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데살로니가전서 05:12-28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

*

데살로니가전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가 갖추어야 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지침들을 제시하며 서신을 마무리합니다. 이 권면들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공동체 내 영적 지도자들을 존중하고 화목할 것(12-13절). 둘째, 다양한 성도들을 인내와 선함으로 대하고,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삶을 유지하며, 성령의 역사를 분별력 있게 수용할 것(14-22절). 셋째, 이 모든 거룩한 삶을 이루시는 분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며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23-24절). 넷째, 마지막 상호 기도의 요청과 문안, 그리고 축복의 인사(25-28절)입니다.

*

# 종말을 살아가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순례자 교회

예수님께서 오시 전 유대인들은 종말을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한 날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을 교정하시고 종말의 시작 곧 하나님나라의 도래와 마침내 이루실 완성된 하나님나라와 재림에 대한 약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를 구약성경에서는 출애굽과 가나안 사이의 광야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셨고, 출바벨론한 이스라엘이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포로귀환 세대를 통해서도 보여주셨으며,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는 직접적으로 이미와 아직 사이의 광야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광야의 시험에서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공생애 기간 동안에 몸소 그 길을 먼저 가시면서 보여주시고, 또한 이 외에도 여러가지 삶을 통해서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대속 사건을 통해 택함 받고 구원받아 세워진 새이스라엘(새 사람, 새 피조물, 새 백성)된 교회 역시 이미와 아직 사이 곧 종말을 살아가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신약의 많은 책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결국 신구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그의 뜻 곧 계획하심 섭리하심 일하심 약속하심 경륜등등)  우리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런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의 사건은 예루살렘 멸망(AD 70년)과 재림입니다. 또한 개인적 종말(죽음)과 우주적 종말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 징조와 경고에 대한 말씀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병행해서 교회된 이들을 향하여서는 개인과 우주적 종말인 재림에 대해서 소망가운데 오늘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 멸망은 징조와 여타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재림에 대한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기에 그 징조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차이점이 있습니다(마24, 막13, 눅21). 그런데 결국 우주적 종말 곧 재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치 우리와 무관한 것처럼 멀게만 느껴져서 자칫 잊고 살며 긴장을 늦추기 쉬운데, 개인의 종말이 결국은 우주적 종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기껏 우리에게 종말(개인의 종말이든 우주적 종말이든)은 그리 멀지 않은 어쩌면 긴박하게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지혜로운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제 우리의 생을 마감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린 이미 옛사람이 죽고 다시 사는 경험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의 회심과 세례를 통해서 한번 또는 날마다 경험하고 있으며, 개인의 종말 곧 죽음은 누구도 예측하거나 예단하거나 장담할 수 없이 늘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긴장 속에서도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미쁘신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사나 죽으나 주님이 주신 생명 안에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바울 당시의 임박한 종말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 제기가 많은데 그에 대한 연구와 고민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임박한 예루살렘 멸망(데살로니가 서신이 예루살렘 멸망 전에 기록한 것으로 본다면)이 성전 멸망 전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갖고 정리된 생각으로 보이며, 환난과 핍박의 상황 속에서 죽음은 그들에게 언제든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는 임박한 종말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깨어 살았다고 보여집니다. 두려움도 있으나 그런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이 바로 부활의 ‘소망’과 미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베푸신 ‘사랑’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 주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임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매일 매일은 기쁨과 감사였고, 이러한 믿음을 지속하기 위해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쉼없는 기도 곧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 또한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삶에 대해서 바울은  예수님처럼 여러가지 모양으로 권면하고 가르치고 친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바울의 서신을 비롯한 성경은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된 우리에게 때론 문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며, 또한 바른 해석을 통해 순종해 가야할 직접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고 묵상하며 그 가르침대로 즐거이 순종하며 지켜 행하는 것이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임을 믿습니다.(데살로니가후서에서 종말에 대한 부분들이 다뤄지니 다른 부분들도 계속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

# 예루살렘 성전 멸망과 재림

마24장, 막13장, 눅21장에는 동일하게 예루살렘 성전 멸망과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는데 세 책 모두 예루살렘 멸망의 징조와 처신에 대해서 말하고, 이어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명백하게 이 둘을 구분하여 말씀하셨고, 복음서 저자들도 분명하게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을 구분하지 않고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에 대해서 혼용해서 해석한다면 문맥과 논리가 꼬이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구약의 예언서와 예루살렘 멸망 그리고 재림에 대한 이해들을 잘 구분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요한계시록도 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

# 요약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도래했고, 성도들은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는 '아직’의 시대, 즉 종말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는 바로 이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순례의 여정 가운데 있습니다. 이 여정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이고, 둘째, 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답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종말(죽음)과 우주적 종말(재림)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종말을 마주하고 살아갑니다. 재림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기에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개인의 죽음은 그 종말을 우리 각자의 긴박하고 실존적인 현실로 다가오게 합니다. 그러므로 종말 신앙은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는 지혜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부활의 '소망'과, 그들을 부르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서 비롯된 서로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바로 이 믿음, 소망,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지침서입니다.

