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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6:01-11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 줄로 재어 주신 아름다운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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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달라는 짧은 간구로 시를 열지만, 곧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고백으로 넘어갑니다(1-2절). 다른 신에게 달려가 피의 전제를 붓는 이들과 자신을 갈라 세우고, 땅에 있는 성도들을 존귀하게 여깁니다(3-4절). 이어 여호와 자신이 나의 산업과 잔이 되시니 줄로 재어 받은 구역이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5-6절). 밤마다 교훈하시는 주님을 항상 앞에 모시기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스올도 끊지 못할 생명의 길과 주의 앞의 충만한 기쁨을 바라보며 시를 맺습니다(7-11절). 짧은 간구로 시작한 기도가 기쁨의 찬양으로 끝나는 신뢰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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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의 믹담은 뜻이 분명하지 않아 우리말 성경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고대 역본들은 이를 돌에 새긴 글로 이해했고, 그래서 이 시를 위기에서 건지신 은혜를 기념비에 새겨 남긴 노래로 읽기도 합니다. 믹담이라는 표제는 시편 56-60편에도 붙어 있는데 모두 다윗이 큰 위험을 지난 자리와 이어집니다. 시편 16편은 탄식보다 신뢰가 가득한 신뢰시로, 지켜 주소서라는 한마디 간구 뒤에 나머지가 모두 그 신뢰를 풀어 쓰는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탄원시처럼 원수를 고발하는 대목은 없고, 위협은 10절의 스올이라는 말 속에 잠깐 비칠 뿐입니다.

# 이 시는 신약에서 부활을 증언하는 본문으로 읽혔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8-11절을 인용하며 다윗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고 말했다고 선포했고(행 2:25-31), 바울도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10절을 들어 썩음을 당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행 13:35).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으나 그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무덤을 깨뜨리셨으니, 이 노래의 마지막 소망은 그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다윗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미리 비추는 노래로 읽어야 합니다.

# 지난주 야고보서는 서로를 위해 무릎 꿇는 기도로 마지막 장을 닫았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펴는 시편은 7월에 머물렀던 15편, 곧 누가 주의 장막에 머무를 수 있느냐는 물음 바로 다음에 놓여 있습니다. 15편이 주의 장막에 머무는 사람의 삶을 그렸다면, 16편은 그 장막에 머무는 사람이 실제로 누리는 기쁨을 노래합니다. 15편 끝의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 16편 8절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는 고백으로 다시 울립니다. 장막에 머무는 길을 물었던 시인이 이제 그 장막 안에서 누리는 복을 들려주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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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주 밖에 없는 복

성부 하나님은 피하는 자를 지키시는 유일한 복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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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달라고 부르며 시를 엽니다. 무엇이 그를 위협하는지는 말하지 않고, 그 대신 내가 주께 피하였다는 사실을 간구의 근거로 내놓습니다. 이어 그는 여호와께 자신이 드린 고백을 그대로 옮깁니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짧은 간구가 곧바로 깊은 신뢰의 선언으로 바뀝니다. 위기를 말하는 문장보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말하는 문장이 훨씬 많은 것이 이 단락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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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줄은 지켜 달라는 간구와 피하였다는 고백이 한 쌍을 이루는 평행법입니다. 지키다로 옮긴 샤마르는 보호하고 돌보다는 뜻으로, 민수기 6장의 제사장 축복에서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다고 할 때 쓰인 말입니다. 피하나이다는 시간의 결로 보면 이미 피하였다에 가깝습니다. 시인은 이제 숨을 곳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 몸을 맡긴 사람으로서 그 맡김을 지켜 달라고 구합니다. 그래서 이 시의 나머지 열 절은 모두 이 한 줄의 신뢰가 무엇인지 풀어 보이는 고백이 됩니다. 시인이 부르는 이름은 엘, 곧 하나님입니다. 시편에서 다른 칭호 없이 이 이름 하나로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어, 그 부름이 그만큼 짧고 다급합니다.

