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06:01-17 악의 세계에 대한 재앙 - 일곱 인 

: 역사의 심판을 주관하시는 어린 양과 교회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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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장은 5장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신 합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역사의 주관자로서 친히 그 봉인을 하나씩 떼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일곱 인의 심판은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단회적 사건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즉 교회가 살아가는 이 시대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재앙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전쟁, 기근, 죽음과 같은 재앙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류가 초래한 비극인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심판의 과정입니다. 이 묵시는 고난받는 교회를 향해 이 세상의 고통이 무의미한 혼돈이 아님을 밝히고, 역사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위로와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찾을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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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절 역사의 재앙을 시작하시는 그리스도 : 네 가지 말, 하나님 없는 세상의 필연적 비극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탐욕과 죄악은 정복 전쟁, 내분, 기근과 경제적 불의, 그리고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심판을 초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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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께서 첫 네 개의 인을 떼실 때마다 네 생물의 명령과 함께 각기 다른 색깔의 말과 그 탄 자가 등장합니다. 첫째, 흰 말을 탄 자는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합니다. 둘째, 붉은 말을 탄 자는 땅에서 화평을 제거하며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는 큰 칼을 받습니다. 셋째, 검은 말을 탄 자는 손에 저울을 들고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고 외칩니다. 넷째, 청황색(창백한) 말을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며, ‘음부’가 그 뒤를 따르고, 그들은 땅의 사분의 일에 대한 권세를 받아 칼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사람들을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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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명의 기수는 스가랴 1장과 6장의 환상을 배경으로 하며, 세상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재앙들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재앙이 어린 양께서 인을 떼심으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즉, 이 모든 비극은 하나님의 통제 밖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그분의 주권적인 허용과 심판의 집행 아래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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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인 (흰 말) : 거짓된 평화와 정복욕
많은 이들이 흰 말을 탄 자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려 하지만, 문맥상 이는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거짓된 세력, 즉 '적그리스도적'인 정복의 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는 활을 가졌으나 화살은 보이지 않으며(위협적이지만 실체는 약할 수 있음), 승리자의 관(스테파노스)을 받고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려' 합니다. 이는 인류 역사 속에서 평화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정복 전쟁과 제국주의적 야망을 상징합니다. 세상은 힘을 통해 평화를 이루려 하지만, 그 본질은 탐욕이며 결국 더 큰 재앙을 불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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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 (붉은 말) : 전쟁과 내분
흰 말의 거짓된 정복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피를 상징하는 '붉은 말'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땅에서 화평을 제하는' 권세를 받아,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나아가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유혈 분쟁과 내전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사회의 평화가 얼마나 허상인지를 폭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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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인 (검은 말) : 기근과 경제적 불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사회 기반을 파괴하여 기근과 경제적 파탄을 가져옵니다. '검은 말'을 탄 자의 저울은 식량을 배급하는 상징이지만, 그가 외치는 가격(‘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으로 겨우 한 사람 분의 양식을 살 수 있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기근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반면, 부자들의 사치품인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선언은, 재난 속에서 가난한 자들은 더욱 고통받고 부유한 자들은 영향을 덜 받는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착취가 만연할 것을 보여주는 통렬한 고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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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인 (청황색 말) : 총체적인 죽음
앞선 세 재앙의 귀결은 시체 색깔을 상징하는 '청황색 말'의 등장, 즉 총체적인 '사망'입니다. '음부'(지옥, 무덤)가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은, 이 죽음이 육체적 죽음을 넘어 영원한 심판과 연결됨을 암시합니다. 이들은 칼(전쟁), 흉년(기근), 사망(전염병), 짐승(자연 질서의 파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땅의 사분의 일을 심판합니다. 이는 죄의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총체적인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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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뉴스에서 전쟁, 내전, 기근, 불평등, 전염병 소식을 들을 때, 그것을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의 필연적 결과이며,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심판 아래 있음을 가르칩니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비극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역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거짓 평화(흰 말)에 속지 않고, 화평케 하는 자(붉은 말에 저항)로 살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검은 말에 저항) 정의를 실천하고, 생명을 존중하는(청황색 말에 저항)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증언할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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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절 순교자들의 탄원과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기도를 결코 잊지 않으시며, 그들의 의로움을 인정하시고, 당신의 완벽한 때에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그들의 피를 신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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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인을 떼시자, 요한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봅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흰 두루마기가 주어지며,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위로의 말씀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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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심판의 관점을 하늘로 옮겨,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가장 깊은 위로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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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아래 영혼들 : 제단은 성전에서 희생 제물이 바쳐지는 곳입니다. 순교자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희생 제사'와 같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헌신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기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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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피를 갚아 주소서" : 이 부르짖음은 사적인 복수심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흘린 피에 대해 공의를 세워달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공의가 온 세상에 드러나기를 갈망하는 '정의를 위한 탄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한을 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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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두루마기 : '흰 옷'은 요한계시록에서 승리와 거룩함, 그리고 무죄 판결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는 것은, 세상이 그들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죽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그들의 순결함과 승리를 확증하신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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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차기까지 쉬라" : 이 응답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딘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관심이나 무능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을 자의 수가 차고, 악의 분량이 가득 차며, 순교자의 영광스러운 반열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주권적 계획 때문입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남은 성도들에게는 순교적 믿음으로 동참할 기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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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때문에 억울한 고난을 당하고, 악의 형통을 보며 "하나님, 대체 언제까지입니까?"라고 부르짖고 싶을 때, 우리는 제단 아래 순교자들의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과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예배로 기억됩니다. 비록 지금 당장 악이 심판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때에 공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이미 흰 옷을 입고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써 완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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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7절 심판의 날, 피할 곳 없는 세상의 절규

