사는 삶이 하나였기에 그 메시지는 살아남았고 그들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았습니다.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한다는 말은 주님이 산 위에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여기서 인내로 옮긴 말은 1장에서 시험이 만들어 낸다고 한 바로 그 인내이고, 편지는 처음과 같은 낱말로 끝을 맺으려 합니다. 이 복을 받기에 필요한 것은 거대한 업적이나 감동적인 설교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욥을 본으로 든 것은 조금 뜻밖입니다. 욥기를 읽어 보면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거칠게 따져 묻습니다. 그러나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 없음은 아닙니다. 욥은 울부짖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신뢰만은 버리지 않았고, 아니 신뢰했기에 하나님께 울부짖을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로 옮긴 말은 끝 또는 목적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결말은 갑절로 회복된 재산과 자녀만이 아닙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자식을 두 배로 주었다고 그것이 고난의 보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욥이 받은 가장 큰 결말은 귀로 듣기만 하던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뵙게 된 것, 하나님과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관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결말을 통해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가장 자비하시다는 말은 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 낱말로, 속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자비가 넘치도록 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시험에 내어 주고 멀리서 지켜보신 분이 아니라 그 고통에 함께하시며 끝내 선을 이루신 분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고난 속에 있는 우리 안에서 탄식하시며 그 자비의 결말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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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허다한 선지자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오래 참음으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은 자녀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어느 때고 삶이 편하거나 신앙생활이 편했던 적은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여정은 본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겪느냐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정에서 오래 기도해 온 일이 있다면, 일터에서 견디기 힘든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를 욥이 앉았던 잿더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자리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목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리 눈에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보호하심과 계획하심이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고난을 함께 지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더 깊이 아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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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무엇보다 맹세하지 말라

삼위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예와 아니오를 참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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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하고 부르며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라고 명합니다.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고 당부합니다(12절). 길이 참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말한 뒤 이제 그 사람의 입술이 어떠해야 하는지로 권면이 옮겨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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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라는 말은 편지를 맺을 때 흔히 쓰던 표현으로, 이제 결론의 마지막 권면들이 시작된다는 표지입니다. 맹세 자체는 구약에서 금지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도 맹세하셨고 바울도 하나님을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너무 가볍게 맹세하는 일이 이스라엘 안에 이미 오래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으려고 하늘이나 땅을 걸고 맹세하는 편법을 썼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여긴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꿰뚫어 보시고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그의 발등상이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야고보의 이 말씀은 그 주님의 가르침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편지 전체에서 주님의 말씀에 가장 가깝습니다.

왜 이 권면이 인내와 원망 다음에 놓였을까요. 고난이 길어지면 사람은 두 가지 극단으로 기웁니다. 하나는 서로를 원망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해내겠다, 잘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말입니다. 간혹 만용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탐욕과 욕망을 비전이라 부르며 맹세하고, 어려움을 넘기려고 임기응변으로 맹세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런 맹세에 하나님의 이름과 성경을 끌어들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이 아니라 내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떨어뜨리는 줄도 모르고 교만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4장에서 주의 뜻을 묻지 않고 내일을 장담하던 상인들의 말과 같은 뿌리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듣지 않고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서는 일이고, 지키지 못할 때 그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맹세를 덧붙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말을 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는 그렇다로, 아니라는 아니라로 충분한 사람은 말과 삶 사이에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1장의 두 마음과 3장의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문제와 이어집니다. 말이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는 사람은 마음도 갈라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진실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말이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예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예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도 맹세의 무게를 빌리지 않고 정직한 예와 아니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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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인은 우리 자신의 정체를 바로 알 때 겸손히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바로 알게 되고, 그 실존을 아는 순간 우리가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 사람은 큰소리로 장담하지 않습니다. 맹세의 무게가 아니라 매일의 신실함으로 자기 말을 증명합니다.

나의 말을 돌아봅니다. 가정에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쉽게 하지는 않았는지, 일터에서 내 말에 무게를 싣기 위해 과장하거나 부풀리지는 않았는지 살핍니다. 신앙의 언어로 내 욕심을 포장하지는 않았는지도 돌아봅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허락하신 일을, 해야 할 일을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감당해 가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우리교회가 말보다 삶으로 신뢰를 얻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인내와 원망 없음과 진실한 말의 능력은 결국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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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는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씨를 뿌리고도 싹이 더디 오를 때

조급함으로 밭을 갈아엎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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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하며 맹세하던

경거망동하는 신앙에서 벗어나

그렇다는 그렇다로, 아니라는 아니라로

진실하게 말하는 입술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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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럽게, 성급하게 이루려는 마음으로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문 밖에 서신 주님 앞에서

서로의 짐을 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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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들이 걸었던 오래 참음의 길을 본받아

믿음의 여정을 변함없이 걷게 하시고

욥에게 주신 자비의 결말을

우리 삶에서도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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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을 소망으로 품고

주님 주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이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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