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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1-11 조각보를 엮으시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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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값없이 주어진 은사마저 서열화하여 타인 위에 군림하려던 세속적 교만을 직시하고, 하나님과 축복을 거래하려는 헛된 시도를 멈추고 나의 텅 빈 피조물 됨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영적 엎드림을 통해, 볼품없는 우리의 남루함조차 한 성령 안에서 찬란한 생명의 공동체로 엮어내시는 주님의 광대한 은총에 온전히 기대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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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여름날, 숲에 서면 나무들이 서로 크기를 다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마다 다른 굵기와 높이, 고유한 잎새의 빛깔만으로도 완벽한 생명의 조화를 이루어 냅니다. 세상은 가장 크고 화려한 소리를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윽박지르지만, 숲은 말없이 다른 진리를 가르칩니다. 남들보다 더 뛰어나고 특별한 능력을 증명해 내야만 환대받을 수 있다는 팍팍한 강박에 지쳐 남몰래 한숨짓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게는 아무런 쓸모나 내세울 은사가 없는 것 같아 짙은 소외감과 회의를 안고 진리의 길을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그 심령에, 우리의 연약함과 다름조차 눈부신 조화로 품어 안으시는 주님의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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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끝없이 사람의 능력에 등급을 매기고, 타인보다 우월한 자리를 선점하여 지배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풍경은 그 세속의 논리가 교회 안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온 아픈 실상을 보여줍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은사를 받은 공동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이들은 병 고치는 은사나 기적 행함을, 또 어떤 이들은 예언과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넘치는 하늘의 선물이 도리어 교회를 산산조각 내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방언파와 예언파 등으로 나뉘어 서로 "내 은사가 더 신령하고 우월하다"며 시기하고 경쟁했습니다.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인 공동체의 유익은 망각한 채, 은사를 자신의 종교적 권력을 강화하고 남을 무시하는 얄팍한 영적 훈장으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거룩한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 교만의 무기가 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생명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열의 피라미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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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 오만한 은사주의자들을 향해 단호한 선언을 던집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은사의 다양성과 그 은사를 주신 성령의 주권입니다. 은사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그러니 차별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서로를 귀히 여기고 인정하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가 지닌 어떤 능력도 나의 쟁취물이 아니라 위로부터 거저 주어진 선물, 곧 카리스마타(charismata)입니다. 모든 것이 은총임을 잊어버리는 순간, 신앙은 교만이 되고 종교는 폭력이 됩니다. 화려한 은사를 손에 쥔 자가 그것을 자신의 증거물로 삼아 타인 위에 군림할 때, 성령께서 그 은사를 나누어 주신 이유는 이미 사라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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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알량한 은사로 남을 누르고 우월해지려는 세속적 자아를 꺾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 속으로 우리를 던져 넣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있습니다.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끄 엘륄(Jacques Ellul)은 묵상을 가리켜 "연약함의 기술"이라고 갈파합니다. 묵상은 내가 원하는 축복이나 영적 우월함을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교환 기술이 결코 아닙니다. 묵상은 우리의 철저한 피조물 됨과 한계,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비의 풍성하심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고요한 항복의 시간입니다. 나의 종교적 업적과 은사를 뽐내며 남을 평가하던 그 시끄러운 입술을 닫고 침묵 속에 엎드릴 때, 우리는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 연약함의 기술을 통과할 때에야 우리는 남의 은사를 시기하거나 내 은사를 자랑하려는 치사한 경쟁을 멈추고, 나와 다른 형제자매의 고유한 쓸모를 진심으로 환대하고 긍정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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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가진 직분이나 봉사의 연수, 혹은 남들보다 뛰어난 성경 지식이나 체험을 무기 삼아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영적인 우월감을 증명하려 애쓰고 계십니까? 반대로, 눈에 띄는 화려한 은사가 내게는 없는 것 같아 나는 무가치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며 깊은 우울과 절망감의 섬에 스스로를 가두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제 내 힘으로 그럴듯한 능력을 입증하여 박수갈채를 받아내야 한다는 그 서늘하고 피곤한 강박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성령의 은사마저 이기적인 경쟁의 도구로 전락시켰던 고린도 교인들의 그 비루하고 남루한 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가차 없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 분열의 한복판에 찾아오시어, 가장 작고 연약해 보이는 지체조차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존귀한 존재로 삼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남들보다 얼마나 더 화려하고 쓸모 있는 능력을 가졌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고 흠집 많은 우리의 남루한 일상조차 넉넉히 품어 안으시어, 기어코 한 성령 안에서 서로를 살려내는 생명의 지체로 빚어주시는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도 압도적인 은혜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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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고단한 신앙 여정은 버려진 자투리 천 조각들을 모아 깁는 조각보를 엮어내는 일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잣대와 경쟁 원리는 작고 빛바랜 천 조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크고 화려한 비단 조각만이 가치 있다고 윽박지릅니다. 그러나 위대한 장인이신 성령님은 그 볼품없고 버려진 조각들조차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크기도 빛깔도 달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리의 그 모난 일상들을 십자가의 은혜라는 튼튼한 실로 정성스레 이어 붙이십니다. 우리가 나만 돋보이려던 헛된 교만을 멈추고 장인의 손길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찢기고 남루했던 우리의 삶의 파편들은 한데 어우러져 추운 겨울날 상처 입은 세상을 가장 다사롭게 덮어주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조각보로 완성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손에 들린 그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조각이 어떤 자리에 놓이게 될지, 그것을 아시는 분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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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이 찬연한 이 계절, 내 능력을 과시하여 타인을 지배하려는 세상의 낡은 수직적 질서를 미련 없이 거부하십시오. 그저 하나님 앞에 나의 피조물 됨을 고백하는 연약함의 묵상에 고요히 머물며,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은총에 잇대어 내 곁에 있는 이웃의 다름을 다정하게 껴안는 참된 조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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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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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9uxdSJAXg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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