하나님의 최종적인 진노의 날이 이르면, 세상이 의지하던 모든 권력과 부와 힘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오직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어린 양 앞에 두려움으로 서게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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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인을 떼시자, 큰 지진이 나며 해는 검은 상복처럼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됩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태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듯 땅에 떨어집니다.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처럼 떠나가고, 모든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집니다. 그러자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그리고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습니다. 그들은 산과 바위를 향해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절규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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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인의 재앙은 앞선 재앙들과 차원이 다른 우주적 대변동으로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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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의 붕괴 : 해, 달, 별이 빛을 잃고 떨어지는 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주의 날', 즉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묘사할 때 사용하던 전형적인 묵시적 언어입니다(사 13:10; 욜 2:31). 이는 문자 그대로의 천체물리학적 붕괴라기보다는, 인간이 의지하고 안정적이라 믿었던 세상의 모든 질서와 구조, 권력 체계가 근본부터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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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층의 공포 : 이 심판 앞에서는 땅의 임금부터 종까지, 부자부터 가난한 자까지 사회의 모든 계층이 예외 없이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의지했던 권력, 부, 힘, 지위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아무런 피난처가 되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차라리 바위에 깔려 죽는 것이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를 마주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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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의 진노" : 이것은 충격적인 역설입니다. 사랑과 희생의 상징인 '어린 양'이 이제는 두려운 '진노'의 주체로 나타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끝까지 거부했을 때, 그 거부된 사랑이 가장 무서운 심판으로 돌아온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어린 양을 거부한 자에게는 이제 피할 곳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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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능히 서리요?" : 이 절규와 같은 질문은 6장의 결론이자,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다리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 두려워 떨며 무너질 때, 과연 누가 그 심판의 날에 굳건히 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7장에서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통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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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에게 돈과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이 안전한 피난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이르면, 그 모든 것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하고 참된 피난처는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심판의 주가 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6장의 마지막 질문 "누가 능히 서리요?"는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무너질 세상의 것들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진노의 날에 우리를 능히 서게 하실 어린 양의 피와 그분의 의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심판임을 분명히 선포하며, 모든 사람이 두려움 속에 무너지기 전에 유일한 피난처이신 어린 양께로 돌아오도록 외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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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심판자이신 어린 양 예수님,

하나님을 떠난 세상이 겪는 전쟁과 기근, 불의와 죽음의 고통이 

바로 주님의 주권적인 심판 아래 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악한 형통을 부러워하고, 

믿음으로 사는 삶의 고난을 회피하려 했던 저희의 연약함을 회개합니다.

고난 속에서 "주여, 언제까지니이까" 부르짖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순교자들에게 입히셨던 그 흰 두루마기로 

저희의 믿음 또한 의롭다 인정하여 주옵소서. 

모든 눈물을 기억하시고 마침내 공의를 세우실 

주님의 때를 소망하며 인내하게 하옵소서.

세상이 의지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진노의 큰 날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절규가 저희의 것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어린 양의 보혈을 의지하여 

그 진노의 날에 두려움 없이 주님 앞에 서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무너질 바위틈이 아닌,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 안에 거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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