2절에서 시인은 주는 나의 주님, 곧 아도나이라고 고백합니다. 주인을 부르는 이 말은 뒤집으면 나는 주님의 종이라는 고백입니다. 종의 삶은 주인의 손에 달려 있으니, 시인은 자기 삶 전체를 주님께 속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어지는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말은 원문에서 매우 압축되어 있지만, 내 행복은 오직 당신께 있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서 복으로 옮긴 토바는 인생이 누리는 좋은 것 전체를 가리키는 지혜의 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보다 더 나은 좋은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2절의 없다는 부정어 발은 4절에서 두 번 더 되풀이되어, 주님께만 예와 아멘을 하고 다른 신에게는 끝까지 아니라고 하는 시인의 결단을 꿰어 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여 줍니까. 하나님은 피하는 자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지키시는 분이며, 그 지키심이 곧 인생의 가장 큰 복이 되시는 분입니다. 세상은 여러 안전장치를 겹겹이 두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주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겟세마네에서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에서 가장 깊이 울립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셨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끝내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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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기가 오면 먼저 다른 데를 둘러봅니다. 통장 잔고와 아는 사람과 쌓아 둔 경력을 하나씩 세어 보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시인은 순서가 다릅니다. 먼저 주께 피하고, 그 피함 위에서 지켜 달라고 구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내게 닥친 걱정을 하나 적어 보고, 그 옆에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함께 적어 보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는 아이가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할 때 성적보다 먼저 주님께 피하는 길을 함께 기도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실적이 흔들리는 날에도 내가 누구의 종인지를 기억하면 마음이 덜 요동합니다. 우리교회가 무엇을 더 가져서가 아니라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공동체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프로그램과 사람의 숫자가 우리의 안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고백하며, 피난처 되신 주님께 먼저 엎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움을 만난 지체가 있으면 해결책을 내밀기 전에 함께 주께 피하는 기도의 자리부터 마련하는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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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절 존귀한 성도, 거절할 이름

성령 하나님은 성도를 서로의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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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제 시선을 사람에게로 돌립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들을 맞세웁니다. 그들은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하며, 자신은 그들의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않고 그 이름도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주님께 속한 사람들과의 기쁨과 우상을 쫓는 자들과의 단절이 한 단락 안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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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절은 시편 16편에서 본문을 읽기가 가장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래서 땅에 있는 성도들을 이방의 신들로 읽는 해석도 있지만, 성경에서 거룩한 자들이 자주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무엇보다 시인이 그들에게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하므로 언약 공동체의 경건한 사람들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두 절은 대조의 평행법으로 짜여 있습니다. 한쪽에는 존귀한 성도들과 그들에게서 오는 즐거움이 있고, 다른 쪽에는 다른 것을 쫓아 서두르는 자들과 그들에게 더해 가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괴로움으로 옮긴 아차보트는 우상을 가리키는 말과 소리가 닮아 있어, 우상을 늘릴수록 괴로움도 늘어난다는 말놀이가 숨어 있습니다.