*

# 12-13절 질서와 존중: 영적 리더를 귀히 여기라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가 무질서 가운데 방황하지 않도록,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일꾼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공동체에 질서와 평화를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

바울은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알아주고, 그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며 서로 화목하라고 권면합니다.

.

_미조직 교회의 상황 : 데살로니가교회는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식적인 직분자(장로, 감독 등)가 아직 세워지지 않은 '미조직 교회'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르치는 자"라는 표현 대신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라는 기능적 묘사를 사용한 것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진정한 지도자인지 혼란스러울 수 있고, 리더십을 둘러싼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이 먼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알아볼 것(알고)'을 요청합니다.

_섬김에 기초한 권위 : 여기서 말하는 리더십은 직분이나 계급이 아닌 '수고'라는 섬김에 그 기반을 둡니다. 그들은 주님의 권위 안에서 공동체를 이끌고(다스리며), 때로는 바른길로 바로잡아주는(권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는 세상의 권력 구조와는 다른, 섬김에서 비롯되는 영적 권위를 말합니다. 교회는 직분 이전에 이러한 섬김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_화목의 중요성 :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권면이 지도자에 대한 권면 바로 뒤에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건강한 리더십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성도들 간의 화평이라는 토양이 필수적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서는 어떤 리더십도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화목하는 것이 곧 지도자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실천적 표현입니다.

.

우리 공동체는 이름 없이 수고하고 헌신하는 이들을 얼마나 '알아주고'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의 존중이 공식적인 직분에만 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는 직분자를 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와 봉사로 수고하는 모든 지체들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건강한 공동체는 비판과 판단 대신,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고 사랑으로 존중하며 화목을 이루어가는 곳입니다. 작은 공동체에서도 여전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수고를 감당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공동체가 유지 또는 성숙해 갑니다. 그런 이들의 수고를 당연한 듯 관망하지 않고 어느날엔가는 나의 작은 섬김도 그렇게 누군가를 살리고 세우는 일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성도가 되길 빕니다. 

*

# 14-22절 성령 안의 공동체 : 사랑과 분별로 함께 서라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며, 당신의 영(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를 부어주시고 선을 분별할 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

바울은 일련의 짧고 강렬한 명령들을 통해 종말을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냅니다.

_서로를 향한 태도 : 규모 없는 자들(게으른 자들)을 권계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며,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

_하나님을 향한 태도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_성령을 향한 태도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

_맞춤형 목양 : 바울은 공동체 안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접근법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무질서하고 게으른 자에게는 '권계(훈계)'가, 낙심한 자에게는 '격려'가, 연약한 자에게는 '붙들어 줌'이 필요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형편과 필요에 맞는 세심한 돌봄이 진정한 사랑임을 가르칩니다.

_적극적 선(善)의 추구 :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항상 선을 좇으라"는 명령은 기독교 윤리의 정수입니다. 이는 단순히 악을 행하지 않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악에 대해 선으로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요구합니다. 심지어 핍박하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도 선을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복수와 증오의 순환을 끊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_환난을 이기는 세 기둥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은 환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 - 기쁨 : 상황과 감정에 좌우되는 행복이 아닌,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주권에 뿌리내린 신학적 기쁨입니다.

  • - 기도 :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그분의 도우심과 임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기도는 질문입니다. 우리 삶에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질문이 없다면 삶은 표류하게 됩니다. 

  • - 감사 : 좋은 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상황(범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드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세 가지는 종말의 불확실성과 고난을 이겨내는 성도의 핵심적인 영적 동력입니다. 가장 성숙한 신앙은 행복의 추구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으로 인하여 자족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입니다. 

_열린 분별력 : 미조직 교회 상황에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인 '예언'은 중요한 은사였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 극단을 모두 경계합니다. 하나는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고 인간적인 질서로 억누르는 '성령을 소멸하는' 태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신비적 현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맹신입니다.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명합니다. 참된 영성은 성령의 역사에 열려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미 받은 복음의 말씀에 비추어 신중하게 분별하는 '지혜로운 개방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즐거이 묵상하여 분별력을 기르고, 그 말씀이 그런가 하고 다시 살피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며 주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성령충만, 말씀충만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연약한 지체를 판단하기보다 붙들어 주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향해 선을 행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나의 기쁨과 감사는 환경에 따라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교회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나와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는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맹목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말씀에 기초하여 선한 것을 분별하고 악을 단호히 버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

# 23-28절 하나님의 신실하심 : 흠 없는 보전의 소망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신실하심으로 친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흠 없이 지키시며 마침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

바울은 모든 권면을 마친 후, 기도로 서신을 마무리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이어서 그는 이 놀라운 일이 가능한 이유를 선포합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마지막으로 서로를 위한 기도를 부탁하고,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며, 이 편지를 모든 형제에게 읽어줄 것을 명한 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원하며 끝맺습니다.

