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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18-30 유다의 밤을 밝히는 떡 한 조각, 그 처절하고도 눈부신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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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배신과 도망이라는 우리 내면의 짙은 어둠 앞에서도 끝끝내 떡 한 조각을 적셔 내미시는 주님의 처절한 사랑을 마주하고, 그 은혜를 내 삶의 '순례 스토리'로 엮어내는(묵상) 눈물겨운 여정입니다.

*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의 빗장을 풀고, 메말랐던 나뭇가지마다 생명의 수맥이 차올라 연둣빛 새싹을 밀어 올리는 2026년 3월의 경이로운 봄날입니다. 저마다의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과 짙은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진리의 빛을 갈망하며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생명이신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냉혹합니다. 조금의 빈틈이나 약점만 보여도 가차 없이 등을 돌리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어제의 동지도 오늘의 원수로 돌변하는 배신의 서사가 넘쳐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3장 후반부의 다락방 풍경 역시, 십자가라는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요동치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배신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불현듯 "심령에 괴로워하여"(요 13:21)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 것이라고 비통하게 선언하십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성경을 강독하며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는 주님의 고백이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위로하는 주님은 감정이 메마른 위대한 신이나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영웅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 앞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깊이 탄식하시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다정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팍팍한 현실의 상처를 그분께 기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도대체 그 배신자가 누구냐고 당황하며 물을 때, 주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요 13:26) 하시고는 가룟 유다에게 떡을 내어주십니다. 송민원 교수의 통찰을 빌리자면, 성경은 납작한 도덕적 해답지가 아니라 진리의 모호성과 입체성을 드러내는 ‘주름 잡힌 텍스트’입니다. 유다는 단순히 극악무도한 악당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언제든 주님을 등질 수 있는 우리 내면의 주름진 그림자, 곧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유다에게 떡을 적셔 주신 행위는 배신자를 지목하기 위한 차가운 정죄였을까요? 당시 중동의 문화에서 주인이 빵을 적셔 손님에게 건네는 것은 최고의 예우이자 우정의 표시였습니다. 주님은 유다의 배신을 아시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가장 다정한 우정의 조각을 내미셨던 것입니다. 이기주 작가는 “말은 귀소 본능을 지닌다”고 갈파했습니다. 사람들의 배신과 탐욕의 언어는 파괴라는 어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끝끝내 떡을 내미시는 예수님의 침묵의 언어는 생명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가슴, 곧 영원한 ‘사랑’으로 돌아가는 뜨거운 은총의 몸짓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는 그 사랑의 떡을 받고도 돌이키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갑니다. 성경은 그 비극적인 순간을 아주 짧고도 서늘하게 기록합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 13:30). 생명의 빛을 등지고 자기 욕망을 향해 걸어간 자의 종착지는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캄캄한 유다의 밤을 피하여 주님의 빛 안에 머물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천상 회의”입니다. 내 영혼의 가장 어두운 생각과 유혹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회의실로 가져가, 그분의 빛 앞에 내어놓고 치유받는 시간입니다. 또한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 남의 글을 짜깁기하는 “서사기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묵상은 성경의 문자를 지식으로 조립하여 나를 포장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실패와 배신이라는 나의 부끄러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의 이야기 속에 나의 남루한 삶을 포개어 넣어 거룩한 “순례 스토리”로 엮어내는 치열한 여정입니다.


혹시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늘 세상의 이익을 좇아 주님을 모른 척할까?”, “내 안에 유다와 같은 이기적인 어둠이 있는데, 과연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며 깊은 회의와 자책감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번듯한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해 하나님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배신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완벽한 존재이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나약함과 이기심을 다 아시면서도, 오늘 비루한 우리 삶의 식탁에 찾아오셔서 친히 은총의 떡을 적셔 우리 입에 넣어주십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이나 강인함 때문이 아니라, 배신자에게조차 눈물어린 손을 내미시는 주님의 그 맹렬하고도 압도적인 긍휼 때문입니다.


이제 나를 짓누르는 종교적 강박과 완벽주의의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세상의 이익을 향해 밤으로 뛰어들려던 조급한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식탁으로 돌아오십시오. 이번 한 주간, 우리 내면의 어둠을 탓하기보다 그 어둠마저 덮어버리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묵상으로 깊이 새기며, 평안하고도 넉넉한 은혜의 길을 걸어가시는 복된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캄캄한 밤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Buoy)’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센 탐욕과 이기심의 파도는 쉴 새 없이 우리 영혼을 뒤흔들고 절망의 해저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내 힘만으로는 그 파도를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다 가장 깊은 곳, 흔들리지 않는 반석(십자가의 은총)에 단단히 매여 있는 밧줄 덕분에 부표는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유다처럼 내 고집대로 칠흑 같은 밤바다로 노를 젓는 것을 멈추고, 우리를 위해 띄워두신 주님의 은총이라는 든든한 부표를 꼭 끌어안을 때, 우리는 마침내 험한 파도를 이기고 평안한 생명의 항구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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