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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3:12-31 왼손으로 오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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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은 늘 우리가 세어 두지 않은 쪽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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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첫째 주가 저물어 갑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광양의 논은 이제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고, 백운산 능선 위로 뜨는 해는 하루가 다르게 늦어집니다. 추석이 가까우니 마음 한쪽이 벌써 분주해집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한 해 동안 이룬 것을 세어 봅니다. 그리고 대개는 세어 볼 것이 많지 않아 조금 서운해집니다. 가진 것이 적다고, 능력이 모자란다고, 남들만큼 되지 못했다고 느끼며 이 아침을 맞으신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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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이상한 사람 둘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소 모는 막대기를 든 사람입니다. 둘 다 세상의 셈법으로는 구원자의 명단에 오를 수 없는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둘을 나란히 적어 놓고, 두 번째 사람에게는 굳이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라고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이상한 명단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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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익숙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삿 3:12). '또'라는 한 글자가 무겁습니다. 옷니엘이 지켜 낸 사십 년의 평온이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백성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이 일어섭니다. 그는 암몬과 아말렉을 끌어들여 요단을 건너와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합니다.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입니다. 나팔 소리에 성벽이 무너지던 그 성,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얻은 그 성을 이번에는 도로 내어 준 것입니다. 승리의 기념비가 압제의 교두보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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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열여덟 해입니다. 앞의 압제는 팔 년이었는데 이번에는 열여덟 해입니다. 죄가 되풀이될수록 징계가 길어집니다. 사사기의 순환은 제자리를 도는 원이 아니라 갈수록 아래로 내려가는 나선입니다. 더 아픈 것은 그 열여덟 해 동안 이스라엘이 그 상태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은 있었으나 각성은 더뎠습니다. 죄보다 무서운 것은 죄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압제보다 무서운 것은 압제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둔감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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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백성이 부르짖고,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삿 3:15). 여기서 '왼손잡이'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오른손이 묶인 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장애가 있던 사람으로 읽는 견해도 오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표현이 사사기 20장에서 물매를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던 베냐민의 정예 칠백 명에게 그대로 쓰입니다. 결함이 아니라 특기였던 것입니다.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전장에서 왼손잡이는 상대의 익숙한 방어를 무너뜨렸습니다. 베냐민 지파에는 오른손을 묶어 놓고 왼손만 쓰게 하는 훈련 전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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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 슬픈 아이러니가 겹칩니다. '베냐민 사람'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의 아들이 오른손이 묶인 자였습니다. 게다가 그 특수요원이 하고 있던 일은 적국 왕에게 공물을 나르는 심부름이었습니다. 15절의 "그를 통하여"는 원문으로 '그의 손으로'입니다. 정예 요원임을 증명하던 그 손이 지금은 조공을 들고 있습니다. 훈련은 받았으나 그 훈련이 쓰일 자리가 없는 사람, 자기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알면서도 그것과 상관없는 일을 하며 늙어 가는 사람. 어쩌면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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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어느 날 칼을 만듭니다. 좌우에 날이 선 짧은 칼을 만들어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찹니다. 오른손잡이는 왼쪽 허벅지에 칼을 차기 때문에 경비병들은 왼쪽만 살폈을 것입니다. 그의 왼손이 몸수색을 통과시킨 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격을 새로 만들어 내지 않으십니다. 그가 지나온 시간과 몸에 밴 습관과 오래 견딘 자리를 그대로 쓰십니다. 지루한 반복 속에서 익힌 궁궐의 구조와 왕의 습관이 그날 다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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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장면에는 절묘한 말놀이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에훗은 왕에게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라고 했고, 다시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원문에서 두 문장은 거의 같은 모양입니다. 히브리어 '다바르'는 말이기도 하고 일이기도 하고 물건이기도 합니다. 