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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17-34 찢긴 빵으로 지어내는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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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각자의 배를 불리며 빈부의 격차로 형제를 소외시키던 이기적인 만찬을 부끄러워하고, 나의 얄팍한 일상을 조립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장엄한 구원 서사 속으로 내 삶을 편입시키는 영적 연대를 통해, 당신의 살과 피를 기꺼이 찢어 우리의 허기진 영혼을 먹이시고 기어코 하나로 묶어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함 없는 은총에 우리 존재를 온전히 의탁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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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함께 밥을 먹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위장에 칼로리를 채우는 일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한 솥의 밥을 나누어 먹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다정하게 '식구(食口)'라 부릅니다. 밥상은 서로의 온기를 섞고 생명을 나누는 영적 교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힘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철저히 구별된 세상의 비정한 식탁에서 소외된 채 남몰래 영혼의 허기를 앓고 계신 분들, 그리고 내 몫을 악착같이 챙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팍팍한 생존 경쟁에 지쳐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주린 배와 상처 입은 영혼을 다사롭게 먹이시는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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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늘 내가 획득한 지위와 부를 은근히 과시하며, 나와 수준이 맞는 이들과만 교류하는 배타적인 식탁을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고린도전서 11장 후반부의 풍경은, 하나가 되어야 할 거룩한 성찬의 식탁마저 세속의 이기심에 물들어 어떻게 빈부의 격차를 폭로하는 폭력의 자리로 전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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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찬은 오늘날처럼 작은 떡과 잔만 나누는 간략한 예식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이 각자 음식을 싸 와서 배불리 나누어 먹는 애찬(Agape feast)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던 부유한 자들은 모임에 일찍 도착하여 자신들이 가져온 풍성한 고기와 포도주를 먼저 배불리 먹고 취해버렸습니다. 반면 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뒤늦게 허겁지겁 도착한 가난한 노예나 일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깊은 소외감과 굶주림에 떨어야 했습니다. 생명을 나누고 연대해야 할 성찬이 도리어 있는 자들의 무례한 과시와 가난한 자들을 향한 수평적 폭력의 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두고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고전 11:22)며 벼락같이 책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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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이 되어버린 고린도 교인들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바울은 성찬의 의미 중 '생명의 기쁨'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훨씬 더 강력하게 환기시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성찬은 나의 배를 채우는 잔치가 아닙니다. 타자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살을 무참히 찢으시고 피를 쏟아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절대적인 자기 비움과 희생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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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명망 높은 하버드와 예일 대학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캐나다의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 중증장애인 공동체로 들어가 그들의 식사를 돕고 용변을 치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께서 몸소 찢긴 빵이 되어 우리의 허기를 채워주셨듯,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연약한 이들과 먹고 마시며 삶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참된 성찬의 완성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구촌 도처에서 기아와 빈곤으로 신음하는 형제들의 고통은 배제한 채 우리끼리만 배불리 먹고 마시는 식탁은 결코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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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나만의 배를 불리려는 이기적인 탐욕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자기 비움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문제는 우리가 파편화된 자료를 모아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조립 소설을 만들어내는 얄팍한 서사기술자로 전락한 데 있습니다. 참된 묵상이란 내 성공과 내 배부름이라는 이기적인 스토리를 꾸며내는 일이 아닙니다. 묵상은 날마다 내 일상의 작고 남루한 이야기들을 철저히 성찰하여, 하나님이 써 나가시는 더 큰 이야기, 곧 세상을 살려내시는 장엄한 십자가 구원의 서사 속으로 내 존재를 편입시키는 치열하고도 거룩한 작업입니다. 우리가 조용히 말씀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서사를 묵상할 때, 우리는 나 혼자만의 식탁에서 벗어나 내 곁에서 주리고 목마른 형제들을 주님의 이야기 안으로 다정하게 모셔 들이는 넉넉한 환대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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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고린도 교인들처럼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 더 풍성한 식탁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누군가에게 소외감을 안겨주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반대로 거친 세상에서 나를 반겨주는 식탁 하나 없는 것 같아 짙은 외로움과 회의의 그늘에 홀로 주저앉아 계신 분이 있습니까. 완벽한 도덕성과 실적을 증명해야만 하나님께서 나를 성찬의 자리로 초대해 주실 것이라는 율법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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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힘으로 인생의 화려한 만찬을 차려내어 나를 증명하려던 그 피곤한 수저를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배가 고파 허겁지겁 내 몫부터 챙기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던 고린도 교인들의 그 치사하고 이기적인 바닥을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무질서하고 냄새나는 밥상 한복판으로 다가오시어,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내 피니라" 말씀하시며 당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번듯한 자격을 갖추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흠집 많고 허기진 우리의 남루한 존재조차 넉넉히 품어 안으시어, 기어코 십자가의 붉은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내시고 한 몸 된 생명의 공동체로 먹여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압도적이고도 맹렬한 은총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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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이기적인 신앙 여정은 수많은 유리 조각으로 빚어내는 한 폭의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를 완성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논리는 서로 색깔과 크기가 다른 유리 조각들이 한데 어울릴 수 없다고 말하며, 아름답고 값비싼 조각들만 모아 자기들만의 식탁을 차리고, 깨어지고 볼품없는 조각들은 무가치하다며 쓰레기통에 내버립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그 버려지고 깨진 조각들조차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기심으로 뿔뿔이 흩어진 우리의 그 날카로운 파편들을 그러모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이라는 검고 묵직한 납선(Lead Came)으로 조각과 조각 사이를 단단하게 연결하시어 하나의 거대한 창으로 빚어 내십니다. 우리가 나만 빛나려던 헛된 교만을 멈추고 십자가의 검은 납선에 우리의 모난 테두리를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의 그 찢기고 파편화된 일상은 은총의 빛을 통과시켜 어두운 세상을 가장 경이롭고 찬란하게 밝히는 거룩한 생명의 빛깔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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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수준이 맞는 이들과만 교류하려는 세상의 얄팍한 배제의 식탁을 미련 없이 거절하십시오. 그저 나의 작은 삶을 하나님의 위대한 십자가 서사 속으로 편입시키는 깊은 묵상의 자리에 엎드리며, 나를 먹이신 그 다함 없는 은총 안에서 곁에 있는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에게 기꺼이 내 몫의 빵을 떼어주는 눈부시고 맑은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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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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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uzrob23Cq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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