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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2:1-25 못에 걸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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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내 인생의 무게를 걸어 둔 못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살피고,
삭아 부러질 못에서 내려와 영원히 부러지지 않는 못이신 그리스도께 전부를 거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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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났다는데 더위는 물러갈 기색이 없습니다. 한낮의 뙤약볕은 여전히 아스팔트를 달구고,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열기 속에 매미들은 남은 날을 다 태우려는 듯 쟁쟁하게 울어댑니다. 그래도 아침저녁 바람 끝에는 어느새 서늘한 기운 한 올이 숨어 있습니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또 넘겨받습니다. 이 무더위의 끝자락을 견디고 계신 분들, 지치도록 일하고도 마음 둘 곳이 없는 분들, 붙들고 있던 것이 자꾸 흔들려 잠 못 이루는 분들, 이 늦여름을 통과하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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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고 벽에 못을 박아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단단한 곳에 잘 박힌 못 하나면 꽤 무거운 것도 너끈히 걸 수 있습니다. 시계를 걸고, 가족사진을 걸고, 달력을 걸고, 그러다 보면 못 하나에 걸린 것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쿵, 하고 벽에서 모든 것이 쏟아져 내립니다. 못이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빠져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22장은 바로 이 못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아 부러지고, 그 위에 걸린 것들이 다 부서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인생을 걸어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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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배경에는 주전 701년의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대군이 유다의 성읍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새장의 새처럼 가두었던 절체절명의 시간, 그런데 그 대군이 어느 날 갑자기 물러갑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지붕 위로 올라가 환호했습니다. 잔치가 벌어지고 성읍은 소란한 즐거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예루살렘 이야기가 이사야서에서 바벨론과 애굽과 두로 같은 열방을 심판하는 신탁들 한가운데 끼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 나라와 다를 것이 없다는, 서늘한 자리 배치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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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호의 한복판에서 한 사람만이 울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사 22:4). 예언자의 눈에는 보였기 때문입니다. 적군이 물러간 것은 유다가 잘 싸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관원들은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라 도망치다 붙잡혔습니다. 부끄러움을 직면해야 할 시간에 성읍은 축제를 선택했고, 구원의 배후에 계신 분을 물어야 할 시간에 잔의 부딪는 소리만 높아졌습니다. 칠백 년 뒤, 종려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환호 속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신 예수님의 눈물이 이 눈물과 포개어집니다. 웃음소리가 가장 높은 곳에서 홀로 우는 사람, 그가 그 시대의 파수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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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게을렀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놀랍도록 부지런했습니다. 무기고를 열어 병기를 점검하고, 성벽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물을 확보하려고 저수지를 만들고, 방어에 방해가 되는 집들은 헐어냈습니다. 위기 대응의 목록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한 문장으로 내려집니다.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사 22:11). 병기는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바라보지 않은 것입니다. 분주할 망 자는 마음 심 변에 망할 망 자를 씁니다. 마음이 사라진 분주함, 하나님이 빠진 대비는 그 자체로 이미 무너짐의 시작입니다. 못을 박을 벽이 통째로 흔들리는데 못만 갈아 끼우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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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 날에 통곡하며 굵은 베를 띠라고, 곧 돌이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소와 양을 잡는 잔치였고, 그 잔치의 건배사는 이것이었습니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사 22:13).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방 안에 조용히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유한함과 마주 앉는 일이 두려워 인간은 소음과 오락 속으로 도망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위락, 곧 기분전환이라 불렀습니다. 지붕 위의 잔치는 바로 그 도피였습니다. 심판의 경고 앞에서 고요히 자기를 들여다보는 대신, 더 크게 웃고 더 요란하게 마시는 것으로 불안을 덮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음으로 덮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곪아갑니다. 회개를 조롱으로 갚은 이 죄악에 대해,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무서운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자비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회개의 문을 스스로 잠근 자에게는 용서가 들어갈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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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 성읍의 초상화입니다. 국고와 왕궁을 맡은 셉나는 나라가 기울어 가는 그 시간에, 자기 신분으로는 허락되지 않은 높은 반석에 자기 묘실을 파고 있었습니다. 맡겨진 권력으로 나라를 섬긴 것이 아니라 죽어서 누울 자리의 영광까지 챙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공같이 말아 광막한 땅에 던져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엘리아김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내 종"이라 부르시고 단단한 곳에 박힌 못같이 견고하게 세우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못 위에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걸리기 시작합니다. 종지부터 항아리까지, 그에게 기대어 살아 보려는 집안의 온갖 욕심이 주렁주렁 매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고가 내려집니다.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사 22:25). 신실하게 시작한 사람도 걸린 무게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끝내 삭는 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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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부러진 못의 이야기 한가운데 이상하게 빛나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 엘리아김에게 잠시 맡겨졌다가 그의 몰락과 함께 떨어진 이 열쇠를, 요한계시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손에서 다시 발견합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분 말입니다. 사람의 못은 걸린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지만,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와 수치의 무게를 지시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부러지는 대신 찔리시는 길을 택하신 그 못이, 이제 우리 인생을 걸어도 되는 유일하게 안전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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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벽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한국교회는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런데 그 위기 앞에서 우리가 붙드는 것이 프로그램과 건물과 유명세라면, 우리는 저수지를 파던 예루살렘과 얼마나 다를까요. 성도들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금과 부동산과 자녀의 성적과 든든한 연줄, 우리가 인생의 무게를 걸어 둔 못들의 이름입니다. 그 대비가 죄는 아닙니다. 다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못을 점검하는 만큼 그 벽 너머에 계신 분을 앙망하고 있는가. 내 못에 걸린 것들 중에 내려놓아야 할 사사로운 영광은 없는가. 교회의 직분이든 일터의 자리든, 그것은 주인의 집을 세우라고 맡겨진 것이지 내 묘실을 꾸미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 벽을 정리하듯, 우리 마음의 벽도 한번 정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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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이 더위도 물러가고, 매미 소리 그친 자리에 귀뚜라미가 울 것입니다. 지붕 위의 요란한 환호는 계절처럼 지나가지만, 골짜기에서 흘린 눈물은 하나님의 병에 담깁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벽에 걸어 둔 것들이 아니라 우리를 걸어 주신 그 못, 십자가에 박히신 사랑뿐입니다. 삭아 부러질 것들에서 눈을 들어, 다윗의 열쇠를 어깨에 메신 그분께 오늘의 무게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흔들리는 계절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품고, 오늘도 이 땅을 뚜벅뚜벅 걷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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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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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TUzxGNHLW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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