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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12-19 나귀를 탄 왕, 오해의 환호 속에서 완성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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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원하는 승리의 환호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나귀를 타신 가장 역설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과 겸손의 구원을 묵묵히 이루셨으며, 우리에게는 그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 은혜로 주어진다.

*

3월은 해빙과 더불어 분주한 일상의 재개로 활기가 넘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고난을 단번에 해결해 줄 강력한 영웅을 기대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역시 군중들의 뜨거운 기대가 폭발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의 소식을 들은 허다한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 나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외칩니다. "호산나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이여" (요12:13, 개역한글).


'호산나(Hosanna)'는 본래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긴급한 간청이었습니다. 그들의 환호 속에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민족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군사적 왕'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거부하십니다. 예수님은 병거를 탄 장군이나 백마를 탄 영웅의 모습 대신,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요12:14).


이 장면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한 것 (슥9:9)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권력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겸손과 평화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세상의 왕은 힘과 칼로 군림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가장 낮은 자리, 가장 보잘것없는 운송 수단인 나귀를 통해 사랑과 희생으로 통치하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 파격적인 모습이야말로 묵상(默想)의 대상입니다. 묵상이란 '가장 익숙한 것 속에서 가장 낯선 진리를 발견'하는 내면의 작업입니다. 우리는 '왕'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세상의 이미지를 깨고, 나귀를 탄 왕의 역설적 진실을 응시해야 합니다.


'진정한 힘'은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습니다. 군중은 겉모습(환호의 크기)에만 집중했지만, 예수님은 나귀라는 '본질적 겸손'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완성하고 계셨습니다.2. 깨달음은 언제나 은혜로 온다요한복음 저자는 이 환호의 순간에 대해 깊은 성찰을 더합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요12:16).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들조차도, 이 극적인 입성의 순간에 담긴 깊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백성들의 '환호'에는 열광했을지 몰라도, 그 환호 뒤에 숨겨진 '십자가의 그림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이해는 지극히 피상적이었고, 그들의 기대는 여전히 세상적인 승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들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깨달음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비로소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요12:16)고 기록됩니다.


깨달음은 '나중에야', '비로소', '생각났더라'는 과정을 거쳐 옵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신앙 여정에 깊은 위로를 줍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에 회의를 느끼거나 영적인 침체에 빠질 때, '왜 나는 지금 깨닫지 못하는가', '왜 나는 믿음이 연약한가'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미숙한 현재를 탓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당신의 놀라운 사역—십자가와 부활(영광)—을 먼저 완성하시고, 그 사건을 통해 우리의 기억과 이해를 거꾸로 소급하여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면,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은 인간의 즉각적인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 후에야 주어지는 은혜의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귀를 타고 오신 왕의 발걸음을 따라 나섰던 제자들의 작은 순종뿐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나귀를 탄 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교훈적으로 명령하기보다, '하나님이 이미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과 오해, 그리고 나중에야 깨닫는 우리의 한계를 아시면서도, 먼저 겸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적극적인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안의 내밀한 '기억'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즉, 과거에 내 삶을 지탱했던 하나님의 은혜의 순간들을 되짚어보고, 그 은혜가 이 순간에도 나를 지탱하고 있음을 믿는 '은혜의 회상(回想)'을 하는 것입니다.


묵상의 여정은 세상이 '낭비'라 부르는 나귀를 탄 왕의 행보를 따라, 우리 안의 모든 '왕관의 욕망'을 내려놓는 훈련입니다. 우리의 삶의 고비마다, 우리는 나귀를 탄 왕을 따르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귀를 죽여서라도 나사로의 소생이라는 증거를 없애려 했던 종교 기득권층(요12:19)처럼 스스로의 체면과 안전을 지키려는 사람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나귀를 탄 왕, 그분의 겸손은 우리의 모든 계산과 불안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이, 그리고 용기 있게 이 역설적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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