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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17-26 진리로 빚어낸 거룩한 연대, 그 사랑의 밥상에 둘러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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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차가운 배제와 분열로 얼룩진 세상에서 내 욕망이 빚어낸 정답을 고집하는 대신, 십자가를 앞두고 우리를 '하나 됨'의 자리로 초대하신 주님의 사랑을 영혼의 '밥상(묵상)'에서 받아먹으며 넉넉한 은총 안에 머무는 거룩한 사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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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저마다의 호흡으로 생의 환희를 노래하는 3월의 끝자락입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뭇가지마다 연초록 잎새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소리가 들리시는지요? 분주한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서서 생명의 경이를 경청할 줄 아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여전히 짙은 안개 같은 현실 속에서 길을 더듬고 계신 모든 분들께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는 주님의 넉넉한 평화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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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으로 날이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진 알량한 지식과 신념을 무기 삼아 타인을 재단하고, 선을 그어 '우리'와 '그들'을 무자비하게 갈라놓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7장 후반부의 말씀은, 십자가라는 참혹한 죽음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예수님께서 이렇듯 찢기고 분열될 세상 한복판에 남겨질 제자들, 그리고 먼 훗날 그들의 전도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될 '우리들'을 위해 올리신 애끓는 대제사장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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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먼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간구하십니다. 흔히 우리는 진리를 차갑고 딱딱한 교리적 지식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한동일 변호사는 성경을 강독하며, 사랑이 빠진 지식의 허망함을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쓰기와 말하기 '기술자'가 쓴 글과 말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힘듭니다". 사랑이 배제된 진리는 사람을 살리는 대신 정죄하고 찌르는 흉기가 될 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란, 십자가에서 당신의 온몸을 찢어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신 그 맹렬하고도 펄펄 끓는 사랑 자체입니다. 세상의 말들은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온도를 띠지만, 생명을 내어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단숨에 녹이는 가장 따뜻한 사랑의 온도를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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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의 진리로 거룩해진 이들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를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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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교수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진리를 대할 때 우리가 피 흘리며 싸워야 할 두 가지 대상을 지적합니다. 바로 내가 이미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모범답안'과의 싸움, 그리고 말씀을 내 입맛에 맞게 끌어당기려는 '자신의 욕망'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 됨'을 획일적인 모범답안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기질이 다른 이를 내 방식대로 뜯어고쳐 똑같은 틀 속에 구겨 넣으려는 폭력적인 욕망을 연합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은 그런 폭력적인 흡수가 아닙니다. 서로의 고유함을 지극한 존중으로 품어 안으면서도, 온전한 사랑 안에서 막힘없이 흐르고 통하는 거룩한 사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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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벅찬 사귐과 하나 됨의 신비 속으로 우리를 온전히 밀어 넣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옥명호 대표는 묵상을 가리켜 "밥상"이라고 정의합니다. 묵상은 책상머리에서 지식을 해부하는 건조한 노동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께서 친히 차려주신 영혼의 식탁에 둘러앉아, 생명의 떡이신 그분의 은총을 꼭꼭 씹어 먹으며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생존의 시간입니다.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을 '식구(食口)'라 부르듯, 묵상의 밥상에 둘러앉은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분열을 넘어 한 식구가 됩니다. 또한 정성국 교수는 묵상을 하나님을 향한 우리 몸의 "약속"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요 17:23)이라는 주님의 기도가 내 비루한 일상 속에서 기어코 이루어질 것을 온몸으로 믿고 기대어 보는 위대한 약속의 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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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같이 흠 많고 모난 사람이 과연 주님과 하나 될 수 있을까?" 하며 깊은 소외감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번듯한 사랑의 실천을 해내지 못해 스스로를 탓하며 율법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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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증명의 강박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2천 년 전 골고다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시던 그 참담한 밤에, 주님은 캄캄한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주님은 여러분의 연약함과 잦은 실패를 다 아시면서도, 당신의 피로 빚어낸 영원한 사랑의 끈으로 여러분을 꽉 동여매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이웃과 잘 연합해 내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다 흩어지고 도망칠 우리를 기어코 찾아와 끌어안으시는 주님의 애달픈 중보기도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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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누군가를 가르고 평가하던 세상의 날 선 잣대를 버리십시오. 그저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시는 주님의 풍성한 밥상(묵상)에 염치없이 다가가 앉아, 그 맹렬하고도 다정한 사랑을 배불리 받아먹는 복된 일상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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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직물을 만들어내는 '베틀(Loom) 위의 직조'와 같습니다. 수백 가닥의 날실(우리의 고유한 삶)은 저마다의 색깔과 굵기를 지니고 있어 자칫 엉키거나 끊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신 주님께서 '은총'이라는 든든한 씨실을 들고 우리 사이를 쉼 없이 오가시며 품어주실 때(묵상), 비로소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의 고단한 삶은 세상의 상처를 덮어주는 가장 따뜻하고 눈부신 '하나의 사랑의 옷감'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남과 결속하려는 억지스러운 수고를 멈추고 주님의 씨실에 나를 온전히 내어맡길 때, 우리의 공동체는 세상을 경이롭게 하는 거룩한 은총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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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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