피의 전제는 제물의 피를 신에게 부어 드리던 이방 제의를 가리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역시 제의 속에서 신의 이름을 불러 소원을 이루려 하던 주술적 관습과 닿아 있습니다. 호세아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들의 입에서 제하겠다고 한 말씀과 같은 결입니다(호 2:17). 위기의 시대에 사람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다른 신도 함께 섬기면 보호가 두 배가 되리라 여겼습니다. 하나보다 둘이 안전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 계산을 거절합니다. 다른 신을 하나 더 들이는 것은 보호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괴로움을 늘리는 일이라고 꿰뚫어 봅니다. 이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첫째 계명을 위기의 자리에서 살아 낸 고백입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여 줍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서로에게 존귀한 기쁨이 되는 공동체로 묶으시는 분입니다. 동시에 그분은 마음을 나누어 섬기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질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믿는 사람들은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기쁨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서로의 기쁨으로 세우시고, 다른 이름을 부르지 않는 순전한 예배로 이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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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도 피의 전제는 모양을 바꾸어 이어집니다. 주일에는 주님을 부르지만 평일에는 돈과 성공과 사람의 평판이라는 이름을 함께 부릅니다.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이름을 하나 더 붙들어 두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오늘 내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 무엇인지 조용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무엇을 섬기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식탁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어디를 향하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동료를 경쟁자로만 보지 않고 함께 하나님 앞에 선 사람으로 존중하는 작은 말 한마디가 3절의 즐거움을 살아 내는 길입니다. 함께 일하는 이를 존귀하게 대하는 태도가 곧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와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며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허물보다 서로 안에 계신 주님을 먼저 보며, 한 이름만을 부르는 예배를 지켜 가기를 기도합니다. 새로 온 이들과 오래 머문 이들이 서로를 존귀한 자로 맞아들이고, 함께 예배하는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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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절 줄로 재어 준 구역

성부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몫이 되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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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꺼냅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신다고 고백합니다. 이어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으며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땅을 나누던 장면의 낱말들로 시인은 하나님 자신이 자기 몫이 되셨다는 기쁨을 표현합니다. 시는 여기서 간구와 결단을 지나 감사와 만족의 자리로 깊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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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절은 여호수아 시대에 약속의 땅을 나누던 장면을 배경으로 합니다. 산업으로 옮긴 헬레크는 몫을, 분깃으로 옮긴 고랄은 제비를, 기업으로 옮긴 나할라는 대대로 물려받는 땅을 뜻합니다. 지파마다 제비를 뽑아 몫을 받았고, 측량하는 사람들이 줄을 띄워 경계를 그었습니다. 6절의 줄 헤벨이 바로 그 측량줄입니다. 그런데 그 분배에서 땅을 받지 못한 지파가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입니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너는 그들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 18:20). 시인은 레위인의 이 몫을 자기 고백으로 삼습니다.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에서 지키다로 옮긴 타마크는 손으로 단단히 붙든다는 뜻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제비뽑기는 운에 맡기는 일처럼 보였지만, 시인은 자기 제비를 쥐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내 몫과 내 앞날이 우연에 떠밀리지 않고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잔도 같은 결입니다. 잔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몫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4절에서 우상에게 붓던 피의 잔과 맞서 하나님이 친히 채워 주시는 잔을 떠올리게 합니다. 6절의 아름다운 곳은 기름지고 기분 좋은 땅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 땅이 가장 좋은 땅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재어 주신 자리이기에 시인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받습니다. 아름다움은 땅의 크기가 아니라 그 땅을 재어 주신 분에게서 옵니다.

이 그림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여 줍니까. 하나님은 우리 삶의 경계를 친히 재어 주시는 분이며,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우리의 몫으로 내어 주시는 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벧전 1:4). 땅을 받지 못한 레위인처럼,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쥘 것이 적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기업이 되셨으니, 우리는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몫을 이미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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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의 구역을 자주 넘겨다봅니다. 내 집과 내 직장과 내 교회가 다른 이의 것보다 좁아 보이고, 왜 내 줄은 이렇게 짧게 그어졌느냐고 묻습니다. 시인은 같은 줄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 줄을 재어 주신 분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자리, 곧 내 집의 식탁과 내 일터의 책상과 내 몸의 형편을 하나님이 재어 주신 구역으로 다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진 것이 적은 날에도 이 자리를 주신 분께 감사하는 기도를 식구들과 함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남과 견주는 대신 내 몫의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 측량줄 안에서 사는 길입니다. 내 몫의 일을 기쁨으로 해내는 사람이 결국 일터의 공기를 바꿉니다. 우리교회가 규모를 다른 교회와 견주지 않고, 하나님이 이 지역에 재어 주신 구역 안에서 기쁘게 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광양이라는 이 땅의 이웃들 곁에서 하나님이 우리 몫으로 주신 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며, 주님 자신이 우리의 기업이심을 삶으로 증언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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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1절 생명의 길을 보이시니

