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2-134편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복 ; 그 언약과 연합과 송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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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대장정이 그 마지막 정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순례자는 마침내 하나님의 집, 시온에 이르러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되새기고(132편), 그 안에서 형제가 연합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며(133편), 밤낮으로 계속되는 찬양과 축복의 교환 속에서 순례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134편). 이 세 편의 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열망이 어떻게 언약적 축복과 공동체의 연합, 그리고 영원한 찬양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피날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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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2편 : 인간의 맹세, 그 이상의 언약>
이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 가장 긴 시편으로, 다윗의 열정적인 헌신과 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극적으로 대비하며, 하나님의 집과 다윗 왕조의 신학적 중요성을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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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1-6, 11-18 우리의 맹세보다 크신 하나님의 약속 ;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우리의 작은 헌신과 열망을 기억하시고, 그것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영원한 언약적 축복으로 갚아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다윗이 겪은 모든 고난과,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처소를 찾기까지는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의 뜨거운 열정을 기억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흩어져 있던 언약궤가 '에브라다'(베들레헴 근방)에서 발견되어 '나무 밭'(기럇여아림)을 거쳐 마침내 시온에 안치된 역사를 회상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며, 시온을 영원한 처소로 삼고 그 백성에게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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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맹세는 하나님의 임재(언약궤)를 그의 삶과 통치의 중심에 두려는 거룩한 열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개인의 안락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다윗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셨지만, 그 응답은 다윗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임시 처소’를 찾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장, 다윗 언약). 또한 다윗은 시온을 ‘하나님의 처소’로 정했지만, 하나님은 시온을 ‘나의 영원한 안식처’로 선언하시며 그곳을 모든 축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최선의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은혜의 작은 그림자에 불과함을 보여줍니다. 이 다윗 언약의 궁극적인 성취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분이야말로 시온에 좌정하신 참된 왕이시며, 그의 백성에게 영원한 구원과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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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위대한 업적보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중심과 열망을 더 귀하게 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우리 삶의 왕좌에 모시고자 하는 작은 결단을 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은혜와 복으로 우리 삶을 채우시고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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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8-10 약속을 붙드는 기도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과거에 주신 약속을 기억하고 그것을 근거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기쁘게 들으시고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언약궤를 향해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라고 간구합니다. 또한 제사장들이 의를 옷 입고 성도들이 즐거이 외치게 해달라며,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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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는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들(왕조, 성전, 제사장 직분)을 다시 한번 아뢰며,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언약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다윗을 생각하사"라는 간구는, 다윗이 잘나서가 아니라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그의 후손인 현재의 왕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요청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는 나의 욕망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나의 소원으로 삼고 그 약속이 내 삶과 공동체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왕이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십자가 언약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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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는 무엇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막연한 감정이나 절박한 상황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기록된 약속의 말씀, 즉 성경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힘을 얻고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 제일 신실하게 응답하는 기도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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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3편 : 형제의 연합, 그 거룩한 아름다움>
성전에 올라온 순례자들은 다양한 지역과 배경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하는 모습을 보며, 공동체의 연합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것인지를 깊이 깨닫고 이 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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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1-3 거룩한 기름, 생명의 이슬 같은 연합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 되어 사랑으로 연합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며, 그 연합의 자리에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의 복을 명령하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며 감탄합니다. 그는 이 연합의 아름다움을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아론의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흘러내리는 모습이며, 둘째는 헐몬 산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로 그곳에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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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비유인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은 대제사장 위임식의 거룩한 장면입니다(출 29:7). 이 기름은 단순한 향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성별(聖別), 권위를 상징합니다. 이 거룩한 기름이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온몸으로 흘러 퍼지듯, 참된 연합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부터 시작되어 공동체 전체를 적시는 영적인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연합은 단순히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 공동체를 거룩하게 구별시키는 표지입니다.
두 번째 비유인 ‘헐몬의 이슬’은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북쪽의 가장 높은 산인 헐몬 산의 풍부한 수분은 밤이슬이 되어 건조한 남쪽의 시온 산까지 적시며 생명을 유지시켰습니다. 이처럼 참된 연합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초자연적인 은혜이며, 메마른 공동체에 생명과 활력을 불어넣는 축복의 통로임을 보여줍니다.
이 두 비유는 연합이 가져오는 결과, 즉 거룩함과 생명력을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복, 곧 ‘영생’의 본질임을 드러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와 화목하게 하심으로 이 참된 연합을 이루셨습니다(엡 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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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공동체는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까? 우리의 하나 됨은 단지 인간적인 친목을 넘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메마른 영혼들에게 생명의 이슬을 공급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으로 하나 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주일 그리고 방학을 마치고 다시 함께하게 될 말씀공동체를 사모함으로 기다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한 곳에 임재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기쁨, 연합의 거룩함과 생명력을 통해 영생의 기쁨을 풍성하게 맛보고 누릴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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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4편 : 찬송과 복이 오가는 밤의 노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마지막 시편은, 순례를 마치고 떠나는 자들과 성전에 남아 밤새 섬기는 자들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축복과 권면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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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1-3 밤에 드리는 송축, 시온에서 오는 복 ; 하나님은 밤낮으로 계속되는 당신의 종들의 찬양을 받으시며, 당신의 임재가 있는 시온으로부터 온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순례자들이 밤에 성전을 떠나며, 그곳에 남아 섬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 즉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에 성전 봉사자들은 떠나는 순례자들을 향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라고 화답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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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이 떠나는 밤, 성전의 예배는 끝나지 않습니다. 남은 종들은 밤새도록 성전의 불을 지키며 기도와 찬양의 의무를 계속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예배가 결코 중단되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순례자들은 그들을 격려하며 ‘송축(히. 바라크)하라’고 말합니다. 이에 봉사자들은 순례자들을 향해 ‘복(바라크)을 주실지어다’라고 화답합니다. 여기서 '송축'과 '복'은 같은 히브리어 단어 '바라크'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송축)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복)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언어유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여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이 축복은 시온, 즉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지로부터 나오지만, 그 능력은 온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의 능력입니다. 이는 성전 안에서의 복이 순례자들이 돌아가야 할 일상의 삶의 현장 전체에 미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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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예배는 주일, 예배당 안에서만 드려지는 것으로 끝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편 134편은 우리의 삶이 밤낮으로 계속되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어두운 밤과 같은 인생의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에 시온의 복,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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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관 찬송 및 찬양
찬송가 208장 (통 245) "내 주의 나라와"
복음성가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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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
저희의 작은 헌신에도 영원한 나라와 풍성한 복으로 갚아주시는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저희의 기도가 언제나 주의 말씀을 붙드는 기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성령 안에서 저희가 하나 되게 하사,
거룩한 기름과 생명의 이슬 같은 연합의 복을 누리게 하시고,
세상에 영생의 소망을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밤낮으로 주님을 송축하는 삶을 통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복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땅 위에 가득히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찬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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