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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12-27 세상의 숯불을 등지고 은총의 빛으로, 부끄러움을 덮으시는 넉넉한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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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십자가라는 위기 앞에서 내 안위를 지키려 거짓과 부인의 언어로 도피하던 얄팍함을 버리고, 참담한 실패의 자리까지 찾아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내 삶의 구체적인 언어로 ‘번역(묵상)’해 내는 사랑의 혁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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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꽃망울이 다투어 피어나며 온 세상을 연분홍빛 설렘으로 물들이는 2026년 3월 끝자락의 포근한 월요일 아침입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영혼의 닻을 내리기 위해 묵상의 자리에 나아오신 성도 여러분, 그리고 모호하고 피곤한 현실 속에서 흔들리며 참된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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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라고 다그칩니다. 위기가 닥치면 남을 밟고서라도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8장 후반부의 풍경은, 그토록 거대하고 폭력적인 세상의 권력 앞에 포박당한 채 홀로 서 계신 예수님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철저히 무너져 내리는 한 인간의 비애를 묵직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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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로 끌려가신 예수님은 심문을 받으십니다. 그곳은 종교적 권위와 제국의 힘이 결탁한 공포의 공간이었습니다. 경비병 하나가 손으로 예수님을 쳤을 때, 주님은 혈기로 맞서지 않으시고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증거를 대보아라. 그러나 내가 말을 바르게 하였으면,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요 18:23)라며 폭력을 진실의 빛으로 응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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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시각, 바깥뜰에 있던 베드로의 모습은 참으로 처연합니다. 날이 추워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우고 쬐고 있을 때, 베드로도 그들 틈에 끼어 숯불을 쬐고 있었습니다(요 18:18). 그때 한 여종이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묻자, 베드로는 다급하게 외칩니다. "나는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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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내뱉은 "나는 아니오"라는 부인의 언어는, 자신을 지키려다 도리어 영혼의 밑바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차갑고도 서늘한 죽음의 온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육신의 추위를 이기고자 세상 사람들이 피워놓은 권력과 타협의 '숯불' 곁으로 다가갔지만, 그 숯불은 결코 그의 영혼을 데워주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불을 쬐면 쬘수록 그의 내면은 배신의 수치심과 공포로 덜덜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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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겠다던 그 호언장담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베드로의 내면에는 '힘으로 로마를 제압하고 승리하는 영광스러운 메시아'라는 자신만의 모범답안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결박당하고 뺨을 맞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가 꽉 쥐고 있던 모범답안은 산산조각이 났고, 길을 잃은 그는 결국 맹렬한 부인의 자리로 도망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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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안개처럼 스러지고 마는 우리 인간의 비루한 실존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이익과 안전을 위해 주님을 모른 척하며 세상의 숯불 곁에 슬그머니 손을 내미는 것이 우리의 벌거벗은 민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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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님은 그 부끄러운 숯불 곁에서 떨고 있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던 주님의 절박한 음성, "일어나 가자(Surgite, eamus)"(마 26:46)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이 아무리 꼬이고 실패했을지라도 함께 일어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저주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 실패의 밤을 지나 부활의 아침에 친히 그를 찾아가 새로운 사랑의 숯불을 피워주셨습니다. 인간의 숯불은 부끄러움을 들추어냈지만, 주님이 피우신 은총의 숯불은 그의 모든 배신을 용서하고 덮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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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광활하고 다정한 주님의 은혜를 우리 삶에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정민영 선생은 묵상을 가리켜 "번역"이라고 통찰했습니다. 묵상이란 2천 년 전 대제사장의 뜰에서 일어난 활자화된 문자를 읽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숯불 곁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그 참담함이 바로 '나의 이야기'임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와 용서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오늘 내 삶의 구체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치열하게 번역해 내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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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영봉 목사님은 묵상을 "혁명"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의 숯불(권력, 돈, 타협)을 쬐며 안락함을 구하던 비겁한 자아를 무너뜨리고, 비록 찬바람을 맞을지라도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시는 주님의 곁으로 내 삶의 자리를 옮겨 내는 가장 위대하고 조용한 내면의 반역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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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는 왜 이리도 쉽게 세상에 흔들릴까?", "내 믿음은 왜 베드로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비겁해질까?" 자책하며 깊은 회의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더 뜨겁게 헌신하여 남들에게 번듯한 믿음을 증명해 내야 한다는 무거운 율법의 짐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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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내어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는 그 무거운 강박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무결점의 영웅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나는 아니오"라고 도망치며 세상의 숯불 곁에서 울고 있을 때, 주님은 책망 대신 십자가의 고통을 친히 감내하시며 우리의 부끄러움을 당신의 피로 온전히 덮어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연약한 의지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도 끈질긴 긍휼에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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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잠시 따뜻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 영혼을 태우고 마는 세상의 숯불을 미련 없이 등지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참담한 실패조차 넉넉히 안아주시는 주님의 빛나는 은총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일어나 가는(Surgite, eamus)" 자유롭고 평안한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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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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