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38-46 나를 묶은 천을 풀어, 다시 생명으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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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앞에서 스스로를 묶고 있던 과거의 천 조각을 풀어내는 작은 용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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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이 땅은 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의 골짜기에는 차가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마치 "사막 속에 사는 사람처럼 물을 갈급해" 하는 갈증이 우리 시대의 영혼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종종 삶의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전능한 해결사'로만 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베다니의 한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가진 신적 권능 이전에, 인간의 슬픔을 *체현(體現)*하는 분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이르러, 예수님은 '비통해 하시고 괴로워하사' (요11:38) 마침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11:35). 이는 인간의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음(Groaning)'이었습니다. 라틴어 학자 한동일 교수의 말처럼, "용기도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야" 하는 것처럼, 슬픔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슬픔뿐 아니라 타인의 슬픔 속으로 들어가 동화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의 슬픔을 외적인 문제나 연극으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척박한 결핍의 공간까지 당신의 존재를 내어주신 '동고(同苦)의 사랑'의 가장 깊은 발현입니다.
묵상(默想)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경건한 자세로 앉아 거룩한 구호를 외치는 행위 이전에, 예수님처럼 인간의 깊은 슬픔을 직면하는 '내면의 정화 작업'입니다. 성경을 '위로부터 아래로' 흐르는 수직적 관계만을 강조하기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기를 요청하시는지"에 관심을 두는 송민원 교수의 '수평적 읽기'처럼,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슬픔 앞에서 함께 울고 있는가?"
슬픔을 공유하신 후, 예수님은 명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요11:39, 한글 개역개정).
이 돌은 단순히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과거의 완결된 고통',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그리고 스스로를 속박하는 '불가능의 명제' 그 자체입니다. 돌은 우리의 회의와 절망이 쌓아 올린 견고한 장벽이며, 마르다는 이미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며 돌을 옮기기를 주저했습니다 (요11:39).
그러나 예수님은 명하십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11:40). 이 선언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요11:43).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우리의 믿음이나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돌을 옮겨놓는 인간의 작은 순종 이후에 터져 나온, 하나님의 주권적인 생명 선언입니다. 우리의 행함을 강조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신 은혜의 사건인 것입니다.
되살아난 나사로를 보십시오. 그는 수의(壽衣)에 꽁꽁 묶인 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요11:44). 생명은 얻었으나, 그는 여전히 죽음의 흔적, 과거의 냄새를 머금은 천에 묶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 나옵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요11:44).
이 명령은 우리, 곧 나사로의 회복을 목격한 공동체에게 주어졌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행하셨지만, '풀어주는 일'은 이제 공동체의 몫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주 우리는 과거의 실패, 타인의 시선, 스스로에게 부과한 족쇄—즉, 나를 묶은 천 조각—에 매여 새로운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습니까?
한동일 교수가 후회 없는 삶을 강조하며 인용한 키케로의 말처럼, "나는 한생을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묶는 과거의 천을 풀어내야 합니다. 이기주 작가의 글이 우리의 "감정적인 피로와 소모"를 줄이는 공감의 질문을 하듯,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당신을 묶고 있는 천 조각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풀어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함 속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다그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당신의 눈물을 흘리며 돌을 옮기는 작은 순종을 기다려 주시고, 마침내 새 생명을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묵상은 그 생명의 부름을 듣고, 낡은 관념과 습관이라는 천 조각을 '스스로' 풀어내는 내면의 결단입니다.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더 이상 죽은 자의 천에 묶여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앞에서 스스로를 묶고 있던 과거의 천 조각을 풀어내는 작은 용기에 불과합니다. 이제, 묶인 채 걷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온전히 걸어 다니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