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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9:01-19 다윗의 마지막 유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자발적 헌신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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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9장은 다윗 왕의 통치 말년, 그의 생애 마지막 대중 연설과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예비한 막대한 양의 예물을 하나님 앞에 봉헌합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성전 건축을 준비했음을 밝히고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촉구합니다. 이에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기쁨으로 넘치게 헌물을 드리자, 다윗은 회중 앞에서 하나님을 송축하며 위대한 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를 찬양하고, 인간의 유한함과 청지기적 사명을 고백하며, 자신과 백성,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온전한 마음을 품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다음 세대에 남기는 가장 위대한 신앙의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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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절: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 헌신에서 기쁨을 얻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헌신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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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은 모든 회중 앞에서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 아직 어리고 미숙하지만, 그가 맡을 성전 건축이라는 과업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를 위한 심히 큰 공사임을 선포합니다. 그는 자신이 "힘을 다하여" 성전 건축에 필요한 금, 은, 놋, 철, 나무와 각종 보석들을 준비했다고 고백합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사유 재산까지도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여 드렸다고 밝힙니다. 이어서 다윗은 회중에게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고 도전하며 자발적인 헌신을 촉구합니다.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지파장, 천부장, 백부장, 그리고 왕의 사무관들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넘치게 예물을 드렸습니다. 9절은 이 모습을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라고 요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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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의 핵심은 '자발성'과 그로 인한 '기쁨'에 있습니다. 다윗의 헌신은 왕으로서의 의무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과 사모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3절)라고 고백하며, 헌신의 동기가 내면의 사랑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의 리더십은 강압이 아닌 영적인 감화력에 기초합니다. "누가 즐거이...드리겠느냐?"(5절)는 질문은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특권과 기쁨으로의 초대입니다.

