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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22-36 완만한 비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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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무너짐은 대개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발밑이 푹신해 넘어질 걱정이 없는 완만한 비탈을 오래 걸어 내려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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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서가 지나자 한낮의 볕은 여전히 뜨거운데 새벽 공기에는 서늘한 결이 섞여 듭니다. 광양의 들녘은 아직 초록인데 자세히 보면 벼 이삭이 조금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일에는 요란한 신호가 없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저녁이 짧아졌구나 느낄 뿐입니다. 여름을 힘겹게 건너오신 분들, 병상에서 그 여름을 다 보내신 분들, 애써 지은 농사가 마음 같지 않아 속이 타는 분들,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자꾸 마음이 얇아지는 분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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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지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지도는 넓어지는 지도가 아니라 조금씩 줄어드는 지도입니다. 사사기 1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여쭙는 입으로 열린 장입니다. 그런데 그 장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삿 1:36). 승전보가 아니라 남의 나라 국경선이 이 장의 마침표입니다. 아그랍빔은 '전갈들'이라는 뜻이고, 이 비탈은 원래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남쪽 경계 안에 있던 땅이었습니다. 우리 땅이었는데 어느새 남의 경계가 되어 있는 것, 그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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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의 화자는 지파들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세웁니다. 그런데 북으로 올라갈수록 문장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처음에는 '쫓아내지 않았다'고 하고, 다음에는 '함께 살았다'고 하고, 마지막에는 '쫓겨났다'고 합니다. 사사기는 논문이 아니라 이야기책입니다. 화자는 설명하는 대신 배열합니다. 그리고 그 배열 자체가 우리에게 설교합니다. 무너짐에는 순서가 있고, 그 순서는 언제나 완만하다는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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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은 벧엘입니다. 요셉 가문이 벧엘로 올라갔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삿 1:22) 하는 보증이 붙습니다. 이보다 좋은 출발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것은 승리의 함성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정탐꾼들이 성읍에서 나오는 한 사람을 붙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삿 1:24). '선대하리라'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의 그치지 않는 사랑을 가리킬 때 쓰는 낱말이고, 사람 사이에서는 언약의 신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언약을 맺지 말라 하신 명령을, 하필 언약의 낱말을 입에 올리며 어긴 것입니다. 여리고에서는 라합이 먼저 하나님을 고백하고 언약을 청했습니다. 여기서는 아무 위험도 없는데 이스라엘 쪽이 먼저 손을 내밉니다. 벧엘은 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살아 나간 그 사람은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또 하나의 루스를 세웠고, 그 이름이 "오늘까지" 남았습니다. 우리가 서둘러 치운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대개 이사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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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면은 계산입니다. 므낫세는 벧스안과 다아낙과 므깃도를, 에브라임은 게셀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모두 길목이고 시장이고 곳간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삿 1:28)라고 적습니다. 이 문장이 무섭습니다. 강해진 다음에도 쫓아내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처음에는 힘이 없어서 못 했는데, 나중에는 이익이 아까워서 안 한 것입니다. 실패의 성격이 바뀐 자리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벽돌을 굽던 백성입니다. 감독관의 채찍 아래 부르짖던 그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와 처음 쥔 힘으로 한 일이 남에게 노역을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압제에서 건짐받은 자가 압제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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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면은 자리바꿈입니다. 스불론까지는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 "중에" 거주했습니다. 그런데 아셀에 이르면 문장이 뒤집힙니다.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삿 1:32). 주인과 손님이 바뀌었습니다. 아셀이 받은 땅은 바닷가의 기름진 곳이었습니다. 살 만해서 더 싸우지 않았고, 싸우지 않으니 어느새 제 땅에서 세입자가 되었습니다. 납달리가 손대지 못한 벧아낫은 '아낫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아낫은 가나안의 여신입니다. 하나님의 집 하나를 얻었다고 해서 다른 집들이 저절로 비워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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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은 밀려남입니다.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삿 1:34). 여기서 처음으로 문장의 주어가 아모리 족속이 됩니다. 앞의 모든 단락에서 주어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문법이 바뀌었다는 것은 형세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주도권을 잃은 사람은 제 이야기의 주어 자리에서도 밀려납니다. 앞서 유다는 철 병거 때문에 골짜기를 얻지 못했다고 했는데, 단은 철 병거가 소용없는 산지에서조차 쫓겨납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병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단 지파는 땅을 잃기 전에 먼저 상상력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상상력, 말씀을 눈앞의 현실보다 크게 믿는 상상력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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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늙은 악마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은 완만한 길이라고, 부드러운 경사에 발밑이 푹신하고 갑작스러운 굽이도 이정표도 표지판도 없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사사기 1장 후반부가 꼭 그런 길입니다. 어느 지파도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제단을 헐지 않았을 뿐이고, 사람을 부렸을 뿐이고, 살 만한 자리에 주저앉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완만한 비탈의 끝에서 사사기 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한 세대가 미룬 순종의 값을 다음 세대가 몰라도 되는 것으로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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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나는 언제 하나님을 떠났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가"입니다. 우리 교회는 여전히 많은 벧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것과 그 자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제의 순종은 감사의 기억이 될 수는 있어도 오늘의 순종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은혜의 장소도 방치되면 다시 세속의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벧엘은 날마다 다시 정복되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이미 끝난 정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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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오늘 본문은 우리를 정죄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화자가 마지막에 세운 단 지파를 기억하십시오. 가장 밀려난 그 지파에서도 하나님은 훗날 사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배교와 부르짖음과 구원자와 안식이 돌고 도는 그 어두운 순환 속에서, 매번 먼저 움직이신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이방의 그늘에 내주었던 스불론과 납달리의 땅, 곧 갈릴리에서 마침내 큰 빛이 비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크게 실패한 자리를 골라 구원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산지에 갇혀 계신 분이 있다면, 그 자리가 마지막 자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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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소리 없이 바뀌듯 마음도 소리 없이 기웁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주님, 어떻게 할까요" 하고 한 번 멈춰 여쭙는 일이 우리를 지킵니다. 그 짧은 멈춤이 완만한 비탈 위에 세워지는 작은 이정표입니다.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이 구월에, 여러분의 걸음이 아래가 아니라 위를 향하기를, 잃어버린 골짜기를 향해 다시 내려가 보는 용기 있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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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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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O5FhOIaAu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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