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1:01-18 영원 전부터 계신 말씀(Logos)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생명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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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서문(1:1-18)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과 성육신 사건을 장엄한 시적 언어로 선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로고스)'이신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관자시며, 어둠을 비추는 참 빛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이 빛을 증언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세상과 자기 백성은 그를 거부했으나, 그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마침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버지 품 속에서 꺼내어 보여주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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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 '로고스(Logos)'는 당시 헬라 철학(스토아학파 등)에서는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적 원리를 뜻했고,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나 창조의 말씀(히브리어 '다바르')을 의미했습니다. 요한은 이 용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 현자가 아니라, 우주의 통치 원리이자 하나님의 현존 그 자체임을 당시의 유대인과 헬라인 독자 모두에게 선포합니다.
# 신학적 배경 : 이 서문은 기독론(Christology)의 정수입니다. 예수님의 선재성(Pre-existence), 창조 중보 사역, 그리고 성육신(Incarnation)을 다룹니다. 특히 14절의 '거하시매(skēnóō)'는 구약의 성막(skēnē) 개념을 가져와, 하나님이 광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장막을 치고 거하셨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의 육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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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태초에 계신 창조주, 생명과 빛 ;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과 빛을 공급하시는 영원한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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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곧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그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은 이 빛을 깨닫지(이기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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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창세기 1장 1절을 연상시키는 "태초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이 피조물이 아니라 시간과 창조 이전부터 계신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천명합니다. '말씀(로고스)'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함께 계셨고)를 나누면서도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만물이 그로 인해 창조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피조 세계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특히 '생명'과 '빛'은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로, 예수님은 물리적 생명뿐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 맺는 참된 영적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5절의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했다(katalambanō)'는 표현은 중의적입니다. 어둠(세상)이 빛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인 동시에, 어둠이 빛을 '이기거나 제압하지 못했다'는 승리의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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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깊은 영적 '어둠' 속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단지 훌륭한 성인이나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나의 존재와 이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삶과 우리 가정의 시작이 '말씀'이신 예수님께 있음을 고백합시다. 혼돈과 공허(어둠) 속에 있던 내 인생에 질서와 빛을 주신 분이 주님이심을 인정할 때, 삶의 무목적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024년의 새해도 주님이 주신 빛 안에서 시작하십시오.
오늘 산업 현장과 일터에서 우리는 때로 거대한 기계 부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절망적인 뉴스나 상황 속에서도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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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절 빛에 대하여 증언하는 자 ;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모든 사람이 믿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증언자(세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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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빛 자체가 아니라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이며, 그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통해 (그 빛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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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요한은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 그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요한이 '빛이 아니다'라고 명시함으로써, 당시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추종하던 무리들의 오해를 바로잡고 오직 예수님만이 참 빛이심을 강조합니다. 증언자의 역할은 자신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을 가리켜 사람들이 그를 믿도록 돕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빛을 반사하는 등불(5:35)로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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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빛' 자체가 아니라 '빛의 증언자'입니다.
때로 우리는 교회 봉사나 직분을 감당할 때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거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소리'와 '손가락'이 되어 예수님만 가리키고 사라져야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는 세례 요한의 태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우리의 성실함과 윤리적 삶은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해결사가 되려 하지 말고, 진짜 해결사이신 주님께 동료들을 인도하는 겸손한 중매쟁이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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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3절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권세 : 세상에 오신 참 빛을 거부하는 어둠의 세력과, 하나님의 뜻으로 거듭나 그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새 언약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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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빛이 세상에 와서 비추었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고,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유대인)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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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 자기 백성'의 거절은 충격적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던 종교적 기득권층의 영적 무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구원은 혈통(가문), 육정(인간적 본능/성적 욕망), 사람의 뜻(남편의 의지 등 인간적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위로부터(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왕과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전인격적인 환대를 의미합니다. '권세(exousia)'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법적인 자격과 특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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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여전히 학벌, 지연, 혈연(혈통과 육정)을 통해 사람을 평가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진짜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됨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모태 신앙'이나 교회의 직분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있는가?"를 매일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조건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거나 거절한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빛이신 예수님도 거절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 권세는 세상 위에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고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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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8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 :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며, 율법을 완성하는 은혜와 진리로 보이지 않는 성부 하나님을 완벽하게 계시하신 독생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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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주어졌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왔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그를 나타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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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sarx)'이 되었다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연약하고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는 급진적인 선언입니다. 이는 당시 영지주의(가현설)를 반박하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거하시매'는 원어적으로 '장막을 치셨다'는 뜻으로, 구약 시대 성막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이제 예수님의 인격과 삶 속에 임재한다는 뜻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16절)'는 율법의 은혜를 대체하는 더 완전하고 충만한 파도와 같은 은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품 속(kolpos)'에 있는 독생자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설명(exēgeomai, 주석)'해 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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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신비이자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한계 속으로 들어오신 '공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아픔, 질병, 외로움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육신을 입어보셨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와 우리 광양사랑의교회는 '우리끼리의 성'을 쌓는 데 집중하기보다,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가 '장막'을 치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 곁에 머물며 예수님의 은혜와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 성육신적 삶입니다. 율법적인 잣대로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풍성한 '은혜와 진리'로 서로를 용납하고 세워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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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자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어둠 속에 있던 저희에게 찾아오셔서,
혈통이나 사람의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 삼아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주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낮고 천한 땅에 장막을 치셨던 것처럼,
오늘 저희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작은 예수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광양 땅 곳곳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 빛 되신 예수님만을 증언하는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때로는 세상이 빛을 거부하고 깨닫지 못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수님을 통해 보게 하셨으니,
이제는 세상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설명하는 살아있는
편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생명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