백성들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그들은 '자원하여 드렸고, 그 결과 '기뻐하였습니다'. 이 기쁨은 단순히 물질을 내놓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동참하고 있다는 거룩한 자의식과, 공동체가 한마음( 온전한 마음으로)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는 연대감에서 비롯된 영적인 희열입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공동체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과거 다윗 왕조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왕의 명령이나 부유한 국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원하는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성전 재건과 신앙 공동체의 회복은 외부의 조건이 아닌, 공동체 내면의 영적 상태에 달려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신약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연보에 대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물의 양이 아니라, 드리는 자의 마음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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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의 신앙 공동체에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 헌신으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헌신, 즉 시간, 재능, 재물의 드림이 의무감이나 체면, 혹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억지스러움에서 비롯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그 '심히 큰 기쁨'을 우리는 헌신과 봉사의 자리에서 누리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의 섬김에 기쁨이 없고 소진(burnout)만 있다면, 그 동기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자발성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이나 자기 의를 채우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롬 12:1)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일, 가사노동, 자녀양육,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지못해 주어진 의무로 여기며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동참의 기회로 여기고, 그 안에서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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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3절: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자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역사, 부와 귀의 근원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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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기쁨에 찬 헌신을 본 다윗은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그의 기도는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라는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위대함, 권능, 영광, 승리, 위엄이 모두 주께 속하였다고 선포합니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며, 주권도 주께 속하였으니, 주는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부터 말미암고, 주는 만물의 통치자가 되시며,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어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라며 기도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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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구약에 나타난 가장 장엄하고 위대한 신학적 고백 중 하나입니다. 다윗의 기도는 앞선 헌신 행위 전체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드린 막대한 예물은 그들의 부유함이나 관대함을 자랑하는 행위가 아니라, 본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받은 것의 일부를 돌려드리는 행위임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인간의 교만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청지기 신학'의 정수입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11절)라는 고백은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12절)라는 고백은 인간의 부와 명예가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공과 성취를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 믿는 세속적 가치관에 대한 강력한 도전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라고 교만했을 때 모든 것을 잃었던 사건은 이 진리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윗은 인간 왕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머리'로 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의 머리"(11절) 되심을 고백합니다. 이는 모든 권력과 통치의 궁극적인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은 신정(神政, Theocracy)의 대리 통치 체제일 뿐,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이 고백은 역대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 즉 '다윗 언약'의 중심에는 인간 왕이 아닌, 그를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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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이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소유'와 '성공'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도록 부추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내 손에 있는 모든 것, 나의 건강, 재능, 자녀, 재물, 사회적 지위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소유주가 아니라 관리인, 즉 청지기입니다. 이 인식이 분명할 때, 우리는 부를 축적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그분의 뜻대로 사용하는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재정, 건물, 인적 자원은 목사나 특정 리더 그룹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자원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투명하고 지혜롭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재정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공동체의 지혜를 모으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주권'을 실제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이 청지기 사상이 탐욕과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현대 문명에 대한 예언자적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자원 고갈, 환경 파괴, 극심한 빈부 격차는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인 양 남용한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창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앞장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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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6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와 그림자같이 연약하고 유한한 우리를 당신의 위대한 계획에 동참시켜 주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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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자신과 백성의 실존을 정직하게 바라봅니다. 그는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라고 반문하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인간의 본질을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라고 묘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심히 많이 쌓아둔 예물이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예비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다 주의 손에서 왔고 다 주의 것이라고 재차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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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인간의 유한하심 사이의 극적인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극대화합니다. '드릴 힘' 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은 인간의 자력(自力)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철저한 자기 부인입니다.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 '그림자 같은 날’이라는 표현은 시편 39:12, 90:9-10 등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일시성과 허무함을 상기시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여정일 뿐입니다(히 11:13). '희망이 없음’이라는 표현은 인간 자체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핵심은 인간의 허무함에 대한 절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처럼 연약하고 한시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집을 짓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격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굳이 우리를 그분의 일에 초대하셔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우리에게 그 영광과 기쁨을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이 부족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통로이자 그분의 은혜에 대한 반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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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나는 자격이 없어', '나는 가진 것이 없어', '나는 너무 바빠' 와 같은 핑계 뒤에 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은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격이나 능력을 보고 일을 맡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부르시고, 그분의 일을 감당할 힘과 지혜와 자원을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의 올바른 태도는 나의 연약함을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를 찬양하며 순종의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이라는 정체성은 우리가 이 땅의 것들에 대해 집착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처럼 재물을 쌓고 명예를 추구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 짧은 나그네 인생 동안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다윗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우리 또한 이 땅에서 영원한 가치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재능, 재물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 영혼을 구원하고 세우는 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처럼 영원한 것에 투자하는 삶이야말로 그림자 같은 인생을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는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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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9절: 하나님은 예물보다 올바른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행위나 예물의 양보다, 중심의 정직함과 올바른 동기를 살피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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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기도는 이제 그 초점을 '마음'으로 옮겨갑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다고 말하며, 백성들 또한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간구합니다. 첫째, 백성들의 마음에 이러한 뜻과 생각을 영원히 품게 해 주시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18절). 둘째,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 온전한 마음)을 주셔서, 그가 주의 계명과 법도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다윗이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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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의 결론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막대한 헌물, 화려한 의식, 거국적인 참여도 그 중심에 '정직하고 온전한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 아무 의미가 없음을 다윗은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은 성경 전체를 흐르는 중요한 사상입니다(삼상 16:7, 시 7:9, 렘 17:10).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나 행위의 결과가 아닌, 그 행위를 유발한 내면의 동기와 중심을 보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정직한 마음'으로 드렸다고 고백할 뿐 아니라, 백성들의 이 선한 마음이 일시적인 감정에 그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되기를 간구합니다. 이는 인간 마음의 변덕스러움과 죄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흥의 뜨거움은 쉽게 식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지속성은 우리의 결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운 붙드심에 달려 있음을 그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아들 솔로몬을 위한 기도는 다윗의 신앙적 성숙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아들의 정치적 성공이나 부귀영화가 아닌, '온전한 마음'을 구합니다. '온전한 마음'은 분열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전적인 헌신과 충성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온전한 마음'을 기준으로 왕들을 평가합니다. 다윗은 이 마음이야말로 왕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물질적 유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마음이라는 영적 유산을 물려주기를 가장 원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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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요? 더 큰 건물, 더 많은 프로그램,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온전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종교적인 행위의 반복으로 굳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우리의 기도, 예배, 봉사의 동기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기만족이나 위선이 섞여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외적인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내면의 진실함을 잃어버린 '회칠한 무덤'과 같은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회개하며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또한 이 기도는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기도 제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된 직장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필요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적으로 구해야 할 것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마음이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부모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적 유산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일시적인 감동을 넘어, 평생토록 하나님을 향한 선한 마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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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위대함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음을 고백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이며, 

부와 귀와 강하게 하심과 크게 하심이 모두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그림자와 같은 나그네 인생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주를 위해 아무것도 드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이처럼 존귀한 주의 나라 건설에 저희를 불러주시고, 

즐거이 드릴 마음과 힘까지 주시니 그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 

우리의 중심이 주님 앞에서 정직하고 온전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자랑과 헛된 욕망을 따라 살았던 저희의 분주한 마음을 

주님께로 고정시켜 주옵소서. 

저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땅의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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