에글론은 귀한 선물이거나 신탁이라고 알아듣고 신하들을 물린 뒤 예를 갖추어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이방의 왕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일어서는데, 정작 그 말씀을 받은 백성은 앉은 채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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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장면을 성경은 이상할 만큼 천천히 그립니다. 칼자루가 날을 따라 들어갔고 기름이 칼날에 엉겼습니다. 에훗은 문을 잠그고 나옵니다. 신하들은 냄새 때문에 왕이 용변을 보는 줄로 알고 오래 기다렸고, 마침내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었을 때 "그들의 군주가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삿 3:25)는 사실만 발견합니다. 이 장면을 통쾌한 무용담으로만 읽으면 본문을 놓칩니다. 화자가 더 오래 비추는 것은 에훗의 솜씨가 아니라 에글론의 착각입니다. 그는 너무 강했기 때문에 방심했고 너무 성공했기 때문에 분별을 잃었습니다. 가장 살진 왕이 가장 무력하게 죽고, 가장 많은 신하를 거느린 사람이 문 하나 사이에서 홀로 죽습니다. 사람이 두르는 두께는 하나님 앞에서 방패가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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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훗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가 나팔을 붑니다. 나팔은 개인의 승전보가 아니라 함께 싸우자는 소집 신호입니다. 그리고 그가 백성에게 한 말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삿 3:28). 아직 싸우지 않았는데 이미 넘겨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가 왕을 죽였다고 자랑하지 않고, 이 전쟁이 누구의 전쟁인지를 먼저 알립니다. 산지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내려와 요단 강 나루를 지켰고, 그렇게 승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에훗의 거사는 한 사람의 사건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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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했습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가장 긴 안식입니다. 사사기에서 평온의 보고는 단지 전쟁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백성이 말씀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두 세대의 평화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온도 끝납니다. 바로 다음 장은 다시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읽는 이의 마음에 갈증을 남깁니다. 팔십 년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주실 분은 없는가. 그 갈증의 끝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 하신 분이 서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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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뜻밖의 한 줄로 닫힙니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삿 3:31). 삼갈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식이 아닙니다. '아낫의 아들'이라는 소개는 그가 가나안의 전쟁 여신을 섬기던 사람일 가능성까지 열어 둡니다. 무기는 밭에서 소를 몰던 막대기였습니다. 몇 해나 사사로 있었는지도, 여호와의 영이 임했는지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마디가 붙습니다. "그도." 그도 역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첫 사사 옷니엘은 유다 지파의 모범생이었고, 둘째 에훗은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었으며, 셋째는 아예 이스라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목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폭이 한 걸음씩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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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강한 것이 이긴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른손이 묶인 사람과 소 모는 막대기를 들어 씁니다. 낮은 것이 먼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삼갈에게 새 무기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늘 쥐고 있던 막대기를 그대로 쓰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손에 들린 것을 한번 내려다보십시오. 주방의 국자일 수도 있고 작업장의 공구일 수도 있고 가게의 계산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 모는 막대기입니다. 문제는 내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손에 붙들려 있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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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기 자리가 하찮게 느껴지는 분들께 이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에훗은 오래 공물을 날랐습니다. 그 세월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여는 가게 문, 매일 짓는 밥, 매일 같은 시간의 출근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가 실은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급할 때 사람을 급조하지 않으시고 오래 준비된 사람을 그때 꺼내어 쓰십니다. 내 손이 아직 쓰이지 않았다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아껴 둔 것입니다. 그리고 혹 지금 잠가 둔 다락방이 있다면,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먼저 그 문을 열어 두십시오. 스스로 여는 문은 회개의 문이 되지만 남이 여는 문은 대개 심판의 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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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이 아침에, 세어 볼 것이 많지 않아 조금 서운하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붙들려 사는가입니다. 오른손이 묶인 사람을 세우시고 소 모는 막대기를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작은 손도 그대로 들어 쓰시기를 빕니다. 강함의 허상을 내려놓고 믿음의 실상을 붙들며, 오늘도 주님의 손안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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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SjQj8_4X3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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