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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20-34 탐욕의 식탁을 엎고, 날마다 죽음으로 맞이하는 찬연한 아침

참된 신앙이란, 부활의 소망을 상실한 채 오늘 하루의 쾌락에만 탐닉하려던 세속의 얄팍한 허무주의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은밀하고도 위대한 생명 사역에 나의 온 시선을 쏟아 붓는 순전한 응시로서의 묵상을 통해, 날마다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고통 속에서도 기어코 우리를 영광스러운 부활의 첫 열매에 잇대어 주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총에 온전히 참여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장마의 습한 기운이 대지를 무겁게 짓누르지만, 숲의 나무들은 그 후텁지근한 비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잎사귀를 키워내며 자신만의 생명 연장을 이루어 내는 2026년 6월의 끄트머리입니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그저 오늘 하루의 본능과 쾌락에 나를 내맡기고 싶은 유혹과 싸우며 남몰래 한숨짓고 계실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짙은 허무주의를 앓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만유의 주가 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종종 이렇게 속삭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러니 골치 아프게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당장 눈앞에 있는 쾌락을 즐기고 내 몫을 챙겨라."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고린도전서 15장 중반부의 풍경은, 이토록 지독한 세속의 쾌락주의가 헬라 철학과 결탁하여 어떻게 교회 공동체의 윤리를 붕괴시켰는지를, 그리고 사도 바울이 그 타락한 식탁을 엎어버리며 어떻게 날마다 죽는 부활의 영성을 벼락같이 선포하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 교인들의 부활 부인이 가져온 치명적인 실천적 결과를 주시해야 합니다. 영혼만 선하고 육체는 무가치하다는 이원론에 빠진 그들은 미래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두 가지 극단뿐입니다. 하나는 깊은 허무주의요, 다른 하나는 찰나의 쾌락에 탐닉하는 방종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비루한 삶의 방식을 한 문장으로 폭로합니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2). 이는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이름으로 둔갑한 세속주의의 민낯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없으니, 십자가를 지고 이웃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바보짓이 됩니다. 그들은 구원받았다는 영적 우월감에 취해 있으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철저히 자신의 배를 신으로 삼아 정욕대로 살아가는 끔찍한 모순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일갈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전 15:33-34).

바울은 이 쾌락의 카르텔을 깨뜨리기 위해 먼저 장엄한 부활의 질서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구약의 전통에서 첫 열매는 남은 모든 수확물의 풍성함을 보증하는 대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홀로 영광받으신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에게 속한 우리 모두가 마침내 사망을 딛고 일어설 것을 보증하는 우주적 생명의 서막입니다. 그 부활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하기에 바울은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우듯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간 이유는 명백합니다. 영원한 부활의 생명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위협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배를 채우려 먹고 마시자고 충동질하는 이기적 자아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고, 타자를 위해 기꺼이 손해 보는 길을 선택하는 거룩한 용기입니다.

이렇듯 오늘만의 쾌락을 좇는 허무한 발걸음을 멈추고 날마다 나를 죽이는 부활의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순전한 응시는 가장 보기 드물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라고 갈파했습니다. 참된 묵상이란 내가 원하는 답을 성경에서 억지로 짜내는 종교적 기술이 아닙니다. 묵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 사역을 향해 내 영혼의 시선을 고정하는 순전한 응시입니다. 세상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공과 쾌락에만 시선을 두라고 유혹하지만, 우리가 말씀 앞에 고요히 머물러 하나님의 일하심을 응시할 때 우리는 사망이 쏘는 독침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이 깊은 응시의 묵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쾌락을 즐기자는 세속의 시끄러운 소음을 끄고, 부활이 예비되어 있으니 나는 오늘 기꺼이 이웃을 위해 내 욕망을 죽이겠다고 고백하는 장엄한 생명의 순례자로 빚어지게 됩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고린도 교인들처럼 영원한 소망을 잃어버린 채,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오늘 더 화려하게 먹고 마시는 것만이 최고라며 쫓기듯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은 끝없이 반복되는 삶의 고단함과 죄의 유혹 앞에서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사람인가 봐 라며 짙은 무기력과 체념의 자리에 주저앉아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제 내 힘으로 인생의 허무를 잊어보려 차려놓은 그 피곤하고 시끄러운 쾌락의 식탁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부활을 조롱하며 육체의 방종을 일삼던 고린도 교인들의 그 비루하고 천박한 바닥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가차 없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죽음의 권세 아래 포로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만물을 복종하게 하시는 그 크신 능력으로 친히 우리 삶의 한복판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는 바울의 선언처럼, 주님은 우리의 그 실패하고 부서진 일상조차 넉넉히 품어 안으시어 당신의 통치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날마다 나를 죽여 내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영광스러운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 단단히 접붙여 주시어, 사망을 삼키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도 압도적인 은총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덧칠된 찌든 때를 벗겨 내고 본래의 빛나는 형상을 되찾는 프레스코화의 복원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허무주의는 우리 영혼의 벽화 위에 짙게 앉은 먼지와 얼룩을 보며 어차피 본래의 그림은 망가졌고 내일이면 다 무너질 벽이니 그 위에 아무렇게나 값싼 낙서를 덧칠하며 즐기자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위대한 복원가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 지저분한 낙서투성이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세속의 헛된 쾌락으로 덧칠된 우리의 자아를 특수 용제로 녹여 내고 날카로운 메스로 긁어내는 아프고도 정교한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이 긁어냄의 시간이 바로 날마다 죽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내려놓고 복원가의 메스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세속의 때가 벗겨진 우리의 영혼 위에는 세상 그 어떤 화려한 쾌락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만유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가장 눈부시고 찬연한 부활의 원형이 찬란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장맛비가 대지의 묵은 때를 씻어 내리는 이 여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욕망에 탐닉하려는 세상의 허무한 질서를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내 영혼을 맡기는 순전한 응시의 묵상 자리에 엎드리며, 나를 부활의 첫 열매에 잇대어 주신 그 넉넉한 은총 안에서 곁에 있는 약한 이들을 위해 날마다 기꺼이 나를 낮추는 찬란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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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o3nkPxq8d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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