.

_성결의 주체는 하나님 : 앞선 모든 명령(인간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성도들에게,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친히)'임을 상기시킵니다. 우리의 성화(聖化)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힘써 순종하지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_전인적(全人的) 구원 :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라는 표현은 인간 존재의 총체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영혼은 중요하고 몸은 중요하지 않다는 이원론적 사상을 거부하며, 우리의 지정의(영과 혼)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육체의 삶까지도 구원의 영역이며, 거룩하게 보전되어야 할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_"미쁘시니... 이루시리라" : 이것이 성도의 소망의 최종적인 근거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성화는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은 약속에 신실하시기에, 시작하신 구원을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이 종말의 모든 불안과 환난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

신앙생활 가운데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자주 넘어지고 낙심합니까? 바울의 마지막 기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끝까지 지키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진리는 우리를 나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오늘도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향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함께 나누며, 주님의 은혜가 우리 공동체 가운데 풍성하기를 기원하며 함께 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

# 거둠의 기도

우리에게 친밀한 권위자 되시며

오래참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되시며 신실하신 평강의 하나님 아버지

귀한 말씀을 통하여 교회된 축복에 감사할 수 있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또한 종말을 살아가는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니 또한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세워주신 영적 지도자들을 인하여 감사하옵고

그들을 귀히 여기며 순종하며 화목하겠습니다. 

공동체 안과 밖의 부족하고 연약한 이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며

그들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선을 따라 

행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항상 기뻐할 이유, 쉬지 않고 기도할 이유

범사에 감사할 풍성한 이유 주셔서 감사하오며

허락하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삶의 모든 내용들 속에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악간에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온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게 보전되길 힘쓰되

미쁘신 주께서 그렇게 이루실 것을 믿으며

세미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문안하면서

공동체가 함께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더욱 주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주의 은혜가 결국 우리 삶을 지배하고 

가득하고 온전케하고 충만함을 믿으며

날마다 더 성숙함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믿음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32 데살로니가후서 02:01-17 종말을 사는 교회를 향한 권면 1 new 평화의길벗 2025.09.07 0
831 데살로니가후서 01:01-12 하나님나라에 합당하고 영광 되기 위하여 평화의길벗 2025.09.06 0
» 데살로니가전서 05:12-28 종말을 살아가는 교회 평화의길벗 2025.09.06 0
829 데살로니가전서 04:13-05:11 종말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 평화의길벗 2025.09.05 1
828 데살로니가전서 04:01-1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평화의길벗 2025.09.03 5
827 데살로니가전서 02:17-3:13 굳건하고 흠이없게 세워져가는 교회 평화의길벗 2025.09.02 4
826 데살로니가전서 02:01-16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적과 태도 평화의길벗 2025.09.02 4
825 데살로니가전서 01:01-10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사는 교회 평화의길벗 2025.08.31 4
824 데살로니가전후서 개요 평화의길벗 2025.08.31 4
823 시편 136:1-26 여호와의 한결같은 사랑을 감사하라 : 그 인자하심은 영원함이로다 평화의길벗 2025.08.30 4
822 시편 135:1-21 우리가 찬송할 수밖에 없는 이유 평화의길벗 2025.08.30 5
821 시편 132-134편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복 ; 그 언약과 연합과 송축 평화의길벗 2025.08.30 5
820 시편 130-131편 죄책감을 버리고 소망으로 : 깊은 절망에서 찾은 참된 소망과 평안 평화의길벗 2025.08.27 6
819 시편 128-129편 복 얻는 삶, 저주 받는 삶 : 복의 길, 고난의 길 평화의길벗 2025.08.27 6
818 시편 126-127편 헛되지 않을 수고 :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순례자의 노래 평화의길벗 2025.08.25 6
817 시편 124-125편 위기를 구원의 간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평화의길벗 2025.08.25 9
816 시편 122-123편 순례자의 기쁨과 슬픔, 그 시선이 머무는 곳 평화의길벗 2025.08.23 7
815 시편 120-121편 인생의 낮과 밤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평화의길벗 2025.08.23 6
814 스가랴 묵상을 마치며 평화의길벗 2025.08.22 6
813 스가랴 14:12-21 거룩하다 하시는 은혜 평화의길벗 2025.08.22 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2 Next
/ 4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