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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1-10 기억이라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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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한 세대에서 끊어지는 일은 누군가 하나님을 부인해서가 아니라,
물려줄 이야기를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아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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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첫 주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서늘해지고 낮에는 여전히 볕이 따갑습니다. 이맘때면 광양의 산길에는 예초기 소리가 들립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가는 계절입니다.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조상의 무덤 앞에 서서 풀을 베고, 상석을 닦고,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내려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떤 이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어떤 이는 그저 풀만 베고 돌아옵니다. 같은 무덤 앞에 서도 어떤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살아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흙무덤 하나가 남습니다. 여름을 힘겹게 건너오신 분들, 병상에서 그 여름을 다 보내신 분들,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첫 추석을 맞는 분들, 그리고 자녀와 신앙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세월만 흘려보낸 분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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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도 무덤이 하나 나옵니다.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 여호수아가 묻힌 곳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무덤 이야기를 하고 나서 곧바로 이렇게 적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무덤은 남았는데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땅은 상속되었는데 기억은 상속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낱말은 '기업'입니다. 이스라엘이 물려받은 기업은 땅이었지만, 정작 물려받아야 했던 기업은 따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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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한 사람의 발걸음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삿 2:1).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뒤 처음 장막을 치고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자리입니다. 가나안에서 언약 백성의 삶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곳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령은 이스라엘이 두고 온 첫 자리에서 출발해, 이스라엘이 지금 서 있는 자리로 올라옵니다. 길갈은 요단 하류의 낮은 땅이고 보김은 산지입니다. 원문의 동사도 그냥 '갔다'가 아니라 '올라갔다'입니다. 지리가 그대로 신학이 되는 순간입니다. 잊힌 근원이 지금의 삶을 향해 걸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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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첫마디는 책망이 아니라 회상입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삿 2:1). 하나님은 꾸짖기 전에 먼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야 물으십니다.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했는데,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말입니다. 이 물음은 문자 그대로 옮기면 "네가 행한 이것이 무엇이냐"입니다.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만이 할 수 있는 섭섭한 물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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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세 겹의 선언이 옵니다. 내가 그들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삿 2:3). 첫 번째 선언이 특히 서늘합니다. 쫓아내지 않겠다는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겠다는 말입니다. 막지 않으시는 것이 심판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성경이 거듭 말하는 가장 무서운 진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셨다"는 말을 로마서 1장에서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나날이 실은 가장 깊은 경고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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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백성은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보김, 곧 '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사도 드렸습니다. 통곡이 있었고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합니다. 하나님이 그 눈물을 받으셨다는 말도, 용서하셨다는 말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제단이 하나라도 헐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삿 2:11). 그날의 눈물이 거짓이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짧았습니다. 우리의 회개도 대개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짧아서 열매에 이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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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화자는 갑자기 시간을 되돌립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을 각자의 기업으로 보내던 날로 돌아가, 그 세대가 여호와를 섬겼다고 적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에는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삿 2:7). '사는 날 동안'이라는 다섯 글자가 이 문장의 그늘입니다. 기둥이 서 있는 동안만 지붕이 버텼다는 뜻이니까요. 그들의 믿음은 자기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영성에 얹혀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기대어 선 신앙은 그 사람이 사라지는 날 함께 주저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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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백십 세에 죽었고 '여호와의 종'이라 불렸습니다. 이 호칭은 그전까지 오직 모세에게만 붙던 최고의 명예입니다. 모세의 시종으로 시작한 사람이 죽은 뒤 모세와 나란히 불린 것입니다. 이보다 좋은 묘비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영예로운 묘비 바로 옆에 10절을 붙여 놓았습니다. 가장 신실했던 사람의 무덤과 가장 어두운 세대의 등장이 한 문단 안에 있습니다. 화자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란히 놓습니다. 그리고 그 배열이 우리에게 설교합니다. 한 사람의 신실함은 그 자신의 무덤까지만 간다는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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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알지 못하며'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정보를 가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을 맞대고 겪어 아는 앎이고, 언약 안에서 서로에게 매인 관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 근동의 조약 문서에서 '안다'는 것은 봉신이 종주의 요구를 인정하고 받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새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관계 자체가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성전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절기를 지켰을 것이고 아마 하나님이라는 이름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 뒤에 아무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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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웃음과 망각의 책』을 한 장의 사진 이야기로 엽니다. 눈 내리는 광장에서 지도자가 연설을 하는데, 곁에 섰던 동지가 그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 줍니다. 몇 해 뒤 그 동지는 숙청되었고, 선전부는 사진에서 그를 지워 버립니다. 그러나 지울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도자의 머리 위에 남은 그 모자입니다. 쿤데라는 그 이야기 끝에 이렇게 씁니다. 권력에 맞선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고 말입니다. 사사기 2장 10절은 성경이 기록한 가장 조용한 지움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지우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한 세대가 말하지 않자, 다음 세대의 사진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땅이라는 모자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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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늘 한국교회가 물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남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해 주었는가입니다. 우리는 예배당을 물려주었고 제도를 물려주었고 신앙의 형식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건지셨는지, 어느 밤에 어떤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 무너진 자리에서 어떻게 붙드셨는지 그 이야기는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기업은 물려주었는데 기억은 물려주지 못한 것입니다. 땅은 잃어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신앙을 잃으면 현재와 미래를 함께 잃습니다. 한 세대를 지키는 것은 재능도 아니고 시스템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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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교리를 가르치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주면 됩니다. 밥상에서, 차 안에서, 잠들기 전에 "아빠는 그때 이렇게 기도했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말해 주는 일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훗날 자기 광야에 서게 될 때 그 이야기를 꺼내 볼 것입니다. 만약 물려줄 이야기가 없다고 느껴지신다면, 절망하실 일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만들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에서 일하고 계시고, 그 일을 알아보고 말로 옮기는 사람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한 번쯤 마음속으로 적어 두십시오.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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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올 때, 풀만 베고 오지 마십시오. 그 무덤에 누운 분이 어떤 하나님을 믿으셨는지, 어떤 기도를 하셨는지 한마디만 자녀에게 들려주십시오. 그 한마디가 사진에서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 됩니다. 구월의 서늘한 바람 속에서, 여러분이 물려받은 기억을 세어 보고 물려줄 기억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짓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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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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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7xVOal8tz_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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