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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14-11:1 귀신의 식탁을 엎고 차려낸 은총, 타자를 위해 내어준 자유의 빈자리


참된 신앙이란, 자신의 지식과 자유를 앞세워 우상의 식탁(세속의 탐욕)을 탐닉하던 오만한 영적 이기주의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 깊은 곳에 오래도록 되새김질하여 내 가치관을 뜯어고치는(새김으로서의 묵상)' 거룩한 영적 소화를 통해, 자격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친히 생명의 떡과 잔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없는 은혜에 내 삶을 온전히 의탁하는 생명 사건입니다.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위장에 칼로리를 채우는 일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밥상은 서로의 온기를 섞고 생명을 나누는 다정한 영적 교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식탁은 종종 힘을 과시하고 인맥을 계산하며, 내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이들을 차갑게 배제하는 비정한 권력의 경연장이 되기도 합니다. 본격적인 여름의 더위가 일상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하는 이 계절에, 내 몫을 악착같이 챙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세상의 팍팍한 식사법에 지쳐 남몰래 한숨짓는 이들의 심령에, 우리의 허기진 영혼을 다사롭게 먹이시는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고린도전서 10장 후반부에서 11장 1절에 이르는 풍경은, 내 자유와 권리만을 앞세우며 교회를 멍들게 했던 고린도 교인들의 오만함을 향해 사도 바울이 어떻게 벼락같은 경고를 던지며, 동시에 타자를 살려내는 십자가의 넉넉한 은총을 선포하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고린도 도시의 역사적 정황을 헤아리면 본문의 긴장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시장에 유통되는 고기의 대부분이 이방 신전에서 제물로 바쳐졌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내에 이른바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거리낌 없이 이방 신전의 잔치 자리에 앉아 고기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얄팍한 지적 우월감을 단호히 깨뜨리며 묻습니다. "대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 10:20-21).


바울의 이 엄중한 경고는 단지 음식의 성분을 따지는 규례가 아닙니다. 주의 식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자기를 내어주는 헌신에 동참하는 자리라면, 귀신의 식탁은 철저히 자신의 쾌락과 성공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이기적인 탐욕의 자리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귀신의 식탁은 눈에 보이는 이방 신전이 아닐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짓밟고 일어서서라도 내 배를 불리겠다는 욕망의 제단,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얻어낸 성취를 하나님의 축복이라 둔갑시키는 성공 지상주의가 바로 우리가 앉지 말아야 할 서늘한 귀신의 식탁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나 불신자의 집에서 대접받는 음식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자유롭게 먹으라고 말합니다(고전 10:25, 27).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고기"라고 알려준다면, 알게 한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 결코 먹지 말라고 명합니다(고전 10:28). 내 자유가 남의 양심에 의해 심판받을 이유는 없지만, 내 곁에 있는 연약한 형제가 상처받고 실족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나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반납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위대한 사랑의 원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기독교는 우리를 삶의 다양한 차원으로 던져 넣는다.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한다"고 갈파했습니다. 진정한 영적 성숙은 내 지식을 뽐내며 자유를 남용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에게 허락된 자유의 공간을 스스로 비워내어, 그곳에 상처 입기 쉬운 연약한 이웃을 안전하게 모셔 들이는 거룩한 좁아짐, 바로 그 할 수 있지만 기꺼이 하지 않는 넉넉한 포기가 주의 식탁에 앉은 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렇듯 나의 유익을 챙기려는 세속적 자아를 꺾고 이웃을 위해 내 자유를 제한하는 사랑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차준희 교수는 묵상을 가리켜 새김이라고 명명합니다. 묵상(meditation)의 라틴어 어원 루미나치오(ruminatio)는 소나 양이 먹이를 위로 올려 다시 씹는 되새김질을 의미합니다. 참된 묵상은 내 입맛에 맞는 달콤한 위로의 구절만 훌쩍 삼켜버리는 가벼운 독서가 아닙니다. 묵상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라"는 이 낯설고 불편한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넣고 오래오래 고통스럽게 씹고 부수어, 마침내 내 영혼의 피와 살이 되게 하는 치열한 영적 소화 과정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의미를 깊이 되새김질할 때,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그 단단한 이기주의의 껍질은 허물어지고, 비로소 우리의 가치관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빚어지는 생명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험한 세상에서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내 몫의 고기를 챙기려 이웃을 외면한 채 귀신의 식탁을 기웃거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은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나는 주의 식탁에 앉을 자격조차 없는 자라며 짙은 자괴감과 절망의 그늘 속에 홀로 웅크려 계신 분이 있습니까. 이제 내 힘으로 인생의 식탁을 화려하게 채우려던 그 피곤하고 날카로운 포크와 나이프를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바울은 11장 1절에서 위대한 선언을 터뜨립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윤리적으로 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무한한 권리를 버리시고 십자가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셨듯, 바울 자신도 철저히 자기 권리를 비워 이웃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내 몫을 영리하게 챙겨 내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나의 유익을 구하려 드는 우리의 비루하고 남루한 일상조차 너른 품으로 덮어 안으시어, 기어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씻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식탁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그 압도적이고도 맹렬한 은총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우리의 상처 많고 이기적이었던 신앙 여정은 차가운 북극의 벼랑 끝에 둥지를 트는 솜털오리(Eider Duck)의 위대한 헌신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지혜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의 털을 빼앗거나 짓밟아서라도 나만의 따뜻함을 채우고 내 유익만을 구하라고 윽박지릅니다. 그러나 어미 솜털오리는 둥지 안의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알을 품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자기 가슴팍의 솜털을 스스로 부리로 하나하나 뽑아내어, 그 빈자리의 피 흘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둥지를 포근하게 감쌉니다. 우리가 내 권리만을 챙기려던 헛된 탐욕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기며 십자가 앞에 나를 내어 맡길 때, 내가 기꺼이 포기하고 비워낸 그 자유와 희생의 빈자리는 결코 실패가 아니라, 거칠고 차가운 세상을 가장 다사로운 생명의 온기로 덮어 살려내는 눈부시고도 찬연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활짝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무성해지는 이 눈부신 유월, 내 유익만을 구하며 타인을 짓밟는 세상의 차가운 귀신의 식탁을 미련 없이 걷어차 버리십시오. 그저 나를 살리시는 말씀을 영혼 깊이 되새김질하는 묵상의 자리에 엎드리며,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의 그 넉넉한 은총에 잇대어 곁에 있는 연약한 이웃에게 기꺼이 내 자유의 자리를 내어주는 참된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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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DlUxQCO6q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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