성자 예수님은 죽음을 넘어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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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며, 밤마다 깊은 속이 자신을 교훈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여호와를 항상 앞에 모시고, 그분이 오른쪽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음과 영과 육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주께서 그를 스올에 버리지 않으시고 생명의 길을 보이시니, 주의 앞에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밤의 교훈에서 시작한 고백이 무덤 너머의 생명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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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의 양심으로 옮긴 킬요트는 원래 콩팥을 뜻합니다. 옛사람들은 콩팥을 사람의 가장 깊은 속, 감정과 양심이 자리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사방이 어두운 밤은 두려움의 시간이었지만, 시인에게 밤은 하나님이 그 깊은 속에 말씀하시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8절의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는 늘 주님께 마음을 두고 살아왔다는 고백입니다. 오른쪽은 법정에서 변호하는 이가 서는 자리이자 싸움터에서 방패를 든 동료가 서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앞에는 주님을 모시고 오른쪽에는 주님이 서 계신 사람의 자리, 이것이 7-8절의 그림입니다.

9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여 전환을 일으킵니다. 마음과 영과 육체가 나란히 서는 삼중의 평행이 사람 전체가 기뻐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영으로 옮긴 말은 원래 영광, 카보드입니다. 본래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사람에게 나누어 주셔서 온 존재가 찬양하게 하신 것입니다. 10절에서 시인은 두 번의 강한 부정으로 죽음의 권세가 생명을 마지막으로 다스리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스올과 멸망, 곧 무덤의 구덩이에 주의 거룩한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시인 자신은 아마 때 이른 죽음에서 건짐을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자기 경험보다 더 멀리 나아갑니다. 11절의 생명의 길은 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 사귐의 길입니다.

이 마지막 노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여 줍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밤을 지키시며 말씀하시고, 우리 오른쪽에 서셔서 흔들림을 붙드시며, 마침내 무덤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들어 하나님이 예수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다고 선포했습니다(행 2:24). 다윗의 몸은 썩음을 보았으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시인이 바라본 생명의 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활짝 열렸고,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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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이 오면 걱정이 커지는 것을 압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낮에 덮어 두었던 염려가 하나씩 일어나 말을 겁니다. 시인은 그 밤을 하나님의 교훈을 듣는 자리로 바꾸었습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짧게라도 주님을 내 앞에 모시는 기도를 드리고, 걱정의 목록 대신 주님이 오른쪽에 계시다는 말씀 한 구절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는 병상에 있는 가족이나 노년의 부모님 곁에서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일 앞에서도 주님이 생명의 길을 보이신다는 믿음으로 오늘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그 걸음 하나하나가 이미 생명의 길 위에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죽음 앞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노래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장례의 자리에서도 생명의 길을 증언하고, 주님의 얼굴 앞에서 누리는 충만한 기쁨을 서로에게 나누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슬픔 중에 있는 가정을 찾아가 그 밤을 함께 지키며, 주님이 오른쪽에 계시다는 사실을 서로의 손을 잡고 확인하는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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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오늘도 주께 피합니다.

주는 나의 주님이시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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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앞에서 다른 이름을 하나 더 붙들어

안전을 두 배로 쌓으려던 마음을 용서하옵소서.

다른 신에게 붓던 잔을 내려놓고

주께서 채우시는 잔만을 들게 하옵소서.

땅에 있는 성도들을 존귀하게 여기며

서로가 서로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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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로 재어 주신 구역을 감사합니다.

남의 땅을 넘겨다보던 눈을 거두고

내 몫의 자리가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입술을 주옵소서.

주께서 친히 나의 분깃이 되시니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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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깊은 속에 말씀하시고

항상 내 앞에, 내 오른쪽에 계셔서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죽음의 그늘이 드리울 때에도

스올에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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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시고

주의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을

오늘 